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플사의 성공을 두고 인문학적 상상력에 정당성을 부과하려는 인문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의 성공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했다는 말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다.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건 애플이 늘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사실은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합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강연에서 ‘인문학’으로 번역된 단어는 실은 인문학이 아니다. 잡스가 실제로 사용한 단어는 인문학(Humanities)이 아니라,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였다. 간단히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리버럴 아츠가 의미하는 바가 인문학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교양과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서양의 중세시대 학제로부터 기원된 리버럴 아츠란 ‘배우는 이들의 이성적 사고와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반적 지식을 포괄하는 학제’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적 혹은 기술적인 학제’와는 차별되는 것이다. 중세시대 이후로 리버럴 아츠의 개념은 점차 확장되고 변화되어 왔지만, 현대에 이르러 일반적으로 리버럴 아츠는 ‘문학, 언어, 철학, 역사, 수학, 과학’ 등을 통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애플의 성공이 ‘인문학적 상상력’ 때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잡스가 ‘기술과 리버럴 아츠의 교차점’에서 고민해왔다고 말할 때, 그것은 애플이 당장의 실용적인 기술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초적인 고민을 해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거기서 배워야 하는 것은 전문성과 실용성만을 요구하는 협소한 교육체계에서 벗어나 당장에는 이익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기초적인 교육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교훈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인문학자들의 대안이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나타나는 것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이러한 주장이 인문학을 협소하게 해석하는 오류와 더불어 이러한 위기를 초래한 황폐화된 교육을 또다시 정당화하는 오류로 귀결된다면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 김우재,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