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멧돼지 뱃지 핀. 대영박물관 소장.

1.

현대를 사는 우리는 디자인이 통일된 군복과 부대마크 같은 것에 아주 익숙하지만, 이것이 등장한 것은 의외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세 말기까지만 해도 지휘관(영주)에 따라 착용하고 있는 문장이 죄다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통일된 군복 비슷한 물건이 등장한 것은 백년전쟁이 끝나갈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백년 전쟁 과정에서 대규모 군대의 장기적 작전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통일된 식별표지의 필요성에 모두가 익숙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잉글랜드 왕국이 칼레를 제외한 대륙 영토를 전부 상실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젠트리, 요먼 계급의 군인들이 잉글랜드 본토로 몰려들어왔기 때문이다. 대귀족들은 먹고 살아야 했던 이들을 싼 값에 대거 고용하면서 사병 규모를 크게 늘렸다.

이 과정에서 작은 영주의 수행원 사이에서나 적용되던 복장 통일이 대귀족의 군대 단위로 확산됐다. 백년전쟁 이후 잉글랜드의 귀족들이 잉글랜드의 왕위를 놓고 다툰 장미전쟁(1455 ~ 1487)에서 각 귀족들의 군대는 비슷한 색상의 상의와 뱃지를 착용하고 싸우게 됐다. 리치몬드 백작이 이끄는 군대는 흰색과 초록색으로 깔맞춤이 된 상의를 입는다거나, 뭐 이런 식이었던 것이다. 어설프지만, 통일된 군복과 부대마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였다.

2.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서 2년 동안(1483~1485) 영국의 왕위를 차지했던 '꼽추왕' 리처드 3세는 흰 멧돼지1를 자기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의 즉위식 같은 주요 행사 때마다 멧돼지 뱃지를 대량으로 만들어 지지자들에게 뿌렸다. 그만큼 유물도 많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지만, 보즈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패사시킨 헨리 튜더가 영국의 국왕으로 즉위하자 과거 리처드 3세를 지지했던 세력이 목이 날아갈까봐 몰래 없애버렸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물은 둘 뿐이라고 한다.

3.

현대의 공업 수준에서 뱃지핀 같은 것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물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물건을 수작업으로 하나씩 만들어야 했던 중세에는 이 정도 물건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공이 들었다. 대부분의 뱃지는 비교적 염가인 청동으로 만들어졌을 뿐이지만2 이 뱃지는 은박 장식이 덧입혀졌다. 아마도 꽤나 신분이 높은, 그를 지지한 귀족에게 주어진 것이었을 것이다.

4.

모자에 꽂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 핀은 1999년 발견되자마자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멧돼지의 앞발 부분과 뒤쪽의 핀 부분은 망실되어 없다.


  1. 특별한 이유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위키피디아에서는 요크 왕조의 본거지이자 리처드 3세가 한 때 공작을 맡았던 '요크(York)' 시의 이름에서 온 것으로 추측한다. 즉, '요크'의 라틴어 이름인 'Eboracum'를 줄인 'Ebor'가 '흰 멧돼지'를 의미한다는 것. 

  2. 1930년, 미들햄 성의 해자에서 발견된 물건이 딱 이 케이스. 리처드 3세는 자기가 자란 이 성을 아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