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대표투구, 코린토스식 투구

2005년 8월 9일 [시각 불명]

영국 런던 – 대영박물관

코린토스식 투구. 대영박물관 소장.

대영박물관 곳곳을 누비다 고대 그리스의 투구 한 점과 마주쳤습니다. “코린토스식 투구[^1]” 라 불리는 투구입니다. BC 8세기 말 처음으로 등장하여 BC 5세기에 이르기까지, 전 그리스 뿐만 아니라 일리리아 북부, 스페인 남부, 흑해 등 그리스 인의 발이 닿은 곳이면 어디서나 발견되는 슈퍼 히트작입니다. 명실 상부한 고대 그리스의 대표 투구라고 할 수 있겠죠.

등장과 특징

“코린토스식 투구” 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입니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만, 코린토스 지방에서 만들어진 도자기에 위와 같은 모양의 투구가 처음으로, 또 가장 많이 묘사됩니다. 따라서 현대의 연구자들은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전체적으로 이 투구는 얼굴 전체를 덮는 동글동글한 모양입니다. 한 장의 얇은 청동판을 손으로 가공해서 만들기 때문에 접합 부분이 없습니다.1 별개의 접합선 없이 얼굴 전체를 방어한다는 특징과 타격을 분산 흡수하는 특유의 동글동글한 디자인은 이 투구를 사상 최강의 투구들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특유의 디자인 덕분에 귀까지 막혀 버린다는 단점도 존재합니다만, 당시 그리스의 전쟁 방식은 밀집 대형을 이룬 보병들이 밀고 당기면서 싸우는 식이라 복잡한 명령을 듣고 기동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초기의 코린토스식 투구. 고대 그리스에서는 전리품으로 얻은 투구를 신에 대한 신전에 봉납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신전 측에서는 주기적으로 파쇄해서 묻곤 했다. 덕분에 신전 유적지를 파보면 부스러기가 많이 나온다. 이 투구도 그런 운명을 맞았다가 다시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투구 하단이 평평하게 디자인되어 있으며, 착용감을 좋게 하기 위한 가죽 패드를 덧대기 위한 구멍이 보인다. 대영박물관 소장. http://www.flickr.com/photos/bellatrix6/167733064/

기원전 6세기의 코린토스식 투구. 역시 비교적 단순했던 초기의 디자인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소장. http://www.flickr.com/photos/mharrsch/68810385

비교적 그 형태가 완성된 코린토스식 투구. BC680년경 만들어진 투구부터 뺨 부분(Chick Piece)이 길게 늘어난 디자인이 채용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투구가 목을 포함한 더 넓은 범위를 커버하게 된다. 또한, 어깨가 투구를 어느 정도 받치게 함으로써 착용감이 더 좋아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 투구는 대략 BC 55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Higgins Armory 소장. http://www.flickr.com/photos/thoog/3422029971/

테두리가 화려하게 장식된 형식의 투구. 초기부터 코린토스식 투구들은 가죽을 덧대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공 방법이 발달한 후대의 것들은 그냥 테두리를 도톰하게 처리하는 형식이 종종 보인다. 7세기 말 ~ 6세기에 걸쳐 이 테두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방식이 발달했다. 이 투구는 그러한 경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http://www.flickr.com/photos/healinglight/1051590599/

매우 성공적인 디자인의 투구이기야 했습니다만, 이 투구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썼을 때 무지하게 더울 수밖에 없었거든요. 안 그래도 푹푹 찌는 지중해 근방에서, 당시엔 초여름에 전쟁을 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건 정말 미칠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머리 위로 올려 쓰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내려 쓰곤 했습니다 – 고대 그리스의 신상 등에서 자주 묘사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올려 쓴 모습입니다. 아마 한두 번씩은 보셨을 겁니다.

대략 BC 530년부터 무구가 경량화되기 시작하면서, 코린토스식 투구는 점점 최전선에서 퇴역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코린토스식 투구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운 것은 칼키디키식 투구(Chalcidian Helmet)나 아티카식 투구(Attic Helmet)와 같은, 비교적 경량화된 투구들이었습니다. 이 투구들은 코린토스식 투구처럼 온 얼굴을 꽉 막지 않았기 때문에, 소리도 잘 들렸고 썼을 때 그리 덥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디자인이 고전적이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덕분에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상에는 거의 이 투구가 표준처럼 사용되었거든요. 후대의 다른 투구를 만들 때 모방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 투구는 고대 그리스의 황금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의 역할을 합니다. 세계 역사상 이렇게 성공적인 디자인의 투구도 드물 겁니다.

코린토스식 투구. 기원전 6세기.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904호.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도 이 형식의 투구가 한 점 보관되어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옹에게 부상으로 수여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전달되지 못하고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1986년에야 뒤늦게 전달, 1994년 손기정 옹에 의해 국립 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지금도 박물관 2층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보물 904호.

### 참고문헌

Tim Everson, Warfare in Ancient Greece, Sutton Publishing, 2004

[^1]: 또는 코린트식 투구, Corinthian Type


  1. 뒤집어 말하면 이걸 만드는 장인은 꽤나 숙련이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