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무엇일까?

『비트』의 작가 심산은 자신의 저서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에서 여기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시간의 활용. 그에 따르면, 영화 시나리오는 100여 분 사이에 완결된 이야기를 집어넣어야 하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쓸데없는 장면들을 몽땅 잘라내고 건너뛰는 것 뿐이다.

장면 전환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시간을 줄이는 데도 유용하지만, 무엇보다 관객에게 심리적인 깊이를 드러내면서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다이나믹한 장면 전환은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비슷한 매체가 또 하나 있다 - 만화다. 알다시피 만화란 쪼개진 장면들의 연속으로 이야기를 구현해낸다. 독자는 이 사이를 상상력으로 메꾸면서 만화를 읽어 나가게 되는데, 소위 완결성 연상행위라고 불리는 이러한 작용은 만화에서 시간과 동작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만화 연구가로 유명한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는 완결성 연상 그 자체다." 라고 단언하며, 그의 책 『만화의 이해』는 아예 3장 하나를 통채로 여기에 대한 설명에 할애한다.

2.

화투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고니.

내가 본 만화의 건너뛰기 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장면은 허영만 화백의 1부 1권이었다. 나무 한 돈을 모아 자전거를 사려던 고니, 자전거 값이 올라 사지를 못하고 그 돈으로 화투판에 간다. 그리고 털린다.

현실적인 시간으로 따져 보면 고니가 돈을 죄다 털리는 데 몇 시간은 걸렸을 터, 하지만 만화에서 이걸 묘사하는 데는 딱 한 페이지 걸렸다. 고니가 도리짓고땡에 몰입하는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바로 빈털털이가 되어버린 장면으로 건너뛴 탓이다. 탁월한 선택이다. 고니가 털렸다는 것(그리고 이제 누나의 위자료에 손을 댈거라는 것)이 중요하지 그 내역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다음 페이지.

3.

주말에 자료 파일을 정리하다가 한 묶음의 영화 캡쳐에 눈이 멎었다. 고니가 집에서 훔쳐 나온 누나의 위자료를 도박판에서 몽땅 털리는 부분이었는데, 자잘한 패 설명 따위는 건너뛰고 사건의 진행에만 초점을 맞추는 연출에 감탄을 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어떤 영화든 일단 봤다면 머릿속에 남는 장면 하나쯤은 있을 터, 아직도 나는 이 장면을 영화 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꼽는다.

나중에 DVD를 빌려다 보면서, 같은 부분에서 벽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셌었다. 고니가 위자료를 몽땅 날리고 거지가 되는 데까지 대략 1분 30초 가량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작의 건너뛰기도 장난이 아니었지만, 이런 걸 보면 영화가 풍기는 포스 또한 원작에 뒤지지 않는다.




스크린을 흡사 만화 칸처럼 나눠서 쓰고 있는 점도 인상적.

4.

덧붙이자면, 만화와 영화가 건너뛰는 부분은 같지 않다. 만화는 고니가 처음 간 화투판에서 털리는 부분은 단 두 컷만으로 묘사하지만, 훔쳐서 나온 돈을 털리는 부분과 철물점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에 대한 추리를 듣는 부분은 상당히 상세하게 묘사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고니는 사기 도박패에게 낚여서 돈을 죄다 털린 것이었다.

반면 영화는 고니가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부분을 건너뛰고 바로 작두들고 행패 부리는 부분으로 건너뛴다. 고니의 발광질 다음에 정마담의 나레이션을 짧게 곁들일 뿐이다: "고니가 스물여섯살 때... 목숨을 못 끊었죠." 이렇게 보면 이렇게 건너뛰는 방식이 가진 차이점도 두 매체가 가지는 차이점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