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만 바꾸면 되는 이야기 4
1.
A: 항상 느끼는 것인데, 영화 전문 기자들의 영화평은 왜 그렇게 오락영화에 평가가 박할까?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별 4개 이상을 주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애.
B: 전문적으로 영화를 평하려면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봐야 하겠지? 바로 그게 문제야.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 눈에는 웬만한 패턴 같은 게 뻔히 다 보이기 때문에, 평범한 오락영화는 눈에 안 들어오거든.
2.
A: 항상 느끼는 것인데,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학습량이 애들 평균적인 인지용량을 훌쩍 넘어간다며?
B: 교육과정을 결정지을 정도의 자리에 올라가려면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하겠지? 바로 그게 문제야. 그렇게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인지용량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평균적인 사람들을 이해 못하거든.
3.
A: 항상 느끼는 것인데,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왜 그렇게 까다로울까? 뭐 하나 프로그램 짜달라고 하면 "두리뭉실하게 얘기하지 말고 좀 더 확실하게 얘기해 봐."라는 말만 하는 거 같애.1
B: 프로그래머 일을 하려면 컴퓨터라는 기계가 돌아가는 방식에 굉장히 익숙해야 하겠지? 바로 그게 문제야. 매사를 수학 기계가 알아들을 정도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약간은 두리뭉실하게 표현하는 게 더 익숙한 평범한 사람들을 이해 못하거든.
4.
A: 항상 느끼는 것인데, 지하철요금 올리는 사람들은 이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사정을 잘 안봐주는 것 같애.
B: 지하철 요금을 결정할 정도의 지위에 올라간 사람이라면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겠지? 바로 그게 문제야. 그 정도로 성공한 사람들은 좋은 자가용 타고 다녀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이해 못하거든.2
5.
A: 항상 느끼는 것인데, 경제정책 결정하는 사람들은 시장자율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애.3
B: 경제정책을 결정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경제나 행정 등에 지식이 많겠지? 바로 그게 문제야. 그 정도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경쟁에서 약자가 되지 않거든. 평생 땅만 갈아 온 농부처럼, 경쟁에서 약자 혹은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사람 사정을 모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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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회사나 웹서비스 회사에서 일하는 기획자들이라면 이 대화가 상당히 익숙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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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 지하철은 실제로 굉장히 가격대비 품질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지하철 9호선을 운용하는 맥쿼리인프라는 이런 곳이라고 한다. 사실 나도 시장원리 자유경쟁 이런 거 그리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데, 정작 그걸 금과옥조처럼 외쳐대는 인간들이 저딴 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걸 볼 때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싶어질 때가 있... 아니,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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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여기에는 약간의 현실적 문제도 있다. 시장자율로 결정하는 게 많은 경우 가장 효율적인 정책수단인 데다가, 뭔가 합의점을 찾기도 어렵고 뭔가 잘못되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다른 정책 수단들에 비해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 위험 부담도 적다. 시장 실패에 책임를 묻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