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다리

“저 마지막 다리는 너무 멀리 있군요.”1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1.

프로스트 대교(구 아른헴 대교). 이 다리는 1944년 9월, 연합군 공수부대가 탈취해야 하는 다리들 중 마지막 다리였다. 영국군 제 1공수사단이 이 임무를 맡았다.

1944년 9월, 연합군 사령부는 약간 들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전쟁에서 다 이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프랑스 북부에 상륙할 때만 해도, 연합군은 별로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연합군은 독일군을 포위망에 밀어 넣고 대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8월에는 파리가 탈환되었고, 서유럽 전체를 장악했던 독일군은 이제 독일 본토로 쫓겨가서 방어 준비에 급급했다.

영국군은 독일 본토를 침공하기 위한 작전을 입안했다. 이른바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으로, 독일군이 수비진을 펼치고 있는 독일 서쪽 국경이 아닌 네덜란드를 통해서 본토로 쳐들어간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연합군 공수부대가 강하하여 네덜란드의 주요 교통로를 장악한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영국군 제 30군단이 진격하면서 네덜란드 주둔 독일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독일 본토로 진입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장군은 이 작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니까 공수부대가 용감한 개척민이라면, 30군단은 원주민에게 포위된 개척민을 구하러 가는 기병대인 셈이지.”

“우리의 임무는 아인트호벤 해방이다… 그곳에서, 아군 전차들을 기다린다.” 드라마 『밴드 오브 브러더스』 제 4화는 마켓 가든 작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알다시피 네덜란드는 운하의 나라고, 그걸 건너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러니까 공수부대가 장악해야 하는 주요 교통로라는 것은 전부 다리였다. 게다가 작전의 목표가 독일 본토까지 쳐들어가는 것이다보니 확보해야 하는 다리가 일곱 개나 됐다. 공수부대가 임무를 완수하기는 어려운 반면, 독일군이 이걸 방해하기는 아주 쉬웠다. 연이은 다리 중 하나만 폭파해 버리면 끝인 것이다.

30군단의 진격로 역시 문제였다. 안그래도 좁다란 길이 돌아가는 길, 갈림길 하나 없는 외길이었던 것이다. 애시당초 길이 하나밖에 없는데, 거기로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올지를 알고 있으니, 방해하는 것 또한 식은 죽 먹기였다. 이쯤 되고 보면, 이 작전에 대해서는 또다른 장교의 평이 더 정확한 평가일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이건 어둠 아래서 실 하나로 일곱 개의 바늘귀를 단숨에 꿰는 거야. 하나만 실수를 해도 전체가 실패하지.” 한마디로 이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독일군이 호구일 가능성과 정확히 일치했다.

“성공하기만 하면 영국군 전차부대가 독일로 들어가… 올해 안에 전쟁이 끝난다.”

영국군이라고 해서 다들 정줄을 놓은것은 아니었다. 항공 정찰을 나갔던 정보장교 한 명이 돌아와 작전 중지를 주장했다. 사진에는 집결한 독일군 병력들과 각종 전투차량들이 선명했다. 하지만 상관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망가진 독일군 장갑차 같은 건 어느 도로에나 있어.” “그 입 좀 다물란 말야. 우리 사령관이 미군한테 아쉬운 소리 해가며 이것저것 빌려왔다고.2” 결국 영국군 사령부는 그 장교를 영국으로 휴가 보내버렸다.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는, 멀쩡한 주변 사람들이 호랑이 아가리로 뛰어드는 꼴을 볼 필요는 없었으니까.

2.

1944년 9월 17일, 마켓 가든 작전이 개시되었다. 이날 투입된 공수부대는 모두 3개 사단, 병력은 32,000명을 넘었다.

대학원에 오기 전 일이다. 학사 졸업을 앞둔 내게 몇몇 지인들이 밥 한 번 먹자고 연락을 해왔다. 약속 장소에 나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스타트업 조인 제안이었다. 대략 세 건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이 제각각인 만큼 이미 확보된 팀원들도 사업 계획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당시 나는 이미 대학원에 합격하고 연구실에도 나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실제로 나는 그 모든 제안들을 정중하게 거절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하지만 내가 거의 1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굳이 지금 꺼내는 건 이유가 있다. 내가 대학원 때문에 조인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대학원에서 조금만 더 공부를 하겠다는 내게 날아온 답변은 흡사 틀에서 찍어낸 듯 똑같았다: “교수 하려고? 아니면 그냥 대기업 들어가게?”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자,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왜 대학원에 가? 거기서 시간 낭비하면서 뭐 하려고? 학력같은 건 안 중요해. 그냥 우리랑 스타트업 하자. 빌 게이츠도 주커버그도 따지고 보면 고졸이잖아?”

