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의 해부학: 11~13세기 체인 메일 #3

* 이 글은 시리즈의 토막글입니다.

착용법

이 시기의 체인 메일을 착용하는 순서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옷 위에 갬버슨Gambeson과 두건Coif을 착용하는 단계입니다. 일단 아래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 중세 전투 재현 행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갑옷을 벗는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오른쪽 기사가 갑옷을 벗고 있는데요, 갑옷 자체는 후대의 물건입니다만 안에 받쳐 입은 옷은 11~13세기에도 사용된 것들입니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두툼한 두건과 팔목까지 감싸고 있는 (역시 두툼한) 갬버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flickr.com/photos/suw/7579969/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말 그대로 두건입니다. 호버크의 두건 부분과 머리 사이의 완충재 역할을 합니다. 앞서 보셨듯이, 호버크는 쇠사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걸 그대로 머리에 뒤집어쓰고 투구까지 뒤집어쓰면 머리가 다 까지게(…)됩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착용합니다. 검도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머리를 보호하는 호면 아래 쓰는 호면수건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guildadosarmoreiros/2329412752/) 멋진 쇠사슬 두건이지만, 이걸 그대로 쓸 수는 없으므로…

이런 모양의 두건을 미리 받쳐 쓸 필요가 있다. 위 그림에서는 수염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턱 아래에서 끈으로 받쳐져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Coiffe_%28Bundhaube%29.jpg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갬버슨입니다. 아케톤Aketon, Wambais, Pourpoint 등으로도 불리는데, 기본적으로 두툼한 셔츠입니다 – 털, 천, 누더기 등으로 속을 채워넣은 무명 두 겹으로 만들거나 두꺼운 아마포를 여러 겹 겹쳐서 만듭니다.

고어핀드 군의 형은 “깔깔이” 라고 부른다.(…) http://www.flickr.com/photos/archeon/14110281/

갬버슨의 필요성은 체인 메일이 가진 본질적인 한계를 보완하는 데 있습니다. 체인 메일은 유동성이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지만, 쇠몽둥이(메이스Mace)와 같은 타격병기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합니다 – 맞으면 바로 골절되거나 타박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칼에 베여 호버크가 파괴되었을 경우, 갈라진 호버크와 상처가 접촉함으로써 패혈증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미리 갬버슨을 입는 것입니다. 두툼하기 때문에 타격병기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방어도 기대할 수 있고, 칼에 베이거나 화살이 갑옷을 뚫고 박혔을 때도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갬버슨 대신 가죽옷을 입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리 일반적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갬버슨은 계급이 낮은 병사들이 주 방어구로 사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현대적인 재현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위아래의 사진은 모두 13세기 이후의 무장을 재현한 것입니다만, 윗도리에 걸친 갬버슨은 그리 다르지 않으니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대략 오른쪽 병사가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http://www.flickr.com/photos/beartrax/2729734270/

두 번째 단계는 앞에서 설명한 호버크와 쇼우스, 그리고 기타 옵션 장비 및 투구를 착용하는 것입니다. 갑옷 본체에 대한 부분은 앞([1], [2])에서 이미 다 보았으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네요. 보다 안쪽에 착용하는 쇼우스 & 옵션장비를 먼저 착용한 뒤 호버크, 투구를 착용하면 됩니다.

호버크를 착용하는 모습에 대한 당대의 채색화(http://en.wikipedia.org/wiki/File:Morgan_Bible_28r_detail.jpg). 말 그대로 “뒤집어 쓰고” 있다.(…)

투구에 대해서라면 – 11 ~ 13세기에 사용된 투구는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코니컬 헬름Conical Helm, 그레이트 헬름Great Helm, 케틀 햇Kettle Hat. 이 투구들을 호버크의 쇠사슬 두건 위로 착용하게 됩니다.

영화 의 한 장면. 주인공 발리안이 쓰고 있는 투구가 바로 전형적인 Conical Helm이다 – 말 그대로, 원뿔형(Conical)이다. 코를 보호하는 막대인 나잘Nasal이 장착되어 있다. 전반기에 주로 쓰였다.

Conical Helm은 12세기 중반부터 서서히 추가 장갑판이 붙으면서 Great Helm으로 진화해 간다. 이 투구는 얼굴 전면을 가리기 때문에 소위 “포스”가 있어보이는 편이다. http://www.flickr.com/photos/sascha-gebhardt/3260357438/

또다른 투구, 케틀 햇Kettle Hat. 보통 기사 아래의 직업 병사들(=서전트Sergeant)이 사용하는 게 보통이지만, 팔레스타인 성지와 같이 더운 곳에서는 기사들도 즐겨 착용했다. 통기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달려 있는 챙이가 시원했기 때문이다. http://www.flickr.com/photos/archeon/21662631/

