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가의 세 마리아 (The Three Marys at the Tomb)
1.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장사 지내진 뒤, 안식일이 지나고 이튿날 새벽이었다. 예수 주변의 여인 세 명이 예수의 무덤에 갔다. 거기서 그들은 천사가 내려온 것을 보았다.천사는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예수를 찾아 왔으나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어서 제자들에게 가서 이 소식을 전하라." 그러면서 천사는 관을 열어 보여 주었다. 텅 빈 관에 예수의 시신은 없었다.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이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우선 세 여인의 이름이 조금씩 어긋나는 데다가1, 천사가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도 기록이 엇갈린2다. 어쨌든, 위 그림은 이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무덤을 찾아온 세 마리아에게 천사가 예수의 부활을 말해주고 있다.이 그림 역시 복음서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것은 마태오의 복음서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그에 따르면, 예수를 사형시킨 대사제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유대 총독 폰시우스 빌라투스를 설득했다고 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쳐 가 놓고서 부활했다고 소문을 낼 지 모릅니다." 그 말을 들은 빌라투스는 휘하의 병사들을 보내 예수의 무덤 앞을 지키게 했다.
하지만 정작 무덤을 찾아 온 마리아 일행 앞에 천사가 내려 오자, 경비병들은 까무라쳐 버렸다. 나중에야 정신을 차린 병사들 중 몇이 대사제를 찾아가 이 일을 보고하자, 대사제는 많은 돈을 쥐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잠깐 잠든 사이에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고 말하라." 총독에게 잘 이야기해서 처벌받지 않도록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준 것은 물론이다. 마태오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경비병들의 거짓말이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림에서처럼, 경비병들이 잠이 드는 바람에 천사를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2.
하지만, 이 그림의 매력은 그 부정확함에 있다. "잠든 자"와 "눈먼 자(보지 못한 자)" 이 두 표현은 성서에서 굉장히 자주 나오는 표현인데, 우선 "잠든" 상태는 영적인 죽음의 은유로 구약, 신약 모두에서 나온다3. 예수의 이적 중에도 죽은 소녀를 살리면서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다."고 한 이야기가 있고4, 예수 사후 곳곳으로 전도 여행을 다니던 바울로도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여러분은 빛의 자녀이며 대낮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습시다."5
소경 역시 비슷한 의미에서, "깨닫지 못한 자" 를 가리키는 비유로서 쓰인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예리고를 떠날 때의 일이다. 소경 두 사람이 예수가 지나 간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가 걸음을 멈추고 그들에게 물었다.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주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예수가 그들의 눈에 손을 대자, 그들은 눈을 뜨고 예수의 뒤를 따랐다는 것이다.6 비록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당대 사회 전반에서 인정받던 지식인들이었지만, 예수의 눈에는 이런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한 친구들이 다른 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영 같잖았던 모양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시궁창에 빠질 뿐이다."7 비록 이 성화는 정물같은 상황 묘사는 포기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눈 멀고 잠들어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던" 당대 공권력의 풍경은 정확히 잡아낼 수 있었다.
3.
사실 이 그림의 포인트가 바로 그 '풍경'이다. 이 그림은 병사들이 잠든 전경과 도시의 풍경을 그린 후경으로 나눠져 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100년 전에 그려진 또다른 작품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그림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황금색으로 뒤덮혀 있고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반 아이크가 그린 그림은 전혀 다르다. 일단 색감 자체가 다른 데다가, 멀리 보이는 도시 풍경이 전경보다 훨씬 작게, 멀리 갈수록 흐릿해지도록 묘사되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높다.
오늘날 우리는 독립 풍경화라는 장르를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장르는 원래 종교화에서 비롯되었다. 15세기 초, 부유한 플랑드르의 상업 도시에서는 무역으로 부를 누적한 상인 계층이 등장했다. 이들이 미술 시장의 수요자로 등장하면서 기존 작품들의 내용과 형식은 조금씩 변화를 겪는다. 성스러운 종교화의 배경에 현실적으로 묘사된 도시나 강과 같은 풍경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 그림에 그려진 사실적인 풍경은 그 결과물이다.
4.
이 그림의 또다른 주인공들은,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는 병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처럼 갑옷과 크고 무거운 무기를 장비한 보병들은 당시로선 세밀한 풍경 묘사만큼이나 새로운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13세기 이전, 보병들은 중세 유럽의 전장에서 그리 큰 존재감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보병들의 무기가 발달하고, 밀집된 보병 대열을 운용하는 기법이 보다 정교해지면서 보병들은 점점 더 전장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점에 이르면, 보병들의 전투력은 눈에 띄게 막강해져서 귀족 기사들은 언제고 이 천한 무리들의 손에 목숨을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반 아이크 형제는 지금의 벨기에 지방에 살았다. 이 지방은 당시 프랑스 동부에 있던 부르고뉴 공국의 영토였다. 그들의 그림에 부르고뉴 공국의 고위 인사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부르고뉴 공국은 1477년, 공작인 용담공 샤를이 전투에서 전사함으로써 최후를 맞는다. 그를 살해한 것은, 어느 이름없는 스위스 무장 창병이었다. 샤를의 머리는 미늘창에 얻어맞아 투구째 두쪽이 났고, 버려진 그의 시신은 늑대들과 까마귀들이 뜯어먹은 탓에 사흘 뒤 겨우 발견됐을 때는 이미 너덜너덜한 고깃덩어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의 죽음은 어찌보면 뒤이은 세기에서 기사들이 처할 운명을 예언하는 전주곡이었다.
5.
화가들이 신이나 천사가 아니라 인간과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대. 그림을 황금색으로 치장하길 그만두고 더 나은 원근감에 신경쓰는 시대. 말을 탄 기사들이 아닌 장병기로 무장한 보병들이 전장의 주인공이 되는 시대. 강대한 대공국과 그 주인이 이름없는 보병의 손에 최후를 맞을 수 있는 시대.
이 그림은 비록 성서 속의 이야기를 그렸으나, 그에 못지않게 변화하는 인간 세상의 풍경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참고문헌
- 『공동번역 성서』, 대한성서공회, 1977
- 『가톨릭 주석 신약 성서』, 성 요셉 출판사, 1998
- 박성은 외, 『서양미술사 연구』, 다빈치, 2004
그림에 나오는 무기는 핼버드가 아니라 폴액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긴 강철대라거나, 도끼날 뒤쪽의 스파이크 부분 뿌리쪽이 망치머리처럼 되어 있는 부분,
혹은 금속대와 나무자루가 만나는 곳의 원반(론델) 등….
다시 보니 그렇네요. pollaxe 내지는 버디슈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본문은 수정했습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네요
좋은 포스팅 잘봤습니다 :)
인간 세상이 변하는 순간이 그림 속에 담겼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