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판타지 시대극은 상상력의 과잉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여다

* 올해 쏟아져나오는 사극 드라마를 두고 DCINSIDE 역사갤러리가 들끓고 있습니다. 바로 엉망진창인 고증에, 당시의 역사적 사실 따위 저 세상으로 날려버리고 사극이랍시고 찍어대는 방송사들의 작태 때문이지요. 어떤 햏자들은 “차라리 동북공정에 협력하라” 며 분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도, 영화나 게임을 비롯한 문화콘텐츠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 주제는 제게 꽤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DCINSIDE 시햏이백 햏의 글은 현재 한국 퓨전사극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에 대해 상당히 잘 정리한 듯하여 올리.. 오(?!)

* 약간의 오타는 수정했으며 사진은 주인장이 첨부한 것입니다.

MBC의 드라마 다모이후 요즘 TV 시대물에서는 판타지 시대물이 거의 대세를 형성한 듯 싶소.

특히, 작년의 KBS의 ‘해신’은 TV 판타지 시대극의 전형을 형성한 것같소이다.

지금 현재 각 방송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고구려 관련 시대물 – 주몽,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대조영등등 – 들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작년 KBS 해신의 전형성을 그대로 답습할 것같은 예감이 드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판타지 시대물들이 여기 역갤러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고증과는 아예 담을 쌓고 있는 것이라오.

그것도 단지 미술, 복식, 건축같은 외형적 부분에 한해서 고증이 엉망인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의 성격 조형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 정치적 정세등등 시대극의 핵심에 관한 부분에서조차도 고증이 제 멋대로 엉망에 가까운 것같소.

부여시대의 판갑보다는 오히려 고려시대의 가죽갑옷에 가까운… 이러다보니 주몽과 신돈에 나오는 갑옷이 천년의 세월을 두고 비슷하다는 엽기적인 사태도 발생한다. 무협물을 찍겠다는 건지 사극을 찍겠다는 건지… 아예 경공술도 하지 그래?

더 심각한 것은 시대극은 엄연한 서사물(epic)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TV방송의 판타지 시대극은 아주 판타지 멜러물(romance)로 획일화되어간다는 것이오. 주인공이 누가 나오든간에 결국, 삼각관계이고, 사랑놀음으로 변화되고 만다는 것이오. 하기는 시대극뿐만 아니라, 각종 전문직업이 나오는 현대극에서도 직업이 어떻든간에 결국 사랑놀음으로 드라마가 변질되는게 한국 드라마의 신파성이기는 하오만…….

작년에 KBS 해신 드라마를 보면서 참 답답하게 느껴진 점이 바로 이러한 한국 시대극의 폐해가 한꺼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것이오.

8-9세기 당나라 중국에 뜬금없이 콜롯세움 검투사가 나와서 최수종씨가 검투사 복장을 하고 나온 것도 우습고, 드라마내내 송일국 오빠(?)와 수애와 삼각관계로만 흘러가는 것도 우습고, 그래서 결국 주인공도 송일국의 염장에 빼앗긴 최수종의 장보고도 한심하고…..

내 생각에는 주몽이나 태왕사신기도 혹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소.

그런데, 이들 판타지 시대극들이 내세우는 변명은 늘 자유로운 작가적 상상력 운운한다는 것이요.

창작자의 상상력 운운하면서 고증 무시, 당대의 정치 정세도 무시, 등장인물의 성격도 무시…..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이러한 판타지 시대극의 터무니 없는 상상력은 알고보면 상상력의 과잉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여및 부족에 나온 것이라오.

왜냐하면 저 해신의 드라마에서 나오는 로마 검투사의 장면이나, 앞으로 태왕사신기에 나오는 트로이풍의 갑옷이나, 주몽에 나오는 중국 송,명왕조 시대의 중국갑옷이나 결국 독창적인 이미지를 상상하지 못하고, 기존의 외국의 여러 시대서사물의 이미지만들을 그대로 차용,모방한 것이기때문이오.

