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글을 쓸 여유가 없어, 오랫동안 손봐 온 서평 하나를 올립니다. 글 편성이 좀 특이합니다... 만, 조금만 읽어 보시면 왜 그런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신화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답안이 있다. 이 책은 그 답안 중 하나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조셉 캠벨 저, 이윤기 역.

민음사, 504쪽, 1999년 5월.

이 책은 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이 1947년 출판한 책이다. 비교 신화학의 대가인 그는 정신 의학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신화의 기능은 과거에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정신에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꿈이나 환상 또한 기본적으로 신화와 같은 종류의 것이며, 따라서 세계의 도처에 비슷한 내용의 신화가 존재하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환자가 알지도 못하는 신화의 환상을 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영웅신화에서 영웅의 궤적은 기본적으로 분리-입문-회귀의 구성을 갖는다." 라고 설명한다. 영웅은 위기에 처한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캠벨은 이러한 과정을 원질신화monomyth라 정의하는데,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웅 신화들은 이 원질신화의 변주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야기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웅에게 천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제목이 붙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들의 이야기라는 의미 그대로, 많은 신화들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나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태초에 어떻게 천지가 창조되었고, 낙원 추방이 있었으며, 빛과 어둠이 생겨났는지.

스타크래프트Starcraft의 이야기는 고대의 종족 젤 나가Xel'naga에서 시작된다. 고도의 유전 기술과 완전한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집착을 가진 이 종족은 은하계의 변방에 있는 정글 행성 "아이우Aiur"에 사는 한 종족에 주목했다. 그들은 복잡한 방식의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종족의 진화를 앞당기는 실험을 하였으며, 그 실험은 성공하였다. 젤 나가는 이들에게 첫 번째 탄생이라는 의미의 "프로토스Protoss" 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프로토스는 겨우 수천년만에 아이우 전체를 지배할 정도로 발달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교만해진 그들은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진화가 실패했다고 생각한 젤 나가는 아이우를 영원히 떠났으며, 책임 소재에 대한 논쟁은 "영원한 투쟁" 이라는 내전을 촉발했다.

수천년에 걸친 이 참혹한 내전은 "칼라Khala" 라는 정신적인 가르침이 퍼지면서 멈추게 되었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칼라를 받아들이지 않은 반체제적 부족이 있었던 것이다. 프로토스의 대의원Conclave들은 이 골치 아픈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들을 낡은 젤 나가의 우주선에 태워 은하계 저편으로 추방한 것이다. 아이우를 떠나 떠돌게 된 이들은 곧 암흑 기사단Dark Templars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웅신화는 주인공이 사는 안락한 세상의 질서가 붕괴되면서 시작된다. 그와 동시에 영웅은 세계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소명을 받게 된다. 영웅은 처음에 그 도전을 거부하지만, 결국 영웅에게는 소명을 받아들이는 것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프로토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닥쳐온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유명한 기사단원 태서더Tassadar의 지휘 아래 정기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프로토스의 함대는 은하계의 외곽에서 기묘한 소형 생물체들이 떠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생물체를 아이우로 가져와 조사한 결과, "저그Zerg" 라 불리는 이 생물체는 이백년 전 프로토스의 은하계에 정착한 지구인을 말살하고 흡수하여 프로토스에 맞서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저그가 이미 차우 사라Chau Sara를 비롯한 여러 지구인 행성들을 오염시켰다는 것과 함께.

오염된 행성들을 말살하라는 대의원의 명령을 받은 태서더의 함대가 포문을 열었고, 차우 사라는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말살의 두 번째 목표인 마 사라Mar Sara로 가던 도중, 양심의 가책에 사로잡힌 태서더는 대의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함대를 철수시킨다. 그는 일단 저그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소명을 받은 영웅에게 필요한 것은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을 가진 조력자이다. 영웅은 조력자의 도움으로 초자연적인 세계를 탐험하고, 그 심연으로 접근한다.

저그를 쳐부술 방법을 찾던 태서더는 차Char 행성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정신파에 주목했다. 그곳에서 그는 암흑 기사단의 모험가, 제라툴Zeratul을 만나게 된다. 금지된 존재를 만나게 된 태서더는 처음엔 제라툴을 공격하지만, 제라툴은 교묘하게 태서더의 공격을 피할 뿐이다.

오래지 않아 태서더는 제라툴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우정이 커가면서 제라툴은 태서더에게 암흑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태서더는 암흑 기사단의 통과 의례를 처음으로 마친 기사단원이 되었다.

제라툴. 암흑 기사단의 모험가이자 암살자.

