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 사람들이 사는 법
라케다이몬의 백성들아, 그대들의 운명을 들을지어다.그대들의 훌륭하고 위대한 도시가 페르세우스의 자손들에게 파괴되든지
아니면 헤라클레스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이 죽어 라케다이몬의 전 주민이 애도하게 되리라.
- 테르모필라이 전투 직전 내려진 델포이의 신탁.
- 스파르타는 두 명의 왕이 다스린다. 물론 실권은 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었다. 이들은 제사장의 역할과 전쟁 사령관의 역할을 했다. 한 명이 전쟁터에 나가면 다른 한 명이 본진(-_-)을 지킨다.2. 전제 국가로 알려진 스파르타지만, 민주적이라는 아테나이와는 의외로 큰 차이가 없었다. 소금을 많이 넣었느냐, 새우젓을 조금 넣었느냐의 차이라고 할까.
아테네는 시민이면 누구나 새로운 정책을 발제할 수 있지만, 스파르타에서는 발제는 두 명의 왕과 유력 귀족들의 원로로 이루어진 장로회, 매년 선출되는 다섯 사람의 감독관1만이 가능했다. 민회는 그들이 내놓은 정책을 승인할 권리가 있었다. 왕에게는 민회의 결정에 대한 거부권이 있었지만 어쨌든 민회의 승인은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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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사내아이가 약골이면 당장 산에 갖다 버려서 산짐승의 먹이가 되게 한다. 여성도 사춘기가 지나기까지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으면 절벽에서 밀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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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이면 전사가 되기 위한 훈련(아고게Agoge)을 받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스파르타식 훈련" 이라고 불리는 훈련 덕분에 사실상 터미네이터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평소에 하는 훈련이 어찌나 빡셌던지 전쟁이 나면 서로 전장에 나갈려고 했다고 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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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잠자리는 풀을 뜯어 모아서 만들어야 했다. 그 안에는 가시풀을 함께 넣었는데 거기 찔려서 따끔거리면 추위를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_-)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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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식사는 악명이 높았다. 먹는 것도 군대 식사하듯이 모여서 먹었다. 그걸 먹어본 다른 도시 국가의 사람 왈, "이제 스파르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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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이전에는 상의를 입을 수 없었다. 12세가 되면 빨간 망토를 걸칠 수가 있었는데, 이것은 스파르타 군인들의 군복 역할을 했다. 이 망토는 전투 직전 벗어 던진다.
- 스파르타 시민은 20세에 정식 전사가 되고, 60세부터 군역에서 면제된다. 하지만 당시 60살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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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는 일찍이 이웃 나라 메세니아를 정복하여 그곳의 주민들을 노예로 부려서 생활했다. 노예가 스파르타 시민의 20배가 넘다보니 노예 반란이라도 터지면 큰일이었다. 실제로 노예 반란이 시도때도 없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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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여성들도 튼튼한 아기를 낳기 위해 각종 체육훈련을 받았다.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 노예 반란이 터지면 여성들이 직접 무기를 들고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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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신년 행사는 이웃 나라 메세니아에 대한 전쟁 선포식이다. 노예 반란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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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맞으면 사람이 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전에서 죽기 직전까지 서로 매를 맞는 놀이를 했다. 맞아 죽은 사람이 자주 나왔다고 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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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군대는 추석과 같은 축제나 종교 행사가 있을 즈음에는 움직이지 않는다.2 그리고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침공할 때 이런 때만 골라서 움직였다.(-_-) 덕분에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국왕 레오니다스 1세는 나이든 병사 300명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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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시민은 전성기 때 8천 명을 헤아렸지만, 전쟁터에는 2천 명 이상의 전력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았다. 노예 반란에 대비해서 항상 군대를 이곳저곳에 주둔시켜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 노예는 편하게 살려고 있는 것인데 노예 때문에 엽기적인 삶을 살면 뭔가 이상한 거 아닌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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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모필라이 전투에 참전한 스파르타 군대는 300명이 아니었다. 스파르타 시민병이 300명이었을 뿐, 페리오이코이라 불리던 준시민병이 1200명 있었고 이들이 거느린 노예들도 있었다. 페리오이코이들은 당당한 자유민인 만큼 중무장 보병이었던 것 같다. 노예들은 경무장 보병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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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300 결사대가 전부 전사한 것은 아니다. 전령의 임무를 수행하던 두 병사, 아리스토데모스와 판티테스Pantites는 살아남았다.
이런말 하면 여성단체에서 들고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절벽”도 절벽으로 밀었을까요? ^^;;;
그러고보니 참으로 절묘하군요 -_-;
절벽도 절벽에 밀렸겠죠..
풍만한 몸매->애 잘낳음 아니었던가요. (비만과 풍만의 미묘한 경계는 일단 넘어가시고..)
근데 왜 2명이 산거지; 영화는 한 명이더만.
영화는 영화니깐 -_-)…
그 말이 정답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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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처음으로 메타 블로그 사이트에 링크되는군요 ;ㅁ;
감사합니다.
이상할거 없어요..
