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예보병, 히파스피타이 #3

편성

히파스피타이의 편성에 대해서는 약간의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그 편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히파스피타이는 기본적으로 출신 계급에 따라 일반 히파스피타이와 근위 히파스피타이Hypaspitai basilikoi로 나누어진다. 용맹성과 전공을 기준으로 일반 보병에서 선발되는 일반 히파스피타이의 경우 3개의 연대Chiliarchia로 편성되어 있었으며, 마케도니아 국왕이 임명한 귀족인 아키히파스피테스Archihypaspites의 지휘를 받았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다.

  • 위 도해에 사용된 폰트는 고대 그리스 폰트이며, 여기에서 구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고대 사회에서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던 만큼, 그가 이끈 군대의 편성에 대해서도 상당한 기록이 남아 있다. 위 도해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히파스피타이의 편성 구조를 그린 것이다. 괄호 안의 숫자는 전투원 수를가리키는데, 디테일한 수치에 있어서는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대략 위와 같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보통 ‘연대’로 번역되는 Chiliarchia는 1024명의 전투원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위 그림에서 (보통 ‘중대’로 번역되는)Lochos당 전령이나 나팔수 등의 보조 인원이 5명 정도 붙기 때문에, Chiliarchia의 실제 병력 수는 20명이 늘어난 1044명이 더 정확할 것이다. 3개의 Chiliarchia가 있었다고 전해지므로, Hypapistai의 전체 병력 수는 대략 3천 명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의 한 장면. 마케도니아 군의 우익에서 쏟아져 나온 히파스피스타이들이 페르시아 군의 좌익으로 돌진하고 있다. 들고 있는 방패에 새겨진 것은 마케도니아 왕가의 문장(Vergina Sun)으로, 그리스 Lefkadia의 마케도니아 고분 벽화에 그려진 방패를 기반으로 제작한 소품으로 보인다. 그 외에는 대체로 정확한 고증을 보여 준다.

  • Lefkadia의 마케도니아 고분 벽화 보기: Youtube (*38초 근처 부분)

일반 히파스피타이의 구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근위 히파스피타이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자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로마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이 이들을 귀족으로서 왕의 시동이나 종자 노릇을 하던 자라고 기록한 데에서 마케도니아의 귀족 출신 부대라는 것 정도가 확실한 뿐이다. 심지어 구체적인 편성이나 병력 수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 어떻게 보면, 애시당초 편성 정원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전국시대나 중세 유럽과 같은 소위 전쟁 귀족 사회에서는 귀족의 아들이 다른 귀족 아래에서 종자 역할을 함으로써 군대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 연령이 넘은 귀족의 아들들이 근위 히파스피타이 노릇을 한다면, 정원 같은 건 별 의미가 없어진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창시자, 셀레우코스(BC358~BC281)를 묘사한 동전(http://en.wikipedia.org/wiki/Image:SeleucosCoin.jpg). 셀레우코스는 알렉산드로스 휘하의 장군으로, BC 330년 이후 근위 히파스피타이의 지휘관으로 추정된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그는 페르시아 일대를 점령하고 셀레우코스 왕조를 세운다.

기록 자체가 전무한 만큼, 전투에서 어떠한 노릇을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로마의 역사가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Quintus Curtius Rufus가 국왕의 근위병이자 마케도니아 귀족의 아들인 필리포스가 기병들도 뒤떨어지는 전쟁터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잘 따라다녔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가벼운 무장을 하고 기병들을 따라다녔던 듯하다. 실제로 폼페이에서 발굴된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에는 이수스 전투를 지휘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옆에 보병의 머리가 그려져 있어,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 – 이 벽화는 로마 시대의 것이지만, 알렉산드로스 당대의 그림을 모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헤타이로이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근위 히파스피타이들. 영화 의 한 장면.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갑옷 따위는 벗어버린 모습이다.

9 thoughts on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예보병, 히파스피타이 #3

  1. 근위 히파스피타이(에효, 쓰기도 힘드네…)들의 자료가 많이 부족한 편인가요? 가야 기병 고증하는 것보다 힘들정도로?
    저시대에 저정도면, 먼치킨?

    • 가야 기병의 경우 전체적인 편제에 대한 자료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니, 히파스피스트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벌써 2300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니까요.

  2. 옛 그리스어로는 ὑπασπισταὶ라고 하는 듯합니다. 히파스피스타이?

    • 마케도니아에서 히파스피타이를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서는 자료를 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쉽게 그리스 문자라고 합니다만, 실제로 당시 그리스 알파벳은 소아시아 쪽이 다르고, 아테나이 쪽이 다르고, 스파르타 쪽이 다르고.. 하는 식이거든요. 제가 알기에 요즘 보통 가리키는 문자는 아테나이 문자로 기억합니다. 마케도니아에서는 어떠한 문자 시스템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 위의 도해에 사용된 그리스 폰트는 그냥 보기 좋은 걸 골라잡았습니다. 여러 문자 세트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부담없이 알아볼 수 있는 것 저것 정도더군요.

  3. 히파스피스트가 근위와 일반으로 나뉘어지는군요. 근위 히파스피스트들은 왕의 측근에서 왕과 함께 전투를 하고 공을 세운다는 면에서는 그 당시의 권력의 핵심일 것 같습니다. 실제 알랙산더 사후에 셀레우코스 왕조를 세운 셀레우코스가 근위 히파스피스트의 지휘관으로 추정된다는 점도 그렇고 말이죠.

    근데 저 1024라는 숫자가 신경쓰이는 건 저뿐인가요? 나팔수 등을 제외하면 딱 2의 10승이군요. 그리고 나머지 하위의 Deka, Lochos들도 딱 2의 거듭제곱수로 구성된 걸 보면 우연하게 정한 숫자가 아닌듯…설마 과거 그리스인들은 2진법을 썼다던가;

    • 종횡 16열의 256명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 방진이 기본단위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걔들이 넷 있으니 1024명이 된 거죠.

    • 아직 나이가 어린 종자들이니까 권력의 핵심까지는 아니고, 권력의 핵심으로 가는 첫 계단 정도는 되었겠지요. 저런 쟁쟁한 장군이 지휘관을 맡을 정도면 그만큼 중요한 부대였을테니 말입니다. 처음엔 저기서 창 들고 뛰어다니다가 나중에 진급해서 보병부대 장교가 되든 중기병이 되든 뭔가를 하겠지요.

      그리고 부대 편성에 대해서는 위에 달아주신 박하사탕님 말씀이 맞습니다. 부대의 기본 편성이 256명입니다. 중대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팔수나 전령이 256명마다 붙어 있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4. 하악하악 은방패 부대!! 은방패 부대 언제 나오나여!!(….)

    • 은방패 부대는 Rome: Total war에서 Selucid empire를 선택하고 Royal baracks를 건설하면 생산됩니다. 한 부대 생산하는 데 2년 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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