군사사[軍事史]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이 글은 채승병 박사님의 경영은 전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된 글이다. 초안을 잡은 지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학기중에 바빠서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지난 주에 종강을 하면서 약간의 여유가 났기에, 정리해서 올린다.

http://www.flickr.com/photos/pelegrino/344577179/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는 세계 전쟁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인 동시에, “군사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중요한 통찰을 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그가 넓은 영토를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 자체가 이상함, 아니 기이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세계 3대 정복자의 필두라고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성공은 역사적으로 굉장한 이변에 속한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겨우 50년 전만 해도 약체 중의 약체였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제국은 커녕 남쪽의 그리스 도시 국가들과도 상대가 안 되었고, 실제로 알렉산드로스의 삼촌인 마케도니아 왕 페르디카스 3세[Perdiccas III]는 이웃나라와의 싸움 도중에 전사하기까지 했다. 마케도니아는 강대국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변국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약소국이었던 것이다.

기이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알렉산드로스의 주력 보병대(페제타이로이)가 사용한 사리사[sarissa]라는 장창은 길이가 5m에 가깝다. 일반적인 창이 3m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긴 길이1인 것이다. 창은 길다고 능사가 아니다. 지나치게 길면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창들은 길이가 3m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마케도니아군은 이것보다 훨씬 긴, 다루기 불편한 무기를 주력병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리사. 영화 『알렉산더(2004)』의 한 장면.

그러니까, 알렉산드로스는 불편한 무기를 든 약체 왕국의 병사들을 이끌고 세 대륙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얘기가 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환경과 진화

고대전이든 현대전이든, 전술의 기본적인 원리는 동일하다. “아군의 비주력으로 적의 주력을 제압한다.” 이걸 “망치와 모루 전술(Hammer and Anvil Tactic)”이라고 하는데, 아군의 주력 부대가 적의 주력을 붙들어 놓은 사이에(모루) 비주력 부대가 적 주력의 측면을 강타(망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탱커가 적을 붙들어놓으면 딜러가 잡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 전술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사람이다. 그가 페르시아군을 격파한 이수스 전투는 이 전술의 고전적인 예로 일컬어진다. 이 전투가 군사사 책, 그리고 각국 사관학교 교과서의 첫머리에 실리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수스 전투[Battle of Isus]를 묘사한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 이탈리아 폼페이. http://www.flickr.com/photos/65172294@N00/135519888

중요한 것은 이 개념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망치와 모루 전술의 기원은 고대 아테네군과 페르시아군이 맞붙은 마라톤 전투(BC 490)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투에서 수적인 열세에 처한 아테네군은 중앙에 배치되는 병력을 줄이는 대신 양 날개를 강화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전투가 개시되자마자 적진을 향해 전력질주, 페르시아군의 양 날개를 격파해 버린다. 비교적 소수의 병력이 배치된 중앙부는 페르시아군의 공격에 무너졌지만, 적의 측면을 차지한 아테네군이 페르시아군의 중앙부를 협공함으로서 궤멸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결국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비록 부족했지만, 아테네 군의 중앙부는 모루의 역할을, 양익은 망치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에서 기원한 망치와 모루 전술은 그곳에서 군사학을 공부한 마케도니아 왕자 필리포스2에 의해 마케도니아 왕국에 도입된다. 전사한 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필리포스는 이 전술에 맞춰 기존의 마케도니아군을 개조하고 발전시켰다.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원정에 데리고 간 군대는, 바로 이 군대였다.

여기서 첫 번째 깨달음이 열린다. 알렉산드로스의 위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한 전술이 오랜 세월에 걸쳐 환경에 맞게 진화해 온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관계와 관계

그렇다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무기를 든 보병들은 어떻게 ‘모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물론 사리사는 매우 긴 창이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여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다. 무엇보다 대열이 굼뜰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군이 무방비 상태의 측면을 공격하면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영화 『알렉산더(2004)』의 한 장면. 마케도니아 보병들이 사리사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마케도니아 보병들은 충분히 사리사를 다룰 수 있었다. 그것도 단체로 말이다. 마케도니아는 고원 지역이기 때문에, 남자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지 자체가 별로 없다. 뒤집어 말하면, 남아도는 남성 인력을 직업 군인으로 활용3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훈련소에서 단체 행동을 연습할 수 있는 만큼, 거추장스러운 무기도 능숙하게 다루게 된다. 게다가 마케도니아는 전제 왕정이다. 많은 병력을 동일한 커리큘럼으로 훈련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거추장스러운 사리사는 무서운 무기로 돌변한다. 수가 많은 데다가, 사정거리도 일반적인 창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그러면 측면은? 마케도니아는 남쪽의 도시 국가들과는 달리, 자유 시민이 거의 없고 왕족과 귀족의 세력이 강하다. 비록 기병의 유지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다지만, 이걸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강력한 기병대가 적의 측면을 돌파할 수 있기 때문에, 적 입장에서는 보병대의 측면을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마케도니아의 동쪽 지역은 기마 민족의 주거지로 유명한 트라키아다. 마케도니아는 여기서 경기병들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들이 투창을 던지면서 보병대를 엄호하기 때문에, 적들은 보병대의 측면을 노리기가 쉽지 않다. 이제 마케도니아 보병대에게 남은 건 전방을 향해 막강한 전투력을 뿜어내는 것 뿐이다.

