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심>은 말 그대로 일세를 풍미한 만화였습니다. 아마 여기에 태클 거실 분 별로 없으실 겁니다. <검심>이 한창 나오던 때는 제가 중학생일 때인데, 만화 좋아하는 남자애들은 물론이고 순정만화밖에 안 보던 여학생들도 이 만화만은 많이 봤었더랍니다. 연재가 끝난 지도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피규어가 발매되고 코스프레의 대상이 되는 만화, 그리 흔하지는 않지요.

모르긴 몰라도 이 데뷔작 하나로 작가 와츠키 노부히로는 돈방석에 앉았을 겁니다.

<강철의 연금술사>도 그랬습니다만 <검심>은 초반이 굉장히 강력한 만화입니다. 모든 문화컨텐츠가 다 그렇습니다만, 역사물에 있어서는 이게 더 중요합니다. 수용자가 지루할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시작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역사물이 다루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 독자에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도 당연히 다 해줘야죠. 이 과정이 다수 지루하거나 설명조가 되면 독자는 바로 만화책 덮습니다.

<검심>은 첫 에피소드부터 기승전결이 완벽합니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카미야 활심류 도장을 빼앗으러 온 히루마 형제가 발도재를 사칭하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데, 마침 지나가던 진짜 발도재, 히무라 켄신이 이 넘들을 순식간에 박살내버립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이미 할 설명을 다 했습니다. 문명개화로 인한 시대의 변화와 경찰과 같은 관료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 칼을 못 차게 하는 폐도령과 히무라 켄신의 역날검, 비천어검류 검술 등등.

더 좋은 건 어찌나 이야기 속에 설명을 잘 버무려 넣었는지 독자가 설명을 받았다는 느낌이 잘 안 든다는 겁니다. 독자의 머릿속이 지나치게 복잡해지지 않게 소수의 정리된 캐릭터들만 보여 주기도 하지요. 에피소드 원이 강한 것, 이것이 <검심>의 첫번째 미덕입니다.

작가의 설명 능력은 세세한 일상을 묘사하는 데에서도 두드러집니다. <검심>은 보통 역사책에서 주력하는 "위대하고 잘난 인물들의 이야기" 에서 벗어나, 이름없는 평민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화가가 된 사노스케의 친구, 켄신 일행이 자주 외식하러 가는 고기전골집, 새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야쿠자 패, 칼 만드는 것을 그만둔 도공 등등.

이들을 통해 <검심>은 풍성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책의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숨어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될 정도로. 이 수많은 사연들은 역사물로서의 <검심>의 세계를 더욱 재미있고 실감나게 꾸며 줍니다. 그뿐입니까,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에게 의미를 부여하여 10원짜리 단역 신세를 면하게 하죠. 역사적 지식이 있다면 <검심>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도 있지요.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쇠고기 요리 등이 없었습니다만, 문명 개화 이후 처음으로 사람들이 쇠고기를 먹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메이지 시대에는 쇠고기 요리가 서민들의 외식으로 인기를 끌었죠. 켄신 일행이 전골집에 외식을 하러 가는 것은 이러한 배경이 숨어 있습니다.

백년 전의 세계를 독자 눈앞에 꺼내 놓듯이 묘사하고 캐릭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연출 능력, 이것이 <검심>의 두 번째 미덕입니다. 최대한 묘사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이야기의 맥을 끊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짧게 설명을 곁들이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센스에 일본 역사를 모르는 한국인들까지도 대량으로 낚인 걸 보면 정말 제대로 낚은 겁니다.

이런 세세한 묘사는 기본적으로 그 시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심>과 3류 판타지 멜로드라마의 차이점이 아마도 이런 것이겠죠. 얼마나 자국 역사에 애정이 없으면 엉망으로 묘사하는 것도 모자라 부여 왕이 스스로를 황제를 칭하는 엽기적인 역사 왜곡까지 저지르겠습니까. 한국인에게도 애정을 받지 못하는 한국 역사가 외국인들에게 쓰레기 취급당하는 건 지극히 합당한 대우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검심>의 이야기는 히무라 켄신이 검술솜씨로 각종 적들을 물리쳐 가는 과정을 그린 만화입니다. 자연히 다양한 적들을 준비해서 켄신에게 "자아, 이 넘을 쓰러뜨려 봐라!!" 며 던져줄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 와쯔키 노부히로는 상당히 외부 환경에서 영향을 잘 받는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검심>에 등장하는 다양한 적들과 캐릭터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피규어들의 영향이 간간이 보입니다. 그런데도 <검심>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것은 현대물에 등장하는 각종 괴인들을 메이지 시대 버전으로 성공적으로 번안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부여해서 기괴한 캐릭터들이 성립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거나, 갑옷 등의 소품을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극찬을 받을 만한 뛰어난 번안 능력, 이것이 <검심>의 세 번째 미덕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을 받쳐 주는 훌륭한 그림솜씨와 연출력, 사이사이 적절히 끼워 주는 개그 센스가 각각 네 번째, 다섯 번째 미덕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역사와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걸작, 역사물의 이상으로 주저 없이 <바람의 검심>을 꼽습니다. 이 만화는 그만큼 높은 찬사를 받고,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될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이러쿵저러쿵 해도 어쨌든 <검심>은 대단한 히트작이며, 한국이든 일본이든 이 정도 수준의 만화가 나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