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주: 아래 글은 2005년 12월 28일 작성되어 2009년 3월 수정된 글입니다.

1.

일본의 전통 문화 중에 다도(茶道)라는 것이 있다. 차를 달이고 대접하고, 마시는 과정의 예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도를 행하는 것을 다회(茶會)라고 한다. 일본 만화를 보다 보면 무사나 검객들이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다실(茶室)이란, 바로 그 다회를 위한 장소를 의미한다. 보통 정원에 연결해서 짓는 경우가 많다. 지난 27일, 도쿄 관광을 시켜주겠다는 도쿄대 학생들을 따라간 우리가 가게 된 하마리큐온시 정원(浜離宮恩賜庭園)도 그런 다실을 가운데 둔 정원 중 하나였다.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면서 정원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다실

2.

입구에서 나눠준 팸플릿을 찬찬히 살펴보던 내 눈이 한 곳에서 멎었다. 팸플릿에는 정원의 약도가 실려 있었다. 거기에 의하면, 정원의 한 구석에는 이 정원에서 벌어진 오리사냥에서 죽어간 오리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곳이 있었다. 이 정원은 본래 도쿠가와 쇼군의 오리사냥 전용 정원1이었다. 오리 사냥을 하면서 노는 곳이니, 당연히 오리가 많이 죽었을 것이다. 그 오리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충칭 폭격의 희생자들. 1941년 6월. http://en.wikipedia.org/wiki/File:Casualties_of_a_mass_panic_-_Chungking,_China.jpg

문제는 그 곳이 세워진 해가 1935년이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일본 덴노는 쇼와 덴노였다. 우리에게는 히로히토 천황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제위하던 1931년, 일본제국은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권을 수립했고, 1937년에는 중국과의 전쟁을 시작하여 1945년까지 천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죽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로 기억된다. 쇼와 덴노가 정치적인 실권 없이 신하들의 결정에 끌려간 사람이었다면 그들의 고통에 책임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기록들은, 그가 이러한 결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암시한다.

종교적인 평온함을 주는 정원. 수천만 명이 죽고 죽이는 전쟁을 결정한 덴노. 그 덴노가 위로하는 오리들의 영혼.

으스스함이 느껴졌다. 마를린 맨슨의 콘서트도 그보다 더 그로테스크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3.

살 흔들어 두 손으로 잡고 조심스럽게 마시는 일본의 녹차. 녹차가 좀 밋밋한 만큼, 떡은 굉장히 달다.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특히 내전이 빈발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수많은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고, 그 일부는 Tv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도대체 사람의 탈을 쓰고 저런 짓이 가능할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영국의 평론가 콜린 윌슨(Colin wilson)의 말이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것은 악이 아니라 무관심의 문제다. 대량 학살의 대부분은 희생자를 자신이나 자신의 처자식과는 다른 종으로 생각하는 데서 온다. 고기를 먹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소나 양고기를 자신의 살로 생각하고 있지 않듯이 말이다.”2 사람들은 흔히 문명이 발달한 20세기에 어떻게 그 많은 잔혹 행위가 일어났는지 궁금해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발달했기 때문에 더 잔혹해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잔혹이란 대개 직접 하는 것이었다. 그 수단도 신통치 않았다. 가해자는 직접 피해자들을 죽이고 고문해야 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복잡한 사회 구조는 거리낌없이 잔혹을 행하는 유용한 도구다. 중요한 과학 실험이라고 하면서 전기 충격기를 쥐어 줬더니 옆사람이 반 죽을 때까지 충격기를 눌러대더라는 심리학 실험 따위는 농에 불과할 정도다. 스케일도 크다. 발달한 과학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살해하고 고문할 수 있다. 직접 손을 놀릴 필요가 없으니 죄책감도 없다.

수백년 전에 죽은 오리떼에게 젯밥을 먹이면서 산과 들에 가득찬 시체들을 외면할 수 있는 대범함이란 여기서 나온다. 감탄스러운 문명의 편리함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 그로테스크함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다.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솔직히 나도, 거기서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명제는, 자신의 기괴함을 감추고 싶은 인간들의 변명일 뿐이다.

4.

내력이야 어쨌든, 히마리큐온시 정원은 좋은 곳이다. 아직 12월이지만, 따뜻한 일본의 기후 덕분에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 온다. 도쿄대 검도부 친구들이 이 정원을 “일본 전통의 아름다움” 이라고 소개한 것이 이해가 갔다.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함께 어울리는 경험은 하기 힘들다.

또다시 도쿄에 오는 날이 언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되든, 조심스럽게 가꿔진 일본의 정원에서 조용히 차와 떡을 즐기면서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길 시간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도 오늘처럼 깨달음 하나를 얻어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것 또한 선(禪)의 정신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일본 다도의 마음>, 센 겐지츠 / 나야 소탄 저, 박전열 역, 월간 다도, 2006


  1. 지금처럼 대중들에게 공개된 것은 메이지 이신 이후 덴노天皇의 재산이 되면서부터다. 

  2. <내전: 인류사의 불행한 동반자>에서 재인용. 월간 Geo 1998년 6월호, pp.41 

One thought on “인간의 조건

  1.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살의는 아웃소싱 되었을 뿐이고, 그 아웃소싱의 수혜를 받고 있다면 그 책임에서 벗어날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중력을 가르며 우주로 힘차게 솓아오르는 로켓을 보며 우리가 자연을 지배한 것 같은 착각을 갇지만, 인간은 한번도 자연을 거슬러 본적이 없지요. 마찬가지로 야만이라는 이름으로 폄화된 자연은 우리는 단 한순간도 벗어난적이 없다는 생각이 드내요. 전쟁을 긍정할 수 없지만, 자연을 야만으로 혐오하는 인간이 가려뒀던 에너기가 일시에 분출하는 것이 전쟁이 아닐까요? 글 잘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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