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환도 패용법

조선 시대의 칼(환도) 차는 방법은 상당히 특이합니다. 하지만 그 특이함에 비해 불가사의할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죠.(제길, 이게 다 TV 때문입니다. 어설프게 허리띠에 칼집 푹 꽂고 나타나는 꼬락서니라니.)

구한말 포청대장을 찍은 사진.

기본적으로 조선의 환도는 끈을 이용해서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찹니다. 칼을 차는 군인은 군복 아래 굵은 베로 만든 소매 없는 속옷을 입습니다. 이 옷의 왼쪽 옆구리에는 굵은 베를 겹쳐 만든 고리가 달게 되는데, 이 고리를 군복 왼쪽 옆구리에 낸 구멍을 통해 내고 여기에 칼집을 연결하면 됩니다.

동래부사 초량왜관에서 일본 사절을 접대하는 장면을 그린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의 일부. 일본인과 한국인의 서로 다른 패도 방식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자연히 칼집도 약간 특이하게 생기게 되는데, 바로 띠돈이라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왼쪽 옆구리에 있는 고리와 칼집을 연결하기 위한 장치 되겠습니다. 이 띠돈에 의해 환도를 돌리기가 쉬어져 칼자루가 뒤로 오게 칼을 차더라도 간단하게 칼자루를 앞으로 돌린 뒤 발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아래아래 사진에 칼자루를 앞으로 돌린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조선 환도의 부분별 명칭. 띠돈, 끈목, 칼집고리가 보인다. 띠돈과 끈목은 없어진 경우가 많지만 칼집고리의 경우 웬만한 칼집에는 남아 있다.

이렇게 특이한 패검 방식을 유지한 이유는 바로 조선군의 특성 때문입니다. 조선군의 주력은 갑옷을 입고 활로 무장한 중무장 기병이었습니다.(조선 전기 군대의 절반이 기병-_-) 말을 타는데 일본도 하듯이 허리띠에 칼을 꽂아 넣으면 말을 타다가 칼이 빠져 나오게 됩니다. 게다가 활까지 찬 마당에 칼자루를 앞으로 해서 찬다면 말 탈 때 심히 걸기적거리겠죠.

환도와 기병용 궁시일체인 동개를 패용한 조선 기병 완전군장.(무예24기 최형국 관장)

만주족 역시 기병을 주력으로 했다는 점에서 조선군과 어느 정도 비슷한 군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청나라 무사들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조선처럼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패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 띠돈은 없고 비슷한 장치가 칼집에 달려 있다고 하네요.

청나라 무사를 찍은 사진

이상이 기본적인 조선 환도의 패용법입니다. 다만 이것 역시 조선 후기의 이야기고, 솔직히 조선 전기에 환도를 어떻게 찼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유물 자체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인데, 관련된 기록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종실록 의례 군례서례 병기편>에 묘사된 환도 그림이 남아 있기는 한데, 여기에는 띠돈이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띠돈만 없이 끈으로 묶어서 차지 않았을까 합니다.

문제의 그 그림

임금을 경호하는 운검 등의 직책이 착용한 검의 경우에는 칼을 사용하는 환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 말을 타지 않습니다 – 칼을 차는 방법도 다릅니다. 따라서 위에 장황하게 설명한 칼의 패용 방법은 일반적인 경우지, 전부 다 그런 것도 아니라는 거죠.

* 아래 그림들은 조선 후기의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의 일부입니다. 환도 패용 방법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올려 봅니다.

6 thoughts on “조선시대 환도 패용법

    • 추노에서는 제대로 차고 나왔다고 하더군요. 최근엔 이리저리 신경을 쓰는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니 다행입니다.

  1. 패도는 군복 차림일 때 차는 칼이다. 칼을 차는 방식이 특이하다. 오늘날의 민소매 조끼처럼 굵은 베로 만든 소매 없는 속옷을 받쳐 입고 왼쪽 겨드랑이 부분에 굵은 베를 겹쳐 만든 고리를 매단다.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겨드랑이 부분에 구멍을 낸 뒤 군복을 차려입고 검의 끈을 고리에 걸어 칼자루가 뒤로 가게 찬다.

    이렇게 하면 편의를 위해 어깨 뒤로 향하게 해놓은 칼자루를 오른손 으로 잡아서 손쉽게 어깨 앞으로 돌려서 발검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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