해신의 검투사 장면은 당연히 리들리 스콧의 글라디에이터에서, 태왕사신기는 제작소품팀장이 자랑스럽게 떠벌린 것처럼 볼프강 페터젠의 트로이에서, 주몽의 갑옷은 중국 각종 시대무협물에서 이미지를 차용, 모방하는 것 아니겠소?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현재 한국 판타지시대물에서 주장하는 작가적 상상력은 결국 독자적으로 상상하기 귀찮아서 외국의 상상력을 차용모방하겠다는 노골적인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소..

뭐 뭘 가지고 도박을 못하냐만… 검투사는 좀 심하지 않냐?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깊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역사적 상상력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소,

왜냐하면 모든 역사학에도 사가의 사관이 반영되는 것이고 따라서 사가의 상상력또한 어쩔 수 없이 개입되는 것이라오.

수백, 수천년전의 과거의 모든 것을 현재의 우리가 알기위해서는 아무리 풍부한 일차사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일정부분 역사가의 상상력이 존재해야만, 보다 정확하게 그 시대의 면모를 입체적으로 생동감있게 알 수가 있는 것이오.

수잔 휫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 그리고 조너선 스펜스와 레이 황의 여러 역사 저작물들을 보면 역사가들의 상상력과 역사학의 성과가 행복하게 융합된 광경을 볼 수가 있소.

학자의 상상력은 비단 이런 역사학이나 인문학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오. 심지어는 물리학이나 고생물학같은 자연과학에서도 관련 학자들의 소소한 상상력이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 허다하오.

오늘날 자연사 박물관에 널려있는 공룡의 그 커다란 몸체들도 이미 18세기부터 이어진 고생물학자들의 수많은 상상력과 추리덕분에 -물론 티라노가 네발로 걷는다는 오해같은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 것이라오.

따라서, 과거 역사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고, 역사학의 근본 동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하물면 시대극을 창작하는 작가들에게 있어서 역사적 상상력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 아니겠소?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상상력은 반드시 관련 분야의 풍부하고 엄정한 지식과 학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오.

조너선 스펜서와 레이 황, 수잔 휫필드의 여러 저작물은 바로 그들 자신이 뛰어난 중국역사학의 대가이었고, 고생물학자들이 그리는 공룡의 상상도들은 바로 고생물학과 해부학, 동물생태학의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들이라오.

아무리 한국의 인문학, 그리고 역사학의 풍토가 척박하다고 할지라도, 풍부하고 신뢰성높은 역사학 지식이 이미 한국에도 수십년에 걸쳐서 축적되어있소.

그런 역사학 지식과 정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런 역사적 지식과 자료에 토대로 해서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오로지 해외의 시대물에서 여러 이미지만 차용해서 쓰는 요즘의 판타지 시대극은 정말이지 너무 얄팍하기 그지없소이다 !

태왕사신기가 모델로 삼는 판타지 ‘반지의 제왕’에도 수많은 인문학적 지식이 축적되어 있고, 옥스포드, 케임브리지같은 영국 명문대학에 축적된 고전학적 지식이 바탕되지 않았다면 반지의 제왕같은 명작은 탄생되지 않았소. JR톨킨이나 동세대의 아놀드 토인비 (둘다 옥스포드 동문이라오)나 모두 고전 그리스,로마의 인문학의 세례를 받고 태어난 셈이라오.

엄연한 하이 판타지인 반지의 제왕에도 그렇게 수많은 인문학적 지식이 바탕으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반지의 제왕을 모델로 삼는 태왕사신기에서는 오로지 작품의 뽐새나 간지만 챙기려는 얄팍한 돈넣고돈먹기식의 물량공세로만 드라마를 이끌어간다면 그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소..

아무튼, 요즘 피크를 이루고 있는 판타지 시대물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하게끔, 특히 우리 역갤러분들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한다고 본좌 생각드는 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