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기사가 되는 방법은 보통 귀족 - 속칭 "푸른 피" - 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기사 훈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자유민은 기사가 될 자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워낙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이다보니(각종 무구값과 말값을 생각해 보세요) 아주 부유한 집안이 아니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극소수의 평민이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워 기사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이건 예외로 해 둡시다.)

12세기 기사를 재현한 사진.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다. http://www.flickr.com/photos/8765199@N07/2878150115/in/set-72157606473530717/

이러한 기사가 되는 과정은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시동(Page), 종자(Squire), 견습기사(*)의 순입니다.

귀족의 아들은 일곱 살 정도가 되면 자기 아버지가 섬기는 주군 밑에 들어가 시동(Page)이 됩니다. 시동이 되고 7년 동안 주인집 마님에 의해 양육되는 시동은 일종의 웨이터나 하인 비슷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보통 예절교육이나 종교, 사교 춤과 같은 것들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기초적인 체력훈련과 함께 말타기, 기초적인 병장기 조작, 매를 다루는 것 등의 사냥 스킬 등을 배우게 됩니다.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성직자에게서 라틴어나 읽기, 쓰기를 배울 때도 있고(초기의 기사들은 거의 문맹이었지만 말입니다.) 귀족들의 교양인 "니벨룽겐의 노래" "롤랑의 노래" 등의 영웅 서사시 등도 배우게 됩니다. 제 생각엔 나이든 은퇴 기사에게서 각종 전쟁에 대한 지식을 전수받는 것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중세의 태피스트리에 묘사된 전투 장면. 기사들이 착용하고 있는 것은 Great Helm으로, 대략 13~14세기의 것으로 보인다. 투구 위에 착용한 다양한 모양의 모자는 투구를 쓰고도 피아를 식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7~8년 정도 겪어서 14세 정도가 되면 경험있는 기사에게 보내져 종자(Squire)가 되어 교육받게 됩니다. 각종 무술과 마상훈련을 반복하고, 기사도를 배우고, 전에 설명된 삽질(?)을 하는 거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주인을 따라 실제 전투에 투입되기도 합니다. 예외적이긴 합니다만 여기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 견습기사 단계를 건너뛰어 곧장 기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생을 해서 경험을 쌓고 주인에게서 각종 무술과 예법 등을 배워 어느 정도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되면 똥오줌과 함께 고생하던 어린 소년은 어엿한 기사가 됩니다. 이것이 대략 20대 초반의 일입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중세시대 최고의 전문직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갑옷담당종자라는 것은 일종의 "신참에 대한 신고식"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 Squire를 견습기사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어설프나마 기사 취급을 받는 시기는 마지막 단계이므로 약간 다르게 번역했습니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종자에서 곧장 성직자 등으로 진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