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칼은 모두 여덟 자루가 알려져 있습니다. 평소에 썼다고 알려진 환도 두 자루(1910년 이후 그 행방이 묘연), 아산 현충사에 봉안된 조선식 쌍수도(雙手刀) 두 자루, 명나라 신종이 상으로 하사했다고 알려진 귀도(鬼刀)와 참도(斬刀) 각각 두 자루입니다. 하지만 가장 잘 알려진 칼은 아산 현충사에 보관된 쌍수도 두 자루 뿐, 나머지 칼에 대해서는 인터넷에도 별 자료가 없죠.

지난 설 연휴, 부산에서 군 복무하는 후배 면회를 가는 도중 잠시 통영 충렬사에 들렀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거기서 보고 온 두 자루 참도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귀도 두 자루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정조 임금의 사제문. '사제' 라 함은,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내려 주는 것을 가리킨다. 술과 고기를 이순신 장군 위패 앞에 모신 다음 투구와 갑옷을 입은 채로 잔을 올리고 제사하라는 내용이라 한다. http://www.flickr.com/photos/gorekun/3230924088/

앞서 이야기했지만, 귀도와 참도는 명나라의 신종(神宗, 1563~1620)이 정유재란에 참전한 명나라의 수군도독 진린(陳璘) 제독의 전승 보고를 받고 이순신 제독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귀신 모양의 손잡이를 가진 귀도가 수군 도독으로서의 지위를 상징하는 칼이라면, 보다 실전적인 모습을 한 참도는 군령의 엄정함을 의미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이 검으로 베어버려도 좋다."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정조 19년(1795년) 12월 정조 임금이 제 147대 통제사 이득제에게 명하여 칼 네 자루를 비롯한 신종 황제의 여덟 가지 하사품(팔사품八賜品, 8종 15점)을 충렬사에 보관하고 제사를 올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1966년, 이 칼들은 보물 440호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충렬사의 유물 전시실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참도(斬刀)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전체 길이는 180.2cm니까 197.5cm인 현충사의 쌍수도보다 17cm 정도가 짧습니다. 칼날 길이는 163cm, 칼날폭은 3.8cm.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도검인 환도 중 그 길이가 1m를 넘어가는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에 비추어 보면, 이 칼들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칼입니다. 조선시대의 칼 중 두 번째로 크죠. (*가장 큰 것은 앞서 언급한 아산 현충사 쌍수도)

이 칼들은 분류상으로 보면 중국의 장도(長刀)에 속합니다. 13세기 이후 중국 남부 해안에는 왜구가 횡행하게 되는데, 이들이 사용한 강력한 일본도 - 특히 칼 길이가 1.5m에 달하는 "노타치(野太刀, 야태도)" - 는 명나라 관군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이에 따라 정종유, 척계광 등 명나라의 장수들은 왜구들이 사용하는 일본도를 제압할 방법을 고안하는 한편, 일본도 형태의 칼들을 명나라 군대의 장비로 채용합니다. 일본도 스타일의 중국칼, 장도는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출신 배경을 가진 만큼, 참도는 전체적인 길이에서나 모습에서나 일본 노타치의 영향이 도드라져 보이는 칼입니다. 아산 현충사에 소장된 이순신 제독 쌍수도 역시 비슷한 계보를 가지고 있는 만큼, 두 칼이 많이 닮아 보이는 것은 물론입니다.

참도(斬刀) - 손잡이

손잡이 부분입니다. 칼자루는 어피(魚皮)로 쌌으며, 주칠을 했습니다. 그 위에 흑칠한 쇠가죽줄을 X자 형태로 교차매기를 하여 마무리를 했습니다. 어피로 산 뒤 끈을 교차매기해서 마무리하는 방식은 일본도의 대표적인 손잡이 처리 방식인데, 이러한 면을 어김없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약간 재미있는 것은 손잡이를 고정시킨 방법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일본의 칼은 손잡이를 고정시키기 위해 대나무 못을, 조선의 칼은 금속 원통을 사용합니다. 중국 칼 역시 원통을 사용하는데, 이 칼에는 금속 원통과 나무 못(2개)이 동시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금속 원통에는 빨간 술을 꿰었네요. 사진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칼집의 입구에는 빗금 무늬의 장식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참도(斬刀) - 코등이

참도(斬刀) - 동호인

코등이 부분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코등이 전체에 대해서 국화 문양이 투각되어 있는데, 일본도에서 이러한 코등이 양식을 키쿠(菊花) 양식이라고 합니다 - 물론 100% 같지는 않아서, 일본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칼날 쪽 5개, 칼등 쪽 3개, 좌우 모두 합 16개입니다. 아산 현충사에 소장된 칼의 경우, 국화 문양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기는 합니다만 작은 구멍이 뚫려 있지는 않습니다.

참도(斬刀) - 칼집끝

칼집 끝입니다. 참도의 칼집은 나무 위에 쇠가죽으로 싼 뒤 빨갛게 칠해서 만든 것인데, 칼집 전체에 걸쳐서 규칙적인 문양이 찍혀 있습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어떤 식으로 찍혀 있는지 짐작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보시다시피 대략 일곱 개의 원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칼집 전체에 규칙적으로 찍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흥미를 끌었던 것은 칼집 끝에 새겨진 은도금 장식 문양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사진에도 나와 있지만, 칼의 손잡이 끝(병두)에도 동일한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함께 세트를 이루는 귀도에도 동일한 문양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뭔가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동백꽃 문양하고 비슷해 보입니다만, 미술사를 공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충렬사 안에는 동백나무 몇 그루가 서 있더군요. 나무에 안내판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지역 축제 때도 쓰인다고 하더랍니다.

참고문헌

조혁상, , 이순신 연구논총 제 10호,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9

ps) 논문의 저자인 조혁상 박사의 블로그는 여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