여기서 두 번째 깨달음이 열린다. 사리사의 강점은 사리사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사리사를 강력한 무기로 돌변시키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다른 것들과의 관계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형적 환경과 대규모 모병과 훈련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구조, 다른 병종과의 유기적 관계 등 말이다.

전투태세로 들어가는 마케도니아군 보병대. 영화 『알렉산더(2004)』의 한 장면.

진화와 적응에 대한 통찰

언뜻 보면, 군사사는 게임 중계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무기들이 등장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4를 통해 승패를 겨룬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천문학이 망원경에 대한 학문이 아니듯, 군사사도 단순히 무기와 갑옷에 대한 학문이 아니다. 군사학은 생존 경쟁에 처한 시스템이 어떻게 진화하는가에 대한 통사적 접근이며, 시스템의 각 부분들이 주위의 다른 요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대한 종합적 통찰이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승리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바로 이러한 사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페르시아군의 전면부를 공격하는 마케도니아 보병대. 영화 『알렉산더(2004)』의 한 장면.

나는 컴퓨터 전공자지만, 중학생 때부터 군사사를 공부했으니 오히려 전공보다도 이쪽을 더 오래 공부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군사사 지식이 내게 직접적인 도움을 준 적은 전혀 없었다. 남들에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시험이나 취업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유별난 취미를 가진 덕택에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랜 군사사 공부는 내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 무엇을 보든 사물이 지나 온 내력을 통해 본질을 짐작하게 했으며, 사물 그 자체보다 그 사물이 주위와 맺고 있는 관계에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했다.

취미는 취미일 뿐, 즐거움 이외에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촌스러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군사사는 내 사고의 뿌리를 이루었으며,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정도면, 군사사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답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한 줄 요약: 혜택이 매우 크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모두 밀덕질하지 않겠는가? :)


  1. 실제로 당시 남쪽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사용했던 창은 대략 2.4m 가량 된다. 
  2. 정확히 말하면 인질이었다. 앞서 말했듯, 당시 마케도니아는 형편없는 약소 왕국이었으니까. 
  3. 실제로 기록에 남은 알렉산드로스의 연설문을 보면, “선왕 필리포스 2세가 양이나 치던 너희들을 거두어 전사로 만들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군인 월급을 받으면서 잘하면 전리품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꽤나 매력적인 직장이었다. 
  4. 적어도 제 3자 보기엔. 당사자가 되봐라 

12 thoughts on “군사사[軍事史]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1. 교훈 가득 찬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밀덕질을 해야겠군요 (….)

    • 예, 사실 이 글의 주제는 “밀덕질을 권함” 되겠습니다. (…)

  2. 밀덕이 희망이다. (….)
    저는 제 관심이 관심이다보니 아무래도 전쟁에서의 수 싸움에 관한 측면에 좀 집중을 하게 되더라구요. 가위바위보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 어떻게 아군의 강점을 숨기고 정보를 교란시키느냐 그런거….

    뭐 물론 스타할땐 닥치고 전진 2게이트(….)

  3. 중간 중간 줄로 그어 놓으신 부분에 뿜고 식견에 탄복하고 갑니다.

  4. 구호따윈 집어치우고 ㅎㅎㅎ
    밀덕질 101 커리큘럼을 부탁드립니다.

    글구

    반지제왕 영화에서의 무기디자인과 전투스타일에 대하여 이미 글을 쓰셨던가요?

    전 실제 역사상의 군사사는 하나두 모르고 게이머도 아니지만, 웨타 워크샵에 관한 반지제왕 Making Of는 일년에 다섯번쯤 보거든요. 각각의 문화를 생김새, 사운드, 의복, 무기, 전투스타일까지 스크린상에 창조해나가는 과정이 넘 좋아요.

    이번 겨울에 호빗 개봉하기 전에 한번쯤 다뤄주시면 저는 참 좋겠슴다 쿄쿄

    • 하하, 반지의 제왕은 제작진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이것저것 쓸 거리가 무궁무진하죠. 사실 몇 개 준비하다 만 것이 있는데, 관심 가지신 분들이 많으니 개봉하기 전에 서둘러서 마무리를 짓는 게 좋겠네요. 관심 감사합니다. :)

  5. 12월 25일에 쓰셨군요. 밀덕의 위대함!!! 좋은 블로그 발견했으니 자주 와서 감자(등골)까지 쏙 빼먹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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