정확히 말하면, 바로 이 말들이 내가 그들의 제안을 거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아마 내가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3.

“나는 끔찍한 것들을 보았다네…” 마켓 가든 기념 행사에 참석한 어느 노병. 75년 전, 이 노인은 제 30군단 휘하의 보병으로 작전에 참여했다.

공수부대란 낙하산을 타고 적지에 침투, 적 후방을 교란하고 요충지를 장악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부대다. 불시의 기습은 틀림없이 공수부대만의 강점이지만,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총 들고 뛰어내리는 것 자체가 워낙에 힘든 일이다보니 바주카 같은 대전차 화기를 들고 강하할 수 있는 용자는 극도로 희귀할 수밖에 없다. 적 전차나 장갑차와 마주쳤을 때 맞서 싸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연합군 사령부야 네덜란드엔 무장이 허술한 독일군 부대만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내려보낸 것이겠지만, 사실 거기엔 기갑사단만 둘 들어앚아 있었다. 독일군 사령부의 대응도 빨랐다. 연합군 공수부대의 침투가 확인되자마자 독일 서쪽 국경에 주둔하고 있던 전차부대에는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독일군 전투차량들이 엔진에 시동을 걸고 전속력으로 네덜란드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미군 공수부대는 “기병대”가 빨리 올 수 있는 가까운 지역에 떨어져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마지막 다리인 아른헴 다리를 탈취하기 위해 투입된 영국군 공수부대는 그러지가 못했다. 안 그래도 제일 깊숙히 투입되서 아군이 구하러 오기 어려운데, 목표 근처에 괜찮은 강하 예정지가 없었던 탓에 다리에서 10km나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강하했던 것이다. 목표까지의 거리가 멀었던 탓에 도중에 독일군의 반격을 받을 가능성도 높았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영국군은 독일군의 거센 반격을 받아 다리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우스터빅 마을에 주저앉았다. 다리 탈취는커녕 당장 거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가 문제일 지경이었다.3

우스터빅[Oosterbeek]을 점령한 영국군 공수부대. 예정대로라면 여기서 동쪽으로 더 가서 아른헴 다리를 탈취해야 했지만, 독일군의 거센 저항 탓에 도리어 방어 모드로 전환했다.

단 하나, 존 프로스트 중령이 이끄는 일개 대대 병력만이 우회로를 따라 목적지인 다리 북쪽에 도착했다. 겨우 건물에 들어가 방어태세를 취한 그들을 맞이한 건 독일군 전차들의 대포알이었다. 적지에 고립된 프로스트 대대에 연합군은 공중보급을 시도했지만, 애당초 1개 대대 병력이 장악할 수 있는 면적은 뻔했다. 손바닥만한 영국군 지역으로 들어간 얼마 안되는 양을 빼면 전부 독일군 차지가 됐다. 개념 없는 작전 계획에 영국군 공수부대가 피를 뒤집어쓰는 동안 한껏 선물을 챙긴 독일군만이 희희낙락했다.

“제발 무사하기를…” 같은 시각, 제 30군단의 전차가 파괴된 독일군 전차 곁을 지나고 있다. 커다란 덩치로 좁다란 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영국군 전차가 힘겨워 보인다.

사흘이 지났다. 30군단의 전차들이 필사적으로 독일군 방어진지를 걷어내며 공수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일군이 다리를 끊거나 대전차포로 선두의 전차들을 공격하면 가느다란 제방길을 따라가던 영국군의 대열은 꼼짝 없이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전차병들도 적지에 갇힌 전우들을 구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겠지만, 방법이 없었다. 너무나도 먼 다리, 적 기갑 전력을 고려하지 않은 작전 계획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4.

9월 20일, 영국군 전차부대는 네이메겐의 철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웹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성공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한 줌밖에 안되는 공수부대원들이 적지에 강하해서 적을 쓸어버렸다는 것만큼이나 멋지고 인상적인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그건 엄연히 적들이 경무장한 2선급 부대일 경우의 이야기다. 적 장갑차와 전차가 우글거리는 적지에 뛰어들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은 그게 그저 웹사이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들이 시장만 선점했을 뿐, 기술적으로는 시중에서 파는 PHP 쇼핑몰 만들기 같은 책 한 권만 보면 만들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착각도 이만한 착각이 없다. 전공자로서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들은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거의 기술적 마스터피스에 가깝다. 수억 명의 사용자가 쉴새없이 사진을 올리고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데, 어떻게 그 많은 게시물들이 저장되고 거의 실시간으로 처리되는지, 궁금하다는 생각 안 드셨나? 그걸 만드는 데 쓰인 php라는 언어는 아주 쉬운 언어 아니냐고? 글쎄… 보안 결함을 찾는 크래커나 페이스북을 실행하는 cpu도 그렇게 생각할까?

