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만 바꾸면 되는 이야기 6

* 이 글은 시리즈의 토막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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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러두기: 아래 사례는 구한 말 재판 제도 변화에 대한 실제 연구 결과([1][2])를 재구성한 것이다.

A: 너네, 이번에 부임한 이토 통감 지지한다며?

B: 응. 일본 법은 정말 좋아. 공정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줘.

C: 당사자에게 변호를 할 기회를 주고, 법전에 정해진 대로 판결하고, 진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A: 그래도 원래 법에는 고을 원님한테 가서 재판을 해달라고 되어 있지 않니?

B: 법? 무슨 법, 일본군 사령관한테 가서 탐관오리 잡아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법?

C: 우리네 상감님이 재판을 잘해서 이 모양이냐?

B: 솔직히 국권이니 어쩌니 헛소리 하는 놈들은 죄다 가마 타고 다니며 한양 좋은 집에서 코오-피 즐기는 애들이잖아? 우리도 제대로 된 재판 좀 받고 살자는데 그게 잘못이냐?

C: 조선 팔도에 백성들 가둬 놓고 되도 않는 재판 해서 전답 뺏을 때는 좋았지?

A: 그래도 여기가 조선 땅인데 일본 판사가 재판을 해도 되는 거야? 조선 민중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줄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

C: 재판이 잘못되도 내가 손해 보지, 니가 손해 보냐? 다 같이 죽자는 거야?

B: 일본 판사에게 두들겨 맞는 건 확률이지만, 원님 재판에서 두들겨 맞는 건 일상이지.

2.

A: 너네, 일본 차 샀다며?

B: 응, 일본 차는 사고가 났을 때 에어백이 정말 잘 터져.

C: 가격도 별로 안 비싸고, 운전하는 도중에 갑자기 차축이 빠질지 걱정 안 해도 되지. 진짜 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A: 걔네도 안전 문제 있어서 미국에서 전량 리콜하고 난리 났다는데, 그렇게 믿어도 되는 거야?

B: 안전? 무슨 안전, 정해진 부위에 얌전하게 들이받아야 에어백이 터진다는 그 안전? 쿠킹 호일로 차를 만든다는 비웃음이 나오는 안전?

C: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차를 잘 만들어서 이 모양이냐?

B: 솔직히 국산차를 타라네 어쩌네 잔소리하는 인간들은 죄다 비싼 독일차 몰고 다니는 인간들이잖아? 우리 같은 사람도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차 좀 타고 살자는데 그게 잘못이냐?

C: 규제 장벽 뒤에 국민들 가둬 놓고 품질도 안 좋은 차 강제로 팔 땐 좋았지?

A: 아니 그래도 일본 자동차 회사가 항상 일을 잘 할 거라는 보장도 없어 보이는데…?

C: 사고가 나도 내가 사고 나지, 니가 잘못되나? 다 같이 죽자는 거야?

B: 일본 차 타다가 사고 나는 건 ‘일말의’ 가능성이지만, 국산 차 탔다가 에어백 안 터지는 건 ‘그냥’ 가능성이지.

3.

A: 너네, 우버 탄다며?

B: 응, 우버는 정말 좋아. 좋은 차에 친절한 기사님이 운전해. 비싼 값을 한다고.

C: 콜택시 업체에 전화해서 여기가 어디라고 설명하느라 악을 쓰지 않아도 되지. ‘거기 안 가네’ ‘거기 가면 빈 차로 와야 하네’ 이런 실랑이를 할 필요도 없지. 진짜 고객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A: 하지만 엄연히 택시 업체도 아니잖아. 법적인 문제가 있을 텐데?

B: 법? 무슨 법, 여자친구 택시 태워 집에 보낼 때마다 차번 기록해 두게 만드는 법?

C: 서울시가 택시 서비스를 잘해서 이 모양이냐?

B: 솔직히 우버 타지 말라네, 법 어기지 말라네 떠들어대는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료들은 죄다 기사 딸린 차 타고 다녀서 택시 탈 일 없는 인간들이잖아? 우리 같은 사람도 편하고 즐겁게 택시 좀 타자는데 그게 잘못이냐?

C: 멍청한 규제 안에 시민들 가둬 놓고 한심한 택시 서비스 강제로 팔 땐 좋았지?

A: 하지만 운수사업법도 안 지키잖아. 사고 났을 때 보험 처리 안 되면 어쩔려고 그래?

C: 사고가 나도 내가 사고 나지, 니가 잘못되나? 다 같이 죽자는 거야?

B: 우버 탔다가 사고 나는 건 가능성이지만, 난폭 택시에 다치고 성범죄의 표적이 되는 건 일상이지.

4.

A: 너네, 수입 과자 먹는다며?

B: 응, 해외 과자는 싸고 맛있어.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고 진짜 카카오 버터를 쓰지.

C: 상도덕이 없는 것도 장점이야. 과자 다 부스러지라고 질소 포장을 하지 않거든. 진짜 과자를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A: 그래도 국내 법에 따라 장사하는 국내 제과업체 과자를 먹어야 하지 않니?

B: 법? 무슨 법, 힘없는 서민 두들겨서 제과업체 배만 불리는 법?

C: 한국 제과업체들이 일을 잘해서 이 모양이냐?

B: 솔직히 국산 과자 먹어야 한다네, 어쩌네 TV에 나와서 떠들어대는 인간들은 고급 베이커리에서 비싼 수제 과자만 사먹는 인간들이잖아? 우리 같은 사람도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것 좀 먹자는데 그게 잘못이냐?

C: 국경 안에 소비자 가둬 놓고 질소 덩어리 팔아치울 때는 좋았지?

A: 하지만 식품위생법도 안 지키잖아. 원산지도 유통기한 표시 없는 것도 많다던데 괜찮은 거야?

C: 그거 먹고 뭐가 잘못되도 내가 잘못되지, 니가 잘못되냐? 다 같이 죽자는 거야?

B: 외국 과자 먹고 탈나는 건 가능성이지만, 비싼 돈 주고 국산 질소를 사야 하는 건 100%지.

5.

A: 너네, 가전제품 해외 직구한다며?

B: 응, 가전제품 뿐만 아니라 옷부터 화장품까지 전부 다 직구해. 아주 싸고 좋아.

C: 국내에 없는 모델도 있고, 심지어 똑같은 모델도 국내에서 산 것보다 더 성능이 좋아. 진짜 돈 들인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A: 그래도 국내에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걸 사야 하지 않니?

B: 법? 무슨 법, 똑같은 제품 국내에만 세 배 비싼 가격으로 팔아먹게 해 주는 법?

C: 국내 유통업체들이 일을 잘해서 이 모양이냐?

B: 솔직히 직구 때문에 내수에 타격이 간다네, 어쩌네 하지만 정작 국내 소비자들한테 바가지 씌워 돈 벌어먹는 인간들은 자유롭게 외국 드나들고 자식들도 전부 다 미국 학교 보내잖아? 우리 같은 사람도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것 좀 쓰자는데 그게 잘못이냐?

C: 국경 안에 소비자 가둬 놓고 바가지 씌울 때는 좋았지?

A: 하지만 소비자 보호법의 대상이 되지도 않잖아. 배송 도중 분실되거나 AS 문제가 발생하면 어쩌려고 그래?

C: 그거 샀다가 뭐가 잘못되도 내가 잘못되지, 니가 잘못되냐? 다 같이 죽자는 거야?

B: AS 받아야 할 물건을 ‘뽑는’ 건 가능성이지만, 국내 유통 업체들한테 호갱님 취급당하는 건 100%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