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 잭 스패로우가 얼간이인 이유는
1.
<캐리비안의 해적2: 망자의 함>의 흥행이 심상치 않습니다. 주말 스크린 매진사례는 물론이요 네티즌들의 평도 호의적인 것 같습니다. 방금 전 네x버 영화를 체크해보니 3035명 중 절대 다수가 10.0 만점을 주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 장담합니다. 이 영화 대박입니다.
2.
대중문화의 캐릭터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은근히 간과되고 있는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주인공은 반대로, 적대자는 그대로" 라는 원칙입니다.
헐리우드의 슈퍼 히어로 영화나 일본 대중문화를 보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보통 <슈퍼맨 리턴즈>와 같은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악당 배역은 연기를 잘 하는 고참 배우가, 히어로 배역은 약간 여리여리해 보이는 신참 배우가 맡습니다. <슬램덩크><신의 한방울> 과 같은 일본 만화에서도 주인공은 빈틈없이 강해 보이는 라이벌에 비해서 약간 모자라 보입니다.(강백호같은 열혈 바보도 있지요.) 게임 <슈퍼 마리오>에서도 보기만 해도 강해 보이는 대마왕 쿠파에 비해 우리의 얼간이 배관공 형제는 히어로라기에는 멍해 보입니다.
일단 약해 보이는 녀석이 강해 보이는 녀석을 이기니 카타르시스가 생기고, 재미가 있는 것이죠.
드라마에서도 이러한 원칙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인시대>같은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김두한 역은 싸움을 잘 못해 보이는 곱상한 사람이 맡았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도 그리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은 아니죠. <태조 왕건>의 최수종도 캐스팅 시점에서 전쟁을 소재로 한 사극에 어울리는 우락부락한 마스크라기보다 멜로불에 어울리는 마스크로 여겨졌는지라 미스 캐스팅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하야시나 구마적, 서인석 같은 반동 인물들은 척 보기만 해도 강해 보이거나 노련해 보이는 사람들이 배역을 맡았죠. 주인공의 라이벌까지 생긴 거하고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콘텐츠 수용자들은 헷갈리고, 그러면 주인공에게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반감되기 때문입니다.
3.
<캐리비안의 해적>은 결국 고참 해적 잭 스패로우와 신참 해적 윌 터너가 캡틴 바르보사라는 악당에게서 엘리자베스를 구하러 가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고참인 잭이 윌을 이끌어줘야 할 상황인데, 어떻게 된 것이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해적 초년생인 윌은 꽤나 믿음직해 보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으려고 매일 검술 수련을 하기도 하지요.
반면에 고참인 잭은 나사 빠진 얼간이입니다. 교수대에 목이 매달릴 상황에서도 배실거리기나 하고 바가지로 물을 퍼내야 하는 허술한 쪽배를 타고다니는가 하면 급기야 술집 여자들한테 두들겨맞기까지 하죠.
배를 타고 다니는 건지 멍하게 둥둥 떠다니는 건지 모를 "또라이"가 기지를 발휘해서, 카리스마를 마구 뿜어내는 캡틴 바르보사를 이기니까 영화가 재미가 있고 신나는 거겠죠. 눈치빠른 분이 <캐리비안의 해적> DVD를 보시면 삭제된 장면들 중의 많은 부분이 "잭이 멋지고 강해 보이게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잘린 거라는 걸 눈치챌 수 있으실 겁니다.
고어 버빈스키 감독은 이 장면들이 불필요하거나, 관객들의 흥미를 감소시킬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옳았습니다.
4.
개인적으로 전편을 보러 간 건 "해적의 로맨틱한 모험담을 보고 싶어서(한동안 이런 게 없었죠)" 였지만, 이번에는 잭 선장님을 보고 싶어서 갔습니다. 역시 우리의 잭 선장님, 등장부터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더군요. ^^ 일단 이 장면은 직접 영화관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전 개인적으로 가장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중 하나로 <매트릭스> <캐리비안의 해적> 등을 꼽는데 그 이유는 캐릭터건 스토리건 아주 잘 다듬어져 부담없이 재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영화 하나 만드는 것이 예술영화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요?
- 어떻게 보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이 같은 목적을 위해 좌충우돌하는 버디무비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편을 보러 가시는 분들도 그런 걸 기대하고 가시면 될 것 같아요 :D
- 스텝 롤 끝나고 뭐 하나 있었다는데 그거 못봤다 젝일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