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국 요구르팅의 서비스가 끝을 맞았습니다. 2005년 5월 오픈 베타서비스를 시작했으니 1년 반만에 게임으로서의 수명을 다해버린 셈입니다. 게임의 평균 수명이 얼마인지는 모르되, 오래된 고전 게임들은 아직도 하는 사람이 많고 또 요즘 게임의 제작 기간은 최소 1년 반 이상 걸린다는 걸 생각해 볼 때, 그야말로 요절했다고 밖에는 표현이 안되는 거죠.

먼저 오래 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요구르팅에 심심한 애도 표합니다. 적절할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게임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탄생하는 만큼, 거기 들어간 애정과 시간은 새 생명을 잉태한 임산부의 그것보다 하등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당에 요절까지 해버렸으니.

2.

제가 요구르팅을 알게 된 것은. KFC의 TV 화면으로 흘러나오는 "Always"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였습니다.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코요테의 신지가 부른 이 노래는 요구르팅의 테마송이기도 합니다.

만화적 감성 300%인 요구르팅 뮤직비디오

어렸을 때부터 게임 만드는 것을 꿈꿔왔고 지금 게임 만드는 회사에서 병역을 수행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는 저는 이상할 정도로 요구르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MMORPG 자체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지금도 약간 그런 편입니다만 온 정신이 휴대용 머신을 비롯한 콘솔 게임판, 혹은 "어떻게 하면 나도 저 판에 좀 끼어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하는 마당이니 대작이니 뭐니 해도 쏟아져나오는 MMORPG 떼거리 중의 One of them 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제가 뮤직비디오 한 편에 완전히 넘어가버렸단 말이죠.

요구르팅 뮤직비디오,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저런 경쾌발랄, 예쁜 화면을 뽑아낼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시원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신지가 불렀단 말입니다. ^_^

영화 마케팅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일단 관심을 끌어야 한다. 관심을 못 끌면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요구르팅 뮤직비디오를 보고서야 이 말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쳐다볼지 안볼지도 모르는 배너 광고에 돈다발 때려 넣는 것보다 이런 거 하나 만드는 게 확실히 더 나을 것 같습니다.(그래봤자 13억 들었다는.. -_-;)

3.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요구르팅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뭐 우리나라 MMORPG들이 마우스 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만 반복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기는 했습니다만, 요구르팅은 그 수준도 아니었습니다. 뮤직비디오에 낚인(--;) 저도 레벨 5에서 결국 그만두고 말았습니다.(딱 두 번인가 접속했다, 이런 말씀입죠 -_-;)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요구르팅>은 게임플레이 하나 빼고 다 퍼펙트했습니다.

당최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왜 그리도 재미가 없었는지는 콕 집어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확실한 건 수십 개의 몹 사이에 둘러싸여서 하나씩 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클릭(-_-;)만 해줬던 것이 기억에 남을 뿐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마우스를 클릭해서 몹을 잡는다는 활동 자체가 지겨워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래도 같은 방식의 게임인 디아블로2는 아직도 재미있는 걸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디아블로2에서 디아블로를 잡기 위해 다섯 개의 봉인을 뜯고, 액트5에서 달려오는 자폭 몬스터 쉐이들을 피해다니는 것은 꽤나 재미있었으니까요. 액션 RPG의 재미는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요. 새로운 궁금증입니다.

4.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블록버스터의 시대는 가버렸는가 하는 궁금증입니다. 100원 놓고 60원 버는 것보다 1000원 놓고 시장을 싹 쓸어서 300원 버는 게 수익률은 반밖에 되지 않지만 금액으로 치면 어쨌든 다섯 배나 벌지 않았느냐 하는 게 바로 블럭버스터의 사고방식입니다.

  • 영화의 블록버스터 흥행 전략에 대해서는 조만간 한 번 포스트할 생각입니다.

문제는 엄청난 금액을 쏟아부어서 블록버스터를 만든다고 해도, 그게 시장을 싹 쓸어먹을지 못 먹을지는 귀신도 모른다는 데 있겠습니다. 게다가 그 "못 쓸어먹는다." 의 가능성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뮤직비디오의 배경에 깔린 안나댄스는 한동안 인터넷을 진동시켰다.

이러한 현상의 뒤에는 취향 다변화라는 사정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즐겼습니다. 사람들이 비슷비슷하니 한 방에 시장을 싹 쓸어먹는 것도 가능했지요.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고, 이들은 자기 좋아하는 데 열중하지 모두가 보는 것에 열중하지 않습니다. 이젠 한 번에 쓸어먹을 수 있는 Max 면적 자체가 넓지가 않다는 얘기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작비까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습니다. 영화는 툭하면 최대 제작비 기록을 갈아치우는 판이고 일본의 게임 개발사들이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개발 비용에 입을 못 다문 지도 오래됐습니다. <스타 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영화에서 손 떼겠다." 라고 한 적이 있는 걸 보면 그 바닥도 확실히 무슨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죠.

대작 온라인게임 '레드오션'되나 [한국경제 2005-09-06 17:27]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문화산업의 틀 자체를 죄다 다시 맞춰야 할 판입니다. 영화든 게임이든, 초반부터 로켓포를 들고 맞지 안맞을지를 놓고 도박을 하느니, 일단 산탄총으로 한 번 쏴 보고 맞는 게 있으면 그 때 가서 돌격총으로 바꿔 드는 방식이 더 나은 세상에 와버린 건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5.

그러고 보니 요구르팅의 원화를 담당했던 안나씨는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네요. 취향이 취향이다보니 - 예, 그렇습니다. 저 미소녀 매니아입니다 - 깜찍한 미소녀를 잘 그리는 안나씨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집니다.

요구르팅은 갔지만 앞으로도 안나씨의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