이쯤 가면 분명해진다. 지극히 일반적인 내용만을 다루는 학부 과정의 특성상, 최근 부쩍 높아진 기술적 요구 수준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다4. 스타트업 같은 거 가망 없으니 포기하라는 얘기도 아니고, 모든 개발팀을 고학력자로 중무장시키라는 말도 아니다. 단지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솔직히, 내가 앞으로 뭘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시 게임업계로 돌아갈 수도 있고,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다5.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원을 선택한 건, 어디서 뭘 하던 간에 무거운 바주카를 들고 뛰어다닐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주말마다 원서 교재 펴놓고 보내는 거 지겹고 지금도 내 옆에 쌓여 있는 논문들을 보다 보면 깝깝하다. 하지만 차라리 이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닌가.

“장전 완료!” “좋아, 가자!”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나는 아직 사업 계획을 판단할 만큼 비즈니스를 잘 알지 못하고, 팀원들을 한 눈에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인간적으로 성숙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려면 현실을 냉철히 보는 눈이 필수적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과연 현실에 대해서 잠시라도 생각해 본 사람의 입에서 “공부 같은 건 시간 낭비다.” 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참여를 제안하던 그들의 말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망가진 장갑차 같은 건 어디에나 있어.” “그 입 좀 다물란 말이야.”

5.

전사한 영국 공수부대원의 무덤. 1945년, 네덜란드.

9월 20일 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프로스트 대대는 마침내 전멸했다. 교착상태에 빠진 영국군 공수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자유 폴란드군 공수여단이 추가로 투입되었지만, 이미 공수부대의 강점인 불시의 기습마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땅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독일군의 밥이 됐다.

나흘 뒤인 9월 24일, 연합군 사령부는 작전 중지를 결정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영국군 공수부대원들은 강을 건너 연합군 지역으로 후퇴했다. 투입된 병력 10,005명 중 생존자는 2,163명. 전멸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대패였다. 연합군에 한 방 먹인 독일군은 오히려 반격의 기회를 잡았고, 전쟁은 이듬해 5월까지 계속됐다.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영국군 제 1 공수사단은 이듬해 해체됐고, 그후 다시는 재편되지 못했다. 전쟁 후 아른헴 대교는 다리 북단을 지키던 프로스트 중령의 이름을 따서 프로스트 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은 영국군 공수부대를 기리는 추모비가 서서 오가는 길손들을 맞고 있다.

프로스트 대대 기념비. 네덜란드 아른헴.

“준비 안된 창업, 우왕좌왕하다 끝났다” [한국경제, 2012년 2월 12일]

: 아이러브스쿨 창업자 김영삼 씨의 회고담.

대학생에게 창업 권하는 사회, 정상인가? [by 태터앤미디어 명승은 대표]

: “내 기초 체력이 되지 않는데 거대한 역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대학생들에게 과연 창업을 장려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역기는 고사하고 아령도 못 드는 친구들 많덥디다.


  1. 이 말은 연합군 제 1 공수군단의 부사령관이었던 프레드릭 브라우닝[Frederick Browning] 중장이 작전 직전, 영국군 총사령관 몽고메리[Bernard Montgomery] 원수에게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원문은 “I think we may be going a bridge too far.” 

  2. 공수부대만 2개 사단(82사단, 101사단)을 빌려왔다. 

  3. 전투를 지휘해야 할 사단장이 적의 총격을 받아 48시간동안 행방 불명이 되는 상황이 벌어질 정도면 이건 뭐… 

  4. 사실 구글이 언제 창업했는지를 따져 보면 그리 최근도 아니다. IT산업에서 5년, 10년은 다른 산업의 수십 년에 해당할 정도로 변화가 빠르다. 덧붙이자면 요즘은 비 IT 분야와의 협업도 중요해지고 있는데, 이런 종류의 지식은 학부에선 냄새도 맡기 힘들다. 

  5. 교수나 연구자 빼고. 확실히 나는 학교에 얌전히 앉아 있을 성격은 아닌 것 같다. 

