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戈)
과는 가장 오래된 장병기이다.
고대 중국 상나라 시대에는 군대라는 것 자체가 민간인들 데려다 무기 쥐어 준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보잘것이 없었고, 또 말의 품종도 덩치가 작은 말밖에 없었기 때문에 몇 마리 말을 묶어 끄는 전차가 전장의 주역이었다. 묵직한 전차가 무장이 빈약한 보병들을 쓸어버리며 마구 날뛰는 것이 전장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고대 최강의 전투병기 <전차> - 충성용감단결님 블로그
그러다보니 전차병 입장에서는 보병을 내려 찍거나, 적 전차병을 걸어서 끌어내릴 수 있는 병기가 필요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건 보병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장대에 단검을 엮어서 내리찍거나 잡아당겨 베는 방법으로 적과 싸웠는데, 이것이 과의 기본적인 모습이 된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부분에 있는 슴베(內내)를 긴 나무자루에 꽂아 고정시킨 다음 왼쪽 부분의 날(과신戈身)로 적을 공격하면 된다.
전차병들은 약간 짧은 자루를, 일반 보병들은 보다 긴 자루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루 하나에 여러 개의 과신을 장착한 다과극이라는 무기도 있었다.
중무장한 적에게는 별 효용이 없었기 때문에, 전차전마저 사라진 한(漢)나라 시대 이후 사용되지 않아서 그 모양이 잊혀졌다. 훗날 고고학의 발달로 상나라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전국 시대의 동과(銅戈). 1967년 요녕성 북표(遼寧省 北票) 출토.

전국 시대의 동과(銅戈). 사천성 비현(四川省 郫縣) 출토.
다만 한국의 과는 그 모습이 같은 시기 진나라의 과와는 다르며 오히려 1500년 정도 앞선 은나라의 것과 비슷하게 생겨, 연구 소지가 많다.

한국의 과. 척 봐도 확실히 다르게 생겼다.
모순(矛盾)의 고사로 유명한 모는 과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뾰족한 쇠로 만들어진 촉 아래부분에 나무를 끼울 수 있는 원통형의 구멍(투겁, 병부柄部)이 있어 여기에 나무 손잡이를 부착하여 사용한다.

전국 시대의 모. 1963년 사천성 비현(四川省 郫縣) 출토.

한국의 동모는 그 모양이 아주 다양하다. 이 모는 병부가 제비꼬리처럼 생겼다.
과와 모를 한 곳에 모으면 극이 된다. 역시 중무장한 적에게는 별 효용이 없었기 때문에 차츰 의장용으로만 사용되게 되었다.

영화 <묵공(墨攻)>의 한 장면. 병사들이 극을 들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장병기인 창. 겉으로 보면 모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촉의 부착 방법이 다르다. 모는 나무 손잡이를 촉 아래쪽 구멍에 끼워 넣게 되어 있다. 반면 창은 뾰족한 촉 아래 슴베가 있어 이를 나무 손잡이 사이에 끼워 넣게 되어 있다.
* 단, 창과 모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씩 말이 다를 정도로 그 주장이 많다. 따라서 위 설명은 그저 "대충 이러저러하다." 는 정도로만 보면 되겠다.
피(鈹)
춘추 전국 시대 사용되었던 피(鈹. 한국에는 없는 한자임. 金+皮)는 모와 비슷하지만, 촉의 모양이 당시 사용되었던 검의 형태 그대로인 병장기이다. 쉽게 말하면 검에 모처럼 투겁을 만들어서 나무 막대에 꽂으면 피가 된다.
피 역시 과와 마찬가지로 그 모습이 의문에 싸인 병장기였다. 1976년 진시황릉 마병용이 발견되었을 때 병사들의 무장으로 묻혀 있던 피가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이 발견으로 인해 전에는 투겁이 장착된 검으로 분류되었던 병장기들이 실제로는 피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무 자루가 썩어 없어진 탓에 피와 검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의 검. 1965년 호북성 강릉현(湖北省 江陵縣) 출토.

진나라 시대의 청동 피. 1979년 산서성 임동현(陝西省 臨潼縣) 출토.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의 청동제 모. 1983년 호북성 강릉현(湖北省 江陵縣) 출토.
일본식 대도, 나기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