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0일 오후 5시

스코틀랜드 - 에딘버러

일본도 한 자루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도. 에딘버러 성 군사박물관.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이차대전 중의 일본도는 정말이지 그 평가가 최악이다. 도저히, 칼로 볼 수가 없는 조악한 품질로 인해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일본도는 연한 철판과 단단한 철판을 접고 두드리기를 반복해서 만든다. 밀도 차이가 있는 철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니 당연히 그 강도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이차대전 중 구 일본군은 이렇게 만들기가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비싼 칼이 아니라, 공장에서 쇠파이프를 두드려 만든 칼을 지급받았다. 돈 좀 있는 고위 장교들은 도검장을 찾아가 주문 제작한 칼을 찼을지 모르나, 대부분의 장교들은 두세 번 베면 칼날이 망가져 버리는 이 싸구려 검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 그래도 물자가 부족한 일본이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하면서 장교들에게 칼을 한 자루씩 나눠줘야 했으니 알 만 하다.

군사박물관 구석에 이차대전 중 태평양에 배치된 하이랜더 사단이 전후 항복한 일본군에게서 노획한 일본도와 사진, 일장기가 놓여 있었다. 관람객들은 이런 물건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으나 내 눈에는 꽤나 처량하게 보였다. 저 칼, 주인 잘못 만난 죄로 이역만리에 끌려와 패잔병의 무기로서 놀림감이 되고 있구나. 뭐 저놈의 형제들은 아시아에서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앞잡이를 섰으니 사필귀정이라는 생각도 들고.

갑자기 고대 로마에서는 패배한 나라의 왕후장상을 잡아다가 수레에 끌고 다니면서 개선식의 장난감으로 썼다는 기록이 떠올랐다. 개선식의 장난감 혹은 제삿날의 제물은 아니지만 저 칼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박물관에 보관된 역사적 기념물. 승자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놀림감.

하여간 이 시기의 일본도는 워낙에 평이 형편없어서 긴장하고 봤는데, 정작 내가 봤을 때는 칼날 처리가 약간 어색할 뿐 겉보기로 특히 다른 것은 없었다. 칼의 강도는 겉보기에 모른다 - 던가, 아니면 이것이 그 "고위 장교가 비싼 돈 주고 구입한 칼"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