19 thoughts on “머나먼 다리

  1. 빌 게이츠는 학부생때 뛰어난 알고리즘 논문을 학술지에 실었고, 브린과 페이지는 모트와니의 제자로 창업 전까지 활발한 연구를 하였죠. (모트와니는 이론 전산학자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이들이 중퇴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 예, 저도 그 부분이 유난히 불만이었거든요. 사실 제 연구 분야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연구 분야랑 많이 겹치는데, 이 사람들이 소시적에 쓰던 논문들 보다 보면 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이 사람들은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공부를 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빌 게이츠가 학부생 시절에 뛰어난 논문을 썼다는 건 저도 처음 들었네요. ^^

    • 페이지와 브린은 “공부를 했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봐야겠습니다. 페이지랭크 논문 보셨겠지만, 공부 없이 링크에 관한 아이디어만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죠.

      빌 게이츠는 팬케이크 소팅 문제를 푸는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1979년에 발표했는데, 2008년이 되어서야 이 기록이 깨졌어요.

      이들은 창업하면서 경영자로 변신했지만 이런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겠죠. 구글이랑 빌 게이츠 얘기가 나와서 댓글 좀 달아 봤습니다

    • 아 옙, 브린과 페이지의 경우 “굳이 박사학위를 딸 필요가 없었던”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뭐 결국 경영자로 변신하긴 했지만, 이런 http://blog.gorekun.com/1540 걸 보면 그들이 지닌 공학적 지식이 그 뒤로도 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함다;

  2. 크게 공감합니다.
    성공한 사람의 성공담만을 부각하고 어째서 성공했는지를 성찰하지 않는 수많은 기사들에 짜증이 나있었는데 아주 제대로 분석해주시는군요..

    • 예, 말씀하신 그 병리는 요즘의 IT 관련 보도들에서 매우 일반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다루는 언론 보도들이 젊은이들이 패기로 도전해서 성공했다, 혹은 인문학적 배경이 성공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들 하는데요, 전공자로서 우스울 수밖에 없습니다. 걔들을 지탱하는 공학적 바탕은 실로 엄청난 것이거든요.

      그런 무책임한 기사를 쏟아내는 기자+블로거들, 반성해야 합니다.

  3. 저 역시 공장에서 찍어낸 코더 입니다.
    항상 고어핀드님의 글을 읽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장에서 찍어낸 코더 역시 필요한 존재라 생각합니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모두 리더만 있는 경우는 없으니깐요…

    혼자의 자위인가요?? ^^;;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 개인적으로 출신 같은 건 별로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소위 명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기는 한데, 명문대 나와서도 컴퓨터 잘 모르고 프로그래밍 못 하는 친구들은 널리고 또 널렸습니다. 그러니 별로 자학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구요…

      저는 실리콘밸리의 컴퓨터 교육 시스템과 오픈 소스/비즈니스 생태계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별로 흥미있어하는 사람들이 안 보이더군요. :(

  4. 왠지 모르게 ‘총대’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5. 여러모로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간혹 무턱대고 학원에서 몇개월 공부하고, 앱 하나 만들어서 무작정 대박이 나길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긴 합니다. 물론, 위에서 댓글다신 분처럼 시장이 커지면 공장에서 찍어내듯 나오는 개발자들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뛰어드는건 마켓 가든 작전 처럼 화려해 보였을런지 모르겠지만,.. 결국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겠죠.
    (밴드오브브라더스가 다시 생각나는군요.)
    그럼에도,… 일각에서 벤처를 운운하는건,…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대기업 지향적인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아쉬움이겠죠. 흔히 말하는 도전정신,… 젊으니 몇번이고 실패해도 그걸 자신만의 자산으로 만들어서 더 큰 걸 이루어낼 수 있는 정신들이 점점 사라져서 그런게 아닐까 싶네요.

    • 아마 정답(과 비슷한 게 있다면)은 앱 하나 만들어서 대박이 나길 바라는 무모함과 공무원과 대기업만 지향하는 신중함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6. 난 “처음이자 마지막” 전략으로 하고 있는데.. 하면 할 수록 “지금 시작했으면 진작에 망했었구나”를 계속 느끼고 있음… 파도 파도 새로운 게 계속 나와 orz

  7. 잘 읽고 갑니다. 정말 크게 공감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실행력”과 “기술”의 중요성은 빼놓은 채 단지 아이디어가 다인 것 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스럽네요. 직접 스타트업을 해보고 겪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ㅎㅎ

    • 그것도 그렇고, 요즘 시장에서 요구되는 기술적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보죠. 사실 성공한 스타트업 중에서 기술적으로 받쳐주지 않는 곳은 잘 살펴보면 단언컨대 하나도 없습니다. ‘기술만 가지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를 ‘기술이 중요하지 않다.’ 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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