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폴리는 유명한 보드게임이고, 그 변종도 많다.

하지만 이 게임의 백미는, 한 바퀴 돌 때마다 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Monopoly

흔히 간과되는 것이지만, "플레이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 는 룰은 모노폴리의 게임플레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룰이 게임을 진행시키고, 흥미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모노폴리는 결국 플레이어들 간에 돈을 주고받으면서 게임이 진행된다. 문제는 게임 초기에는 그럴 일이 별로 없다는 것. 플레이어끼리 거래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부동산을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부동산 몇 칸 사고 나면 초기 자본금은 바닥이 나는데, 게임 판에는 주인 없는 칸이 더 많으니 남의 칸에 들어가서 돈을 지불할 일도 없다. 돈 들어올 일이 없으니 새 부동산을 구입할 여력이 있을 리도 없다. 악순환. 게임플레이는 자연히 지지부진해진다.

mega monopoly has skyscrapers

플레이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돈을 지급한다는 룰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현실 세계와는 달리, 모노폴리 게임에서는 뭘 해도 돈이 은행=정부로 쏠려 들어가게 되어 있다. 현실에서 부동산을 사고 팔 경우 대금은 거의 민간 사이에서 오가지만, 모노폴리에서는 은행 금고로 들어가는 식이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이 가진 돈=시중에 있는 돈이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 룰 덕분에, 게이머들 사이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현금이 공급된다.

이상하다고? 글쎄... 현실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지 않나?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거나 지급준비율을 낮출 때, 난 뭔가 비슷한 걸 느낀 것 같은데.

Monopoly Justice

또 하나는 게임 진행에 따른 명시적 보상을 지급한다는 점. 를 해본 사람은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게임은 화면 위에서 떨어진 동전이 특정 부위에 맞을 때마다 릴이 돌아가고, 여기서 별별별(☆★☆)이 나온다거나 하면 상금이 나오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동전이 잘 맞는 게 중요한데, 안 맞아도 상심할 것은 없다. 동전이 엉뚱한 부위에 맞을 때마다 화면 옆에는 게이지가 올라가게 되어 있으니까. 게이지가 꽉 차면,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릴이 돌아간다. 한때 전국의 게임장을 가득 메웠던 바다이야기 폐인들, 이 룰이 없었다면 왜 상금이 안나오냐면서 게임 접었을 사람이 수두룩 했을 게다.

너무 매니악한 예라고? 그렇다면 슈퍼마리오에서 동전 100개를 모으면 목숨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도 있다. 게임의 재미란, 한 마디로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이 룰은 꽤 간단하기 때문에, 게임을 잘 못하는 사람1에게도 어느 정도의 동기 부여 + 보상 지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간단한 룰이지만, 이 룰이 없었다면 슈퍼마리오의 재미 중 10% 정도는 없어졌으리라.

마지막으로 이 룰은 역전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게임플레이를 더 흥미롭게 만든2다. 모노폴리는 부익부 빈익빈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 룰이 뒤쳐진 플레이어에게 현금을 공급하는 덕분에, 운만 조금 따라 준다면 앞서나간 플레이어를 제치는 것도 가능해진다.

Monopoly in the Park (10)

나는 게임을 할 때, 그 룰들을 곰곰히 뜯어보는 편이다. 결코 적게 본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많은 룰들 중에서, 나는 모노폴리의 "한 바퀴 돌 때마다 보상" 이라는 룰만큼 묵직한 룰은 보지 못했다. 룰 하나만 빼내서 모노폴리를 망쳐 보라고 한다면, 나는 당장 이 룰부터 없애겠다. 무인도니 뭐니 다른 룰들 말고.

그건 완전했어. 음표 하나만 빼도 전체가 무너져 내리지.

- 밀로스 포만, , 살리에리의 대사 中


  1. 모노폴리에서 주사위 운이 억세게 없는 사람이나 바다이야기에서 동전 운이 없는 사람, 슈퍼마리오에서 캐릭터 컨트롤을 잘 못하는 사람, etc. 

  2. 사실 이건 무인도 등 다른 룰들의 공헌이 더 크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