스파르타 남자는 생산을 하지않아요..;; 일은 노예가 다하고
그들은 군사훈련에 열중하죠…
일안하고 놀고먹는데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죠
글을 잘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놀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관련글 셀프 트랙백 걸었습니다.
ㅇㅇㅊㅋㅊㅋ 내 포스트는 2개 올라갔지만 내 이름은 아니라는거..;;
ㅎㅎㅎ 광묘님 ㄳㄳ
스파르타의 사회구조는 연장자에게 상당한 권력이 주어지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삶을 살면 당연히 오래살아남는 강인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2번 항목에서 이야기한 장로회라는 것도 그 60세 이상의 연장자들이 모인 것입니다. 법안 발의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 권력은 상당했겠죠. 평민들도 (60세 이후까지 살아남는다면) 상당한 권위를 갖출 수 있었겠죠. 최소한 노련한 전사라는 점에서 권위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게 바로 그… 300 이군요.
레오니다스.
저 같은 경우에는 부끄럽지만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일본 소설에서 나오는
배 이름이 더 친숙하군요.
빡센 동네 왕이었으니 오죽했을까.
글 잘 읽었습니다.
예,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파르타의 사회구조를 보면서 생각하는건, 역시 현대 서민이 저시대 귀족보다 낫다는 것일지도요[…]
민주주의라는것도 그런 이유로 발전했지 않나 생각..
17.동성애가 합법적인 나라
18.간통이 합법화된 나라
설명하기 귀찮;;
역블에 내가 올린 스파르타사 글이 있3
고어핀드님이 스파르타사를 좋아하시니 한번 읽어봐주십사 싶네요
이모든 체제를 성립한 사람은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이죠. 리쿠르고스 이전 스파르타인들은 귀족중심적이고 아주 탐욕적이었다죠
1번, 2왕제체제에서 하나가 군사를 총괄하는 데에는 깊은 사연이 얽혀있습니다. 클레오메네스가 영토확장을 위해 아르고스와의 전쟁을 일으켰으나 그 나머지 한왕이 협조를 잘 안해주어 결국에는 패하고 말죠. 이때부터 스파르타인은 2왕제의 효율성 한계를 께닫고 군지휘권은 한왕에게 전권위임하는 법을 성립하게 되죠.
펠로폰네소스 당시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의 절정에 오르게 되죠. 아테네의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그를 찬양했습니다. 소크라테스며, 플라톤이며
소크라테스의 감옥에서 어이없게 죽은 그 이야기도 스파르타 준법정신을 높이사서 플라톤이 만든 것입죠. 또한 플라톤의 국가론의 정치체제는 2왕제며 엘리트주의며 스파르타를 거의 다 베꼇다해도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30세부터 군역에서 면제되고 정치계에 입문하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ㅡ.ㅡ
이 훈련은 아주 이른 나이 7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6년동안은 파이디온이라는 등급에 속하며 기초적인 훈련을 받다가 13세가 되었을 때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부터 6년동안은 헤본(hebon)이라고 불렸는데 머리는 짧게 잘라야 했으며 신발도 신지 못했으며 단 한겹의 옷만으로 사계절을 견뎌내야 했다. 잠자리는 에우로타스 강변에서 손으로 직접 뜯은 골출로 마련해야 했고 그리 많지 않은 식사량을 보충하기 위해 때로는 먹을 것을 훔쳐야만 했다. 그러다가 붙잡히면 먼지나게 쳐맞고…근데 더 어이없는건 훔치는 것이 나쁘다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처벌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붙잡혔다’는 이유에서 였다! ㄱ- 19세가 되면 맨 앞줄에서 싸우는 전사는 아니더라도 전투에 나가는 것이 가능한 에이렌(eiren)등급이 되었다. 이들은 또한 고년들로 이루어진 소대의 감독자, 즉 소대장이 되었다. 24세가 되어서야 정식전사가 되며 30세가 되야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어야만 병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게 된다.
쩝..ㅡ.ㅡ
너무 간략하면 본질을 고칠하기 어려운법;
예, 역블에 올려 주신 제논님의 글 역시 보았습니다. 국내에는 험프리 미첼의 <스파르타>와 윤진의 <스파르타인 스파르타역사> 두 권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책들을 참고하신 것 같더군요. 비교적 최근 나온<인물로 보는 서양고대사>의 “리쿠르고스” 절이 윤진씨의 책과 많이 비슷하던 것 같습니다. 혹시나 안 보신 자료가 있으시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0세부터 군역에서 면제되고 정치계에 입문하는 것” 이 아니라, “30세부터 병영 생활을 청산하고 시민으로서의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가 맞습니다.
침구로 쓴 풀에 가시풀을 넣은 이유는 추운데 잠을 깊이 자면 얼어 죽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매를 맞으면 강해진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매집을 늘릴려는 목적과 굳은살에 대해 갑옷과 같이 살이 단단해 진다고 여겼다네요. 모르던 사실도 많이 알고 갑니다. 좋은 정보 감사해요.
멧집에 대해서는 중세 유럽의 기사 훈련에서도 비슷한 관념이 엿보이는 경우가 있더군요. 어떻게 보면 극단적으로 호전적인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