마지막으로 서코트Surcoat를 착용함으로써 정식 차림이 완성됩니다. Surcoat는 지금까지 예시 사진에 계속 나왔던, 호버크 위에 덧입는 원피스 블라우스 형태의 옷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략 12세기의 2/4분기에 등장해서 13세기 초에 널리 사용되었는데, 이것의 용도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쟁이 있습니다. 갑옷에 습기가 차서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Surcoat가 습기를 흡수하니까)도 있고, 단순히 패션일 뿐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흔히 문장(Heraldry)을 표시하기 위해서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당대의 그림들을 보면 대부분 단순한 도색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별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영화 의 한 장면. 이 정도로 무릎 위아래까지 덮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버크와 마찬가지로 앞과 양 옆이 트여 있는데, 이는 말을 탈 때 다리를 벌리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12세기 성전기사단원(템플러Templar)을 재현한 사진. 1240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성전기사단의 기사들은 갑옷 위에 기사단의 상징(붉은 십자가)이 새겨진 흰 수도사용 외투(카파cappa)를 입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surcoat처럼 기동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적어도 확실하게 표는 난다. http://www.flickr.com/photos/8765199@N07/2811903055/in/set-72157606473530717/

서코트를 입을 때 보통 함께 사용되는 것은 허리띠입니다. 이것은 호버크를 고정하는 효과도 있지만, 어깨 위로 쏟아지는 호버크의 무게를 반감시키는 효과 또한 있습니다. 전투중에는 가능하면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좋으니, 웬만하면 착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은 소위 “어깨뽕”의 존재입니다. Maciejowski Bible의 채색화 등 당대의 그림들은 몇몇 체인 메일 착용자의 어깨가 두툼하게 올라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갑옷과 같은 복장에서 어깨를 강조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니 별로 이상할 것이야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착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참고 문헌

David Nicolle, Angus McBride, The Normans, Osprey, 1987

Christopher Gravett, Graham Turner, English Medieval Knight 1200 – 1300, Osprey, 2002

Helen Nicholson, Wayne Reynolds, Knight Templar 1120-1312, Osprey, 2004

말이 필요 없는 오스프리 출판사의 책들. 번역된 책은 한 권도 없다.

R.G.Grant, Warrior: A Visual History of the Fighting Man, DK Publishing, 2007

DK Publishing, Weapon: A Visual History of Arms and Armor, DK Publishing, 2006

David Edge, John Miles Paddock, Arms & Armor of the Medieval Knight: An Illustrated History of Weaponry in the Middle Ages, Crescent, 1993

무기와 갑옷에 대한 기타 저작들. 역시… 번역된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OTL…

18 thoughts on “갑옷의 해부학: 11~13세기 체인 메일 #3

  1.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더운 기후에서의 전투는 체력소모가 정말 극심했겠네요..

    •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여름에 검도장에서 호구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면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닌데, 저 경우는 훨씬 심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프로페셔널 전사들이라고 해도…

  2. 조선시대 갑옷안에 입은 것으로 알려진 남이흥 장군의 녹피방령포와 녹피바지 유물이 있고, 조선시대 쇄자갑내에 피삼(갗옷, 구의)를 입은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에서는 가죽옷을 더 선호한 걸까요?.
    http://blog.naver.com/zolaman_k/60068623711

    • 좀 더 자료를 뒤져봐야 알겠습니다만, 그 쪽이 좀 더 타당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3. 깔…깔깔이!(……)

    확실히 두터운 옷이 사슬갑옷의 단점을 보완해주겠군요. 근데 사슬갑옷에 깔깔이(…..)까지 껴입으면 너무 덥지 않을까요? 유럽에서는 크게 문제되지는 않겠지만, 십자군 원정때도 저렇게 입고 유럽에서부터 이스라엘까지 간다면 중간에 탈진하거나 낙오하는 병사가 많았을 거 같습니다;;

    • 행군 중에는 당연히 벗어서 따로 들고 갔겠죠. 하지만 팔레스타인 성지에서 저런 식으로 입고 싸우면 정말 더웠을 겁니다. 뭐, 이라크 전쟁에서도 미군들은 온 몸을 다 감싸는 화생방 방호복 입고 싸웠다고 합니다만…

  4. 악몽과도 같은 더위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절대로 벗어 날수 없는 저주받은 한반 승부, 깔깔이 & 솜갑옷..

    • 내가 쓰러지느냐 아니면 그 전에 상대를 때려 눕히느냐의 문제 아니었을까요 ^^

  5. 악 오늘은 왜 가터벨트 안나오나요! (….)

  6. 저도 놀러왔습니다~ 갑옷에 관하여 이렇게 자세한 분석이……^^

    근데 저걸 여름에도 그대로 입나요?? 그렇다면 저같이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전쟁에 못나가겠는걸요~ ㅋㅋㅋ

    • 여름에도 물론 그대로 입습니다. 어느 사회나 돈 벌기는 힘든 일 아니겠습니까. 저 시대에는 기사야말로 최고 전문직이니까요. ㅎㅎㅎ

  7. 음…대략 한여름 잘 달궈진 철판떼기(배….)안에서 방진복과 방진마스크와 방진고글과 가죽장갑을 입고 온몸을 테이프로 칭칭 감은다음 커터칼 하나들고 석면을 긁어낼떄랑 비슷한 수준?

    아니면 발밑에서 불길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방안에서 방열복과 산소탱크를 들쳐매고 수십명이 도란도란 모여서 소화훈련을 할때의 느낌??

    으악! 상상만 해도 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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