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근위병의 복장 – 베어스킨과 레드코트
2005년 8월 8일 오후 3시
영국 윈저
궁전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북문으로 가던 우리는 문 앞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영국 근위병 두 명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경계근무 중인지 총을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오는 중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근위병을 보게 된 게 반가운 나머지, 재빨리 달려간 나는 약 5m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진을 찍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진로에 방해를 받은 근위병들이 "물렀거라(make way!!)" 라고 기합을 질렀기 때문이다. 머리털나고 처음 들어보는1, 윈저 성이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소리였다.
겨우 사진을 찍은 나는 반쯤 자빠지듯이 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찌나 놀랐던지, 머릿속이 다 멍멍했다.
근위병들이 진짜 전투병이 맞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예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들은 물론 실제 전투병이다 - 그것도 정예다. 다만 왕궁 등을 경비할 때 예복을 입고 있을 뿐이다. 전장에 투입될 때는 물론 위장복을 입는다.
영국 근위대의 복장은 퇴역한 무기/장비가 권위를 갖춘 의장용 장비로 사용되는 좋은 예다. 다만 아직도 국왕을 경호하고 왕궁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특유의 예복을 입고 있을 때도 총과 대검은 현대의 것을 사용한다.
모자 - Bearskin
근위병들이 쓰고 있는 커다란 털모자는 Bearskin이라 불리는 것으로, 실제로 캐나다 흑곰 가죽2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영국 근위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벨기에, 덴마크 등 몇몇 유럽 왕국의 근위대들 또한 예복으로 사용한다.
이 모자의 기원은 나폴레옹 전쟁(1799~1815)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bearskin은 나폴레옹 근위대의 척탄병(Old Guards)3들이 키를 커보이게 하기 위해 착용하던 것이다. 이것이 꽤나 인상 깊었는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근위대(Household Division)의 척탄병 연대(Grenader regiment)에 이 모자를 착용시켰고, 이어 다른 근위보병 연대 - 콜드스트림 연대(Coldstream regiment), 스코틀랜드 연대(Scots regiment)와 일반 보병들에게도 이 모자를 착용시킨다. 이 모자는 1902년 카키색 군복이 보급될 때까지 영국군 전체가 사용했다.
전투복이 발달하면서 비싸고 거추장스러운 bearskin은 군모의 자리를 내주었지만, 여전히 근위대의 의장용 예복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재 4천 명의 영국 근위보병들은 2천 개의 bearskin 모자를 돌려가면서 사용4하는데, 매년 50개에서 100개 정도를 새로 만든다. 한 개의 값이 $1,200나 되니 결코 싼 물건은 아닌 셈이다.
이 유서 깊은 모자를 위협하는 것은 다름아닌 동물 권리 보호론자들이다. 이들은 영국 국방부에 모자의 소재를 천연 가죽이 아닌 합성 소재를 사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데, 정작 병참 담당자들은 여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과제라는 이유지만, 실제로는 근위대의 사기 문제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복 - Red Coat
근위병들이 입고 있는 빨간 군복은 레드코트(Red Coat)라고 한다. 영국군의 군복에 빨간색이 쓰인 것은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직접적인 기원은 1645년 New Model Army를 창설하면서 보병들의 군복을 빨간색으로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영국군의 빨간 군복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 1902년 카키색 군복이 보급되면서 영국군은 근위대만은 여전히 19세기 말의 군복을 예복으로 고집한다.
참고문헌
R.G.Grant, Warrior: A Visual History of the Fighting Man, DK Publishing, 2007
<英 버킹엄궁 근위병 모자 소재 논란>, 연합뉴스, 2005-10-19
http://en.wikipedia.org/wiki/Bearskin
http://en.wikipedia.org/wiki/Red_coat_(British_army)
ps) 카메라를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니, 똑같은 기합 소리를 한번 더 들을 수 있었다. 다른 관광객들이 나처럼 사진을 찍으려다가 진로를 방해한 것 같았다. 나처럼 아예 정면에서 사진을 찍을 배짱은 없었던 것 같지만, 수도 없이 기합을 질러대야 하는 걸 보면 근위병 노릇을 하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인 것 같다. 저들에겐 익숙한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