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레누스와 풀로
드라마
두 인물이 실제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갈리아 전쟁 5년째(BC 54년)의 기록 44절에 나옵니다. 이 해 카이사르는 2차 브리타니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갈리아 땅에서의 월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이 해 갈리아 땅에는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전 군단들이 한 곳에 모여서는 도저히 먹거리를 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갈리아 원정기의 카이사르 휘하의 군단들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 겨울을 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간이 배밖으로 나와 있다고 해도 8개 군단 4만 5천명이 넘는 대군이 배치된 곳을 공격할 갈리아 부족은 없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해에는 부득이하게 휘하 군단들을 약간씩 거리를 두고 배치한 상태에서 겨울을 나게 하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분산하여 월동중인 로마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카이사르에 불만을 품고 있던 에부로네스 족장 암비오릭스Ambiorix였습니다. 일단 그는 가까운 곳에 주둔한 14군단을 포함한 15개 대대 9천 명을 유인하여 전멸시킨 뒤, 근처의 네르비Nervii 족을 꾀어 퀸투스 키케로Quintus Cicero가 이끄는 11군단의 주둔지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보레누스와 풀로가 등장하는 것은 11군단이 네르비족의 포위 공격을 막아내는 부분입니다.
두 사람이 언급된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권에서는 "중대장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정도로 짤막하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부분입니다.
이군단(11군단)에는 이름난 백인대장 둘이 있었는데, 둘 다 대단히 용맹했으며 선임 자리를 앞두고 있었다. 그들의이름은 티투스 풀로와 루키우스 보레누스였다. 두 사람은 누가 우월한지를 놓고 항상 다툼을 벌였고, 해마다 가장 중요한 직위를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적과의 싸움이 한창일 때 풀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보게 보레누스, 무엇을 망설이는가? 이기회에 자네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게 어떠한가? 오늘 결판을 내보세."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진지 밖으로 뛰쳐 나갔다.
(중략)창 하나가 풀로의 방패를 관통한 후 검대에 꽂혔다. 그 충격으로 칼집이 돌아가 오른손으로 검을 뽑는 데 애를 먹었고 그러는 사이 풀로는 적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그 때 그의 적수인 보레누스가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중략)보레누스가 적에게 둘러싸이자 이번에는 풀로가 그를 구하러 달려왔다. 두 사람은 몇 명의 적을 죽인 후 아군 병사들의 환호를받으며 무사히 진지로 돌아왔다. 이렇듯 그들의 경쟁심과 싸움에 행운이 따른 덕분에 그들은 반목 속에서도 서로 돕고 상대방의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가 더 용감한지는 끝내 판가름 나지 않았다.
- [Gaius Iulius Caesar](http://en.wikipedia.org/wiki/Julius_Caesar), *Commentarii De Bello Gallico*(카이사르, <갈리아 원정기>, 사이, 2005, pp.218-pp.219)
보레누스와 풀로는 드라마에서는 13군단의 백인대장과 휘하 군단병으로 등장했습니다만, 실제로는 둘 다 11군단의 백인대장이었던 셈이지요. 둘이 등장하는 전투도 드라마의 알레시아 공방전이 아니구요. 다만 드라마 episode 1에서 그랬듯이 서로 치고받는 일 정도는 실제로 있었을 법 하다는 느낌이 드는 기록입니다.
여기서 풀로와 보레누스가 놓고 다툰 선임 백인대장 자리Primus pilus는 마리우스의 병제개혁 이후 1개 군단 59명의 백인대장 중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시기의 로마군은 백인대장 5명의 지휘를 받는 제 1 보병대와 각각 백인대장 6명의 지휘를 받는 9개 보병대를 합쳐 1개 군단으로 편성되었는데, 선임 백인대장은 전투를 이끄는 제 1 보병대의 다섯 백인대장 중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병사들의 선망인 만큼,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닌 셈이죠. 이 정도면, 자리를 놓고 다툴 법도 하지요.
참조문헌
- Warfare in the classical world, John Warry,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5
(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 임 웅 역, 르네상스, 2001)
: 서양 고대의 전쟁사에 대한 책. 사료를 소개하고 정치적인 배경을 서술한 뒤 전쟁사의 전개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각종 지도 및 도판이 풍부한 책. 번역의 품질도 나쁘지 않지만, 어찌된 게 도판 목록과 참고문헌 목록이 없다. 한국에 번역되어 나오는 역사책에서 자주 있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