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no Yoko – 티알 차스카의 테마
* 저작권 문제로 인해 음원은 삭제되었음. (2009년 7월 26일)
게임을 하다가 감동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나는 딱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다. <대항해시대4>에서 티알 차스카 시나리오의 엔딩을 봤을 때다. 엔딩에서 차스카는 그동안 함께했던 동료들을 하나씩 떠나보낸다. 이와 함께 흘러나오는 티알 차스카의 테마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때 진짜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이들과 이별하는 것처럼 콧등이 시큰해졌다. 뭐라 표현 못할 복잡한 심경과 함께.
대부분의 게임 스토리는, 그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식완[^1]에 달라붙은 과자 같은 존재랄까. 하지만 내가 티알의 이야기에 일종의 진정성을 느꼈던 것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가진 내적 갈등에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티알 차스카는 잉카 제국의 후손이다. 하지만 그녀는 스페인 정복자에게서 물려받은 금발 머리카락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잉카 인과 스페인 인, 어느 쪽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정복자에 대한 저항 활동을 하는 료케 시사와 같은 이에게는 스페인에 붙어먹은 배신자에 불과하며, 스페인에서 임명된 총독인 디오고 데 에스칸테 같은 이에게는 배를 몇 척 줘서 부려먹을 수 있는 만만한 상대일 뿐이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은 에스칸테의 부하이자 연인인 후안 블랑코 정도지만, 그나마저 에스칸테가 카리브 해에서 세력이 커진 그녀를 노리기 시작하자 헤어지게 된다.
일종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에스칸테와 블랑코의 내면 또한 만만치 않다. 둘은 확장팩이 발매되기 전에는 단순한 악당과 악당 부하에 불과했지만, 티알 차스카 시나리오에서 비로소 그 복잡한 심경을 풀어놓는다. 에스칸테는 카리브 해 식민지에서 태어난 스페인 인이다. 스페인 본국은 그와 같은 식민지 출신들을 (귀족인데도 불구하고)2등 국민정도로만 취급하고, 더 많은 보물을 짜내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불만을 품은 에스칸테는 스페인 왕국에 반란을 일으켜 독립할 생각을 하고 있다. 후안 블랑코는 그런 주군의 생각에 동조하고 충성을 바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연인인 티알이 다치게 될까 걱정이다.
결국 티알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실력을 쌓아 카리브 해로 돌아오고, 디오고 데 에스칸테를 물리친 뒤 카리브 해의 패자의 증표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떠나가는 후안의 뒷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대항해시대4>의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기구하고 힘든 삶을 살았던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까지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음악은 다 좋았지만, 중남미의 토속 음악을 잘 변용시킨 "티알 차스카의 테마" 는 그 중에서도 백미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이 음원을 추출하는 것도 쉬운 과정이 아니었는데, 게임 CD에 트랙 형식으로 저장되어 있던 다른 곡들과는 달리 따로 저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에서 재생시켜 놓고 녹음 프로그램을 돌리는 생고생을 해서 겨우 녹음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애착이 간다.
앞으로 업데이트를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할 일이지만, <대항해시대 온라인> 역시 <대항해시대4> 정도의 사운드 트랙을 선보여 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이렇게 귀가 즐거워지는 것도 게임을 하는 재미 중 하나다.
[^1]: 딸린 장난감과 함께 판매되는 과자. 보통 장난감을 가지기 위해 구입하기 때문에, 과자는 먹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