차 행성의 저그들을 공략하기 위해, 태서더와 제라툴, 그리고 지구인 짐 레이너Jim Raynor는 서로 협력하기로 한다. 태서더가 케리건Kerrigan을 유인할 사이, 제라툴은 저그의 가름 부족Garm Brood를 공격하여 지휘관 사념체 자츠zasz를 살해한다.

놀랍게도, 저그의 우두머리 오버마인드의 능력은 자츠를 부활시키지 못했다. 프로토스 군단이 아이우로 침공해 온 저그의 사념체Cerebrate를 살해했지만, 곧 부활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태서더는 깨달았다 - 암흑 기사단의 힘만이 저그에게서 프로토스를 구할 수 있다.

아이우에 상륙한 저그의 대공격을 일단 막아낸 대의원들은 암흑 기사단과 접촉한 태서더를 벌하기 위해 알타니스Artanis를 차 행성으로 보내지만, 태서더는 암흑 기사단의 힘만이 프로토스를 구할 수 있다며 알타니스를 설득한다. 알타니스는 태서더를 체포하라는 판관 알다리스Aldaris의 명을 거역하고 태서더에게 합류한다. 그들은 케리건의 공격으로 헤어진 제라툴을 찾아내고, 아이우로 돌아온다.

이 단계에서 영웅은 '시련' 혹은 생사가 걸린 위기를 맞게 된다. 여기서 영웅은 최대의 공포와 직면하고, 가장 어려운 도전에 맞서고, '죽음'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를 이겨낸 영웅은 시험을 당해낸 보상 - '묘약' 을 받는다. 그 보상은 일상적인 세계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영웅의 여정은 끝에 다다른다. '묘약'을 얻은 영웅은 상처받은 세상을 고치기 위해 다시 일상적인 세계로 귀환한다.

태서더, 제라툴, 알타니스, 그리고 짐 레이너가 아이우로 돌아온다. 그들은 기사단의 영웅 페닉스Fenix의 환대를 받지만, 프로토스의 대의원들은 오히려 군대를 보내 태서더를 체포하려고 한다. 동족간의 싸움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태서더는 저그와의 싸움을 알타니스에게 맡기고, 스스로 대의원들의 포로가 되었다. 하지만 페닉스는 태서더와 암흑 기사단이 없이는 저그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짐 레이너와 함께 감옥을 습격하여 태서더를 구출한다.

대의원들은 태서더를 다시 잡아넣으려고 하지만, 제라툴은 지금까지의 저그에 대한 공격이 별다른 효과가 없었음을 들어 대의원들을 설득한다. 태서더와 친구들은 일단 저그의 발록 부족Baelog Brood과 그렌델 부족Grendel Brood의 사념체를 살해하여 오버마인드로 접근하는 길을 열었고, 이어 오버마인드에게 막대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하지만 저그의 필사적인 방어와 오버마인드의 놀라운 재생 능력으로 인해 결정타를 날리기는 힘들어 보였다.

나는 간트리써를 오버마인드에 충돌시킬 것이다... 암흑 기사단의 에너지를 선체에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면, 저 지긋지긋하고 혐오스러운 존재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을 수 있겠지. 집행자여, 기억해 다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아둔Adun이 너희를 지켜보기를...

영웅이 가져온 '묘약'은 세계를 안정시키킨다. 많은 경우, 영웅은 신적인 존재가 되어 그곳을 떠난다.

태서더의 초대형 항공모함, 간트리써가 오버마인드에게 접근한다.

암흑 기사단의 힘을 머금은 간트리써가 오버마인드에게 충돌하자...

오버마인드는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 최후를 맞이한다.

#### 이 책은 신화학의 대가가 썼다는 사실 뿐 아니라,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의 세계를 구상할 때 참고한 책으로 알려져 크게 유명해졌다.

덕분에 미국 등지에서는 문화산업 종사자의 필독서로 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읽는 사람도 없고, 책 자체도 인터넷 서점이 아닌 이상 구하기가 쉽지 않다. 1999년에 찍은 게 아직 팔리고 있는 모양이니 시쳇말로 더럽게 안 팔리는 책인 셈이다. 책 자체도 읽기가 어렵다. 2004년 이 책을 처음 접한 이래 세 번이나 읽었지만, 아직도 그 내용의 반도 모르겠다.

다행히 좀 더 쉬운 안내서들이 몇 권 나와 있다. 스튜어트 보이틸라의 는 조셉 캠벨의 신화론을 기준으로 각종 흥행 영화들을 분석한 책인데, 오히려 이 책이 읽고 대강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더 쉽다.(애시당초 조셉 캠벨의 책을 영화산업에 적용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은 뒤 조셉 캠벨의 책을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가능하면 빨리 사서 읽을 것을 권한다. 빌려서 보기엔 너무 굵고 어려운 책이다. 게다가 경험상, 이런 책은 절판되면 다시 구하지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