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의 해부학: 신라·가야 종장판갑, AD 4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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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갑옷에서 철제 갑옷으로
그러면 종장판갑은 어떻게 등장했을까요? 대체로 한반도 내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첫 번째 근거는 이러한 형식의 갑옷이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일본에서 발견되는 갑옷들은 한국에서 발견된 것에 비해 미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한반도 남부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져서 해상 교역로를 타고 일본으로 전파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두 번째 근거는 처음부터 상당히 완성된 형태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장판갑으로 생각되는 유물은 울산 중산리 75호분에서 발굴된 판갑입니다. 이미 이 갑옷에서부터 종장판갑이 가지는 기본적인 특징들을 어느 정도 갖춘 상태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철로 갑옷을 만들기 전에 제작 방법이 어느 정도 정립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면 초기의 종장판갑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아마 가죽이나 나무 등일 겁니다. 한국의 고분에서는 옻 덩어리가 출토되곤 하는데, 가죽 갑옷에 옻칠을 한 것이 썩으면서 옻만 남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과 비슷한 갑옷 문화를 공유하는(영향을 받은) 일본의 경우, 매우 희귀하지만 나무 등을 깎아 만든 갑옷의 유물이 몇 점 전합1니다. 따라서 이전의 가죽 갑옷이 공격 무기의 강화에 따라 철제로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흔히 가죽 갑옷이 얼마나 방어력이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본래 갑옷은 가죽으로 만드는것입니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주례(周禮)는 여기에 대해 "예전에는 가죽으로 만들어 갑(甲)이라 하고, 이제는 철로 만들어개(鎧)라 한다." 고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죽 핸드백이나 가방 등과는 달리 굳혀 만든 가죽은 그 강도가 상당하며,전투에서 충분한 방어력을 보일 수 있습니다 - 무엇보다 가죽 갑옷 정도만 해도 매우 비싸기 때문에 입기 힘듭니다.
현재까지 종장판갑은 변한과 진한 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마한 지역에서도 전통적으로 쓰여 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판갑이 마한 지역에서 발견된 적도 있습니다. [기사링크] 중국측 사서에도 마한에서는 보병을 주축으로 한 전쟁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는 만큼, 보병들이 입기에 안성맞춤인 판갑은 삼국시대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용되기 전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아직 가죽제였겠지만요. [연관글: [삼한 시대의 장궁](https://blog.gorekun.com/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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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마츠시 박물관에 소장된 나무 갑옷 조각. 팔갑옷과 어깨 갑옷으로 보인다. 나라 토다이지산 고분에서 출토된 4세기 후반의 옻칠한 가죽 판갑 조각, 효고현 니시노산 고분에서 출토된 5세기 후반의 등나무 판갑 조각. ↩
가죽갑옷이 저렙들만 입는 싸구려가 아니었군요. :) 근데 충분한 방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는데, 어느 정도의 공격까지 막아내는 건가요? 칼과 화살을 막을 수 있었는지?
1. 아무래도 게임 같은 대중문화의 영향이 크죠. :)
2. 정확히 이야기하기는 힘든데, 위치 에너지를 가득 실어 화살로 명중시키거나 정통으로 칼을 후려치지 않는 한 갑옷을 부수기는 힘듭니다. 프로 무사들이 전투 상황에서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갑옷이 방어하지 않는 부분을 공격하거나 도끼 등으로 후려쳐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물건으로 비교를 해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겁니다. 군인들이 신는 딱딱한 군화를 식칼 등으로 내리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왠만해서는 잘리지 않습니다. 군화 가죽의 경우 어느정도 무두질이 된 것이라는 걸 감안하면 진짜 제대로 된 딱딱한 가죽은 한방에 베어버린다는 게 상당히 힘들겠죠.
서애 유성룡 대감이 영의정때 임란도중 평양성전투 지휘하시면서 입으셨던 찰갑이 가죽찰갑입니다.;;;
게다가 조선시대 유물중 수(장군), 부원수, 원수 같은 계급이 표시된 갑주중 거의 대부분이 두정피갑(가죽 두정갑)입니다.
가죽갑옷이 절대 하층계급용 갑옷은 아니죠.
오히려 투구의 경우 조선후기 유물을 보면 수,부원수, 원수 등 상위 계급의 투구는 몸체가 가죽이나 종이인 반면, 계급이 표시되지않고 별다른 장식이 없어 하급군관 혹은 병사용 추정 투구들이 철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pashiran // 그것이 정답이군요. 군화!!
졸라맨K // 정작 저는 그 가죽찰갑을 사진으로만 봐서 직접 가서 보고 싶은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혹시 알려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조선 후기의 가죽 갑옷들의 경우 화약 병기로 인해 갑옷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국방이 해이해지는 상황의 반영이기 때문에 예로 들기엔 약간 부적절한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댓글이 많이 달렸네요. 덕분에 종이 갑옷도 알게 됐습니다.
동남아시아 어디에서인가 한반도 남부지역 판갑과 유사한 갑주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그런데 혹시 아시는게 있으신지요?
오래전이라 출처도 기억이 안나 혹시나해서 질문드립니다.
글쎄요, 저는 동남아시아 쪽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종이로 만든 갑옷도 쓰이는 마당에, 가죽은…
가야 판금 갑옷은 독자적으로 발전했군요.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하지만 목을 보호하는 부위인 경판의 경우, 가죽으로 만들기엔 좀 부담스러운 부분인 만큼 찰갑에 부속되는 경갑을 흉내내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성룡 찰갑은 저도 정확한 소장처는 알지 못합니다. 한국의 갑주에는 후손에 의해 보관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책이 워낙 예전책이라서요… 번동아재님 같은 분은 아실것 같긴 합니다만….
문화재청에는 후손에 의해 보관중인 것으로 나오긴 합니다.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12,04600000,37#
전시요청이 있을때마다 박물관에 전시하고 평상시는 후손들과 정부쪽 관리인이 관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꼽아 놓은 유물이 몇 개 됩니다. 대가야의 기마전사를 묘사한 토기는 3개 정도가 전하는데, 그 중 하나만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 두 개는 개인 소장입니다. 저는 논문에 실린 사진으로 봤는데, 실물을 볼 기회가 생기지 않더군요. 심지어 복제품도요.
언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달려가서 사진을 찍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지요. 이것이 진정 전사의 자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