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쥐꼬리 세개만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뭐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는 영화지만요.

1.

살짝 뻥 좀 치자면, 오락 산업은 감정 이입으로 먹고 사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의 만년 솔로도 영화 속에서는 전지현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며 할 일 없는 백수도 게임 속에서는 전장의 영웅이 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대리 만족하는 것이 오락 산업의 매력이다.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뿐인디..."

사람이 현실 세계에 사는 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완벽하게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내 모습과 내가 원하는 내 모습 사이에 어느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락 레저 산업이 밥벌이를 하는 이유다.

문제는 그 적절한 선을 유지하기 힘든 경우에 발생한다. 현실 속의 내 모습이 내가 원하는 내 모습과 너무나도 떨어져 있다면, 잠깐 잠깐의 대리 만족으로는 잊지 못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으니 살 맛이 나겠는가.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일 것이다.

현실 혐오로 우울증에 걸려버린 대표적인 예

2.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어리버리 뚱녀 한나의 삶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녀의 삶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직업도 그렇고, 쭉쭉빵빵 몸매인 척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폰섹스가 그렇고, 심지어 치매 든 아버지 앞에서 죽은 엄마를 연기하는 것이 그렇다. 그녀는 이렇게 연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어떻게 계속 속이면서만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 초반 그녀의 행동 중에서 인상 깊은 광경이 있었는데, 바로 섹시 여가수 아미의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한나는 그래야 노래가 더 잘 나온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좀 다른 것 같다.

한나는 자신의 음악성을 인정해 준 유일한 사람인 한상준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바로 (가망 없어 보이는)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거다.

"비계 띠고 처먹어, 이년아!!"

상준과의 사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씨름판에 나가도 상관없을 것 같은 그녀의 외모다. 한나가 사랑을 이루기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그러한 현실을 인정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비참한 일이다.

대신, 현실의 미녀 아미에게 감정 이입하는 순간 한나는 비참한 현실을 잊을 수 있다. 적어도 그게 편하다. 그러니 자기가 무대에 선 것처럼 몸이 흔들릴 수밖에.

이런 식의 현실 외면을 놓고 보면 한나가 속인 것은 남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도 속이는 사람이 남 속이는 것은 대수겠는가. 그렇게 그녀는 착각 속을 살아간다. 아미의 악의로 빨간 알약을 삼키기 전까지.

3.

사실 자신을 속이는 문제는 못생긴 뚱녀 한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언제나 초라하기만 하고, 끔찍한 현실에 주눅이 들어버린 인간은 언제고 자기 자신을 외면하고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반복되는 대사 - "성형 같은 건 자신한테 자신감이 없는 애들이나 하는 거야." - 는 비단 성형미인들만의 일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의 문제다. 그들도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자신을 속이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보기 좋은 성형 미인을 혐오할까? 남이사 뭘 하든 관심을 끊거나 자기도 성형하면 될 일을 갖고 그렇게 난리를 치는 이유는 이거다: 성형 미인을 욕함으로써 성형을 안한 자기는 더 나은 인간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속이고 마음에 안 드는 현실과 초라한 나를 잊는다. 난 이뻐질 수 없었던 게 아니야. 난 착하고 정직해서 성형을 하지 않은 것 뿐이야.

오타쿠에 대한 혐오나 된장녀 논쟁도 사실 이런 식의 문제다. 오타쿠들을 현실을 외면하고 미소녀 게임에나 탐닉하는 안여돼라고 욕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자기 자신을 외면할 수 있다. "난 저 혐오스러운 넘들보다 나아" 하면서. 된장녀 논쟁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여자보다 너무 많아져버린 세상, 자기 여자에게 뉴요커의 삶을 제공할 수 없으면 능력있는 남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는 참혹한 현실. 된장녀들을 욕하는 순간만은 여기서 눈을 돌릴 수 있다.

현실 속 자기 모습을 외면하려는 필사적인 노력

실제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오타쿠의 모습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히키코모리에 가까우며, 실제 오타쿠들의 모습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된장녀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본 된장녀 비슷한 인물들은 차라리 싸가지없는 귀족녀에 가까웠다. 이들은 모두 상상 속 존재일 뿐이다.

4.

<미녀는 괴로워>는 코미디 영화인 만큼 관객을 웃겨 주는 데 온 역량을 집중한다. 뚱녀 한나의 어리벙벙한 행동이 관객들을 웃기고, 전신 성형을 위해 벌어지는 대공사가 사람을 배꼽잡게 하며, 미인이 되면서부터 확 달라진 상황이 관객들을 뒤집어지게 한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픈 여성의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다. 도저히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한나는 자신을 바꾸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대수술을 강행한다. 덕분에 상상 속에서만 허용되던 섹시한 의상을 걸치고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지만 진짜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그녀는 아직도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나는 "미녀는 좋고, 추녀는 싫다." 는 사회의 기준에 주눅들어 있었다. 하지만 영화 후반 그녀를 주눅들게 하는 건 "성형미인은 나쁘고, 자연미인만이 좋다." 는 사회의 인식이다. 꾸미고 고치고 연기하는 것이 당연한 연예계조차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이 과거 추녀였다는 것, 전신 성형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이 문제는 뚱뚱한 몸매처럼 자기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발각되는 순간 큰 파문이 예상되니 그야말로 시한 폭탄인 셈이다.

5.

영화 끝에서 상준이 한나에게 반해버린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솔직 당당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성형미인이라는 이유로 욕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렇게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면, 누가 성형미인이 되든 말든 신경 끄고 내면을 가꾸는 일에나 전념하면 될일이다.

* 대사 구성이 장난 아닌 영화입니다. 같은 대사를 다른 상황에서 들으면서 느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할까요. 사실 꽤나 저예산 영화였는데 이렇게 뜰 만도 합니다. 그리고 김아중, 가수만큼이나 노래도 잘 부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