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파스피타이의 종말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페르시아 고원을 가로지르며 불패의 전설을 남긴 히파스피타이인 만큼, 그 종말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함께 왔다.

기원전 323년 6월 11일, 알렉산드로스는 33세 생일을 한 달 남긴 채로 급사했다.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분분하지만, 연이은 잔치 때문에 술에 절어 있다가 말라리아가 재발해서 한 방에 갔다는 것이 정설이다.1

적어도 확실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위를 둘러싸고 난장판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왕위를 이어받을 동생이나 장성한 아들이 있었으면 또 모른다. 하지만 외동아들인데다가 겨우 서른 둘에 죽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장성한 아들 따위가 있었을 리 없었으며 - 아내 록산느가 겨우 임신한 상태였다.

마케도니아의 왕좌를 둘러싼 이 걸판진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수십 페이지는 필요하므로, 히파스피타이에 대한 부분만 간략하게 보도록 하자. 알렉산드로스의 부하 장수들 중에 가장 야심이 컸던 자는 안티고누스Antigonus였다. 안티고누스는 소아시아(지금의 터키)를 기반으로 스스로의 세력을 급속히 확장시켰는데, 필리포스 2세의 서자인 아리다리우스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스의 비서이자 장군이었던 에우메네스Eumenes에게 히파스피타이의 지휘권과 왕실의 자금을 넘기고 안티고누스를 막으라는 명을 내렸다. 히파스피타이는 고국인 마케도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아직 아시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 이 만화의 주인공이 바로 그 에우메네스이다.

"애꾸눈 안티고누스" - 1권에서부터 등장한다.

에우메네스는 자신을 뒤쫓아 온 안티고누스의 강력한 군세와 맞서 싸워 크게 이겼지만, 안티고누스의 기병대가 선전한 덕분에 안티고누스는 에우메네스의 보급 부대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BC 318). 여기에는 히파스피타이들이 알렉산드로스 때부터 모아 온 각종 전리품들과 가족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히파스피타이들 입장에서는,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재산을 다 날린 셈이었다.

히파스피타이의 대장 테우타무스는 안티고누스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네들의 재산과 가족들을 돌려 달라고 했다. 안티고누스는 "에우메네스를 묶어서 넘겨 주면 그렇게 하겠다." 라고 대답했고, 안 그래도 에우메네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2 테우타무스와 히파스피타이들은 에우메네스가 방심하고 있을 때 이를 묶어 안티고누스에게 넘겨 주었다. 히파스피타이 입장에서는 알렉산드로스를 따라다니면서 번 돈을 가지고 고향 마케도니아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지, 에우메네스 따위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는 관심 밖이었다.

안티고누스가 잠깐의 고민 끝에 에우메네스를 죽여버린 것은 물론이지만 - 자신들의 대장을 팔아넘긴 히파스피타이들 역시 무사히 넘어가지 못했다. 안티고누스는 히파스피타이들을 흉칙한 자들이라 하여 전부 죽여버리라는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 히파스피타이들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로마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이들 중 살아서 마케도니아 땅을 밟은 사람은 없었다는 기록을 전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듯하다.

에 등장한 은방패Argyraspids. 셀레우코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 폰토스 왕국에서 비슷한 유닛의 생산이 가능하다 - 모두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후손 국가들이다.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은 셀레우코스 왕국, 마케도니아 왕국, 이집트 왕국으로 그 세력이 정리되었고, 이들 왕국에서도 히파스피타이와 같이 "은방패" "청동 방패" 따위의 이름을 쓰는 부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이들은 히파스피타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며, 히파스피타이가 가진 불패의 전설을 이은 자들 또한 아무도 없었다.

참조문헌

- Warfare in the classical world, John Warry,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5
(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 임 웅 역, 르네상스, 2001)

: 서양 고대의 전쟁사에 대한 책. 사료를 소개하고 정치적인 배경을 서술한 뒤 전쟁사의 전개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각종 지도 및 도판이 풍부한 책. 번역의 품질도 나쁘지 않지만, 어찌된 게 도판 목록과 참고문헌 목록이 없다. 한국에 번역되어 나오는 역사책에서 자주 있는 현상이다.

- Greek Hoplite: 480-323BC, Nicholas Sekunda, osprey, 2000

  • Macedonian warrior: Alexander's elite infantrymen, Waldemar Heckel & Christa Hook, osprey, 2006

: 전쟁사 전문 출판사로 유명한 osprey 출판사의 책. 한국어판은 없다. 니콜라스 세쿤다의 책 중 은 플래닛미디어에서 한국어판이 출간되어 있다.

- Warrior: a visual history of the fighting man, R.G.Grant, DK Publishing, 2007

: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내용이 풍부한 화보집. 역시 한국어판이 없다. 최근 환율이 치솟기 직전 아마존에서 구입한 뒤 흡족해하는 중.

- Arms and Armor of the Greeks, Anthony M. Snodgrass,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8

: 고대 그리스의 전쟁사에 대한 고전적인 저작.

- Lives of the Noble Greeks and Romans, *Plutarchos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저 / 천병희 역, 범우사, 2002)*

: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의 책. 그리스 인과 로마인의 삶을 서술한 뒤 이들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의 정세를 보기 위해 참고했다. 범우사 판은 천병희 단국대학교 명예교수가 헬라어 원전의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며, 사실상 국내 유일한 직역판이다.

- 히스토리에, 이와사키 히토시(岩明均), 서울문화사, 2005

: 의 작가 이와사키 히토시의 만화. 알렉산드로스의 비서관인 에우메네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재미있고 개념있는 역사만화. 추천.


  1. 알렉산드로스는 19세 때 이미 말라리아에 걸린 적이 있다. 

  2. 에우메네스는 마케도니아 사람이 아니라, 마케도니아 동쪽의 트라키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