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 일신교와 다신교, 두 가지 사고방식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때 인간은 더 신적이었다. - 실러Schiller
두 가지 세계관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의 일신교에서 신이란 인간과는 달리 완벽한 존재다. 세상을 창조한 그는 전지전능하며 도덕적으로도 완벽하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에게 옳은 길을 가르치고, 거기에 따라서 살라고 명령한다. 말을 잘 들으면 죽어서 낙원에 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지옥행이다.
일신교를 숭배하는 문화에서 인간의 목표란, 당연히 신이 정한 도덕률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언자들을 안다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주일마다 성당에 나가서 미사에 참석하고,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일은 하면 안 된다. 인간과 신은 엄격히 다른 존재다. 인간은 신이 명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도덕 역시 절대적이다. 도덕이 곧 신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신의 역사를 위해 자기 한 몸 바치는 것은 더욱 좋다. 오히려 영광된 일이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거리낌없이 자폭 테러를 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 신의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게다.
그런데 다신교 사회에서 신이란 영원히 살 뿐,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은 존재다. 보통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 별로 도덕적이지도 않고 당연히 어떠한 도덕률을 인간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의 신상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듯이 행동 역시 인간의 모습을 닮아 있다. 신이 인간을 닮았으니 인간 역시 신이 되기를 꿈꾸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러한 문화에서 인간의 목표란, 자기 자신을 완성하여 스스로를 신적인 위치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된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신에 가까운 정도로 자신의 재주를 갈고 닦거나 인간의 한계에 가까운 용기를 보이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니 죽음으로써 위대함을 이룬다면 최고다. 당장 그는 신으로 추앙된다. 신이 워낙 흔한 사회이니 인간을 신으로 추앙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쯤 가고 보면 일본에 이름난 명장이 많은 것이 이해가 갈 것이다. 일본은 현대 몇 남지 않은 다신교 사회기에, 솜씨가 뛰어난 장인은 그 자체로 신과 같은 경지다. 뛰어난 경영술로 이름난 재벌 총수를 경영의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게 일본이다.
죽음의 길을 간 사람들
영화 <300>을 보면서, 관객과 영화 속 인물들의 차이는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차이가 아니라, 살아가는 문화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 및 고증과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대강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 1세는 상속할 아들이 있는 전사 삼백 명을 인솔하여 테르모필라이의 전장으로 떠난다. 절망적인 전장으로 떠난 그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현대인으로써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용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 똑같이 고증은 날려먹고 만들었다지만 300과 주몽 사이에는 대략 20억 5천만광년의 간극이 있습니다(...)
서른에야 결혼이 허락되는 스파르타 인이니 아들이 있다는 얘기는 적어도 40줄에 가까운 사람일 터, 평균 수명이 짧았던 고대사회에서 이것은 슬슬 죽음을 준비해야 할 나이다. 나는 레오니다스 왕이 처음부터 살아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신적인 용기를 발휘해며 전사로서의 삶을 완성할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를 따른 300명의 노병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인간으로서 올림포스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 세상에서 놀라운 이적을 쌓고 자신의 몸을 태워 신이 되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스스로를 헤라클레스의 자손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호랑이 아비에 강아지 자식 없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피와 살을 넘어 영원이 되려는 자들에게 죽음 따위가 뭐가 두렵겠는가.
전사들이여, 영광을 준비하라(Spartans, Prepare the Glory!!)
고대의 다신교적 세계는 이천년동안 서양인들에게 하나의 이상이었다.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는 성경 이야기만큼이나 서양 미술에서 즐겨 다루어지는 소재다. 아마도 꽉 죄는 야훼의 도덕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곧 신이던 시절, 스스로 원하는 위대함을 좇은 영웅들의 시대는 새장 속에 갇힌 새가 그린 창천만큼이나 아름다웠을 것이다. 철학자 니체도 "일신교적인 도덕에 갇혀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서양 문명은 타락했다." 고 하지 않았던가.
「검과 샌들 영웅담(Sword and Sandle Epic)」이라 불리는 고대 영웅을 다룬 사극은 영화가 시작된 이후 계속 있어왔다. 그런 걸 보면 신이 되길 꿈꾼 사나이들의 이야기는 강산이 양백번 바뀐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을 댕기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면, "사나이의 로망" 뭐 그런 거다.
잘 알지도 못하는 <300>의 이야기에 동아시아 작은 나라의 블로고스피어가 이토록 달아오르는 이유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레오니다스 왕이 "영광을 준비하라" 고 외치는 모습은 황금빛 스크린을 수놓는 붉은빛만큼이나 자극적이다. 이 영화는 헤라클레스의 몸을 태우는 불길만큼이나 강렬한 힘이 있다.
가끔 계백장군의 결사대와 스파르타의 결사대중 누가 더 강할까하는 망상이….;;;
자신이 믿는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는 모습이 인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이 신의 꿈이던 국가에 대한 사랑이던…
‘뭘 위해’ 싸웠느냐보다는 뭘 위해 ‘어떻게’ 싸웠느냐가 중요한거 아닐까요?
…
그래도 죽는건 싫지만=3
그렇겠죠,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이란 현대인들에게도 그만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끝이 있다는 걸 알기에 열정도 가질 수 있는 인간이 신 따위보다야 훨씬 위대하지요. 잘 읽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인간 영웅들을 못말리게 질투하고 심지어는 씨까지 말리려 드는 건 그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D
개인적으로는 주변인물들에 쉽게 휩싸이는 성격이라 군사매니아의 지인에게 역사적 고증에 대해 많이 씹혀서 관심이 별로 없었던 영화.
하지만 밀러 아저씨의 신 시티는 참 재밌게 봤는데 말이죠.
페르시아 군대가 왠지 반지의 군주의 오크 군대 비슷한 느낌이 나는것 빼곤, 뭔가 화끈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뭐랄가, 사나이의 로망? (…여성차별주의라고 밟히는건 아닌가..)
헤에, 영화 내용 중에 그리 남녀차별적인 부분은 별로 안나옵니다.
신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말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정말 다신교가 끌리는군요. 신보다 더 신같은 인간을 인정해야만 신보다 더 신같은 인간이 많아질테니가요
사실 저도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만 다신교적인 감성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신교의 매력은 그런 것이겠죠. 니가 옳네 내가 옳네 싸울 일 없이 자기 발전에 매진한다는 거요. :D
정말 그렇게보면 이순신 장군의 진정한 위대한점은 언제나 싸워 승리했다가 아닌, 승리도, 영광도 보장되지않은 오직 패배와 죽음만이 있는 현실을 언제나 피할수있었음에도 피하지않고 오직 민족과 국가를위해 나아가 승리하고 최후를 맞이했다는점이지요. 또한 그것 덕분에 성웅으로 추앙받는것이고요.
요새 나오는 교육용 역사책에서는 그런부분은 안나오고 이순신을 그저 위대한 장군으로만 표현한게 씁슬할뿐입니다. (아니 그것보다 십하드 당신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
뭐 당시엔 지금과 같은 민족과 국가의 개념이 있지는 않았지만, 시궁창에 거꾸로 박아놓은 현실을 헤쳐나간 강인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이순신 제독이 민족주의 슈퍼히어로가 된 건 후대의 각색입니다만… 그런 점에서 저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역경을 헤쳐나가는 인간으로서의 묘사가 참 잘 되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