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전에 파멸한 온라인 광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것만으로는 좀 섭섭하니, 오늘은 그 후일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앞선 포스트를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먼저 짧게 요약해 드리겠다. 이글루스의 블로거 M은 상대를 가릴 것 없이 인정 사정 없이 타작질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어느 날 H에 원한을 품고 그녀에 대한 악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는데, H가 제시한 증거 덕분에 그 찌질한 행각이 들통났다. 결국 그는 블로그를 접고 잠수를 타야 했다.

잠수... (의 한 장면)

지난 5월, 이번엔 H가 잠수를 탔다. 발단은 이글루스의 추천수 어뷰징(Abusing)에 관련된 시비. 논란에서 H는 단순히 심증만으로 모씨가 범인이라고 몰아붙였다. 보아 하니 모씨의 블로그에 가서 사생활을 까발리겠다는 협박까지 한 모양이다. 일은 여기서 터졌다. 여기 저기서 H를 비난하는 여론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너도나도 H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글 등으로 긁어낸 H의 실명, 통장 계좌 번호, 소속 학교, 학점 등등 온갖 개인정보가 까발려져 나왔다. H가 옛날에 다른 사이트에서 했던 온갖 언행들 - 꽤나 민망한 것들까지도 - 이 하나씩 끄집어져 나왔다. 결국 H는 사과문 한 장만 남긴 채 블로그를 폐쇄하고 잠적했다.

2.

H는 이글루스에서 꽤나 유명인사였고, 추종자들도 많았다. 짧은 글 하나만 올리면 덧글이 우수수 달릴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일이 터지자, 아무도 그녀를 변호하지 않았다. 너도나도 그녀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개인정보를 까발리면서 조롱하고 즐거워했다. 그 정도 유명인이라면 뭘 하든 감싸고 변호해주는 사람은 상당히 많기 마련인데, H에겐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왜 그럴까. 궁금했다.

한참을 뒤적거린 뒤에야, 나는 그 이유를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녀가 M을 파멸시킬 때 M과 나누었던 메신저 채팅 로그를 몽땅 들고 나와서 증거물로 삼은 것은 꽤나 유명했다. 그런데 오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렇게 대화 하나하나까지 증거물로 수집해 놓는 것이 그녀의 습관인 듯 했다. 주변 사람들의 개인 정보를 세세하게 수집해 놓았다가 사이가 벌어지면 그걸 증거물 삼아 박살내는 게 주특기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H를 따르는 사람들조차 내심 그녀가 두려웠던 것 같다. 왜 아무도 편을 들지 않는지 대략 이해가 갔다. 마녀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 중세의 고문도구다. http://www.flickr.com/photos/viciousbits/3627924042/

마녀는 자신에게 사과하며 매달리는 사람을 자기 블로그에서 조롱했던 것 또한 유명했다. 일이 터지고 나서, 나는 마녀의 블로그를 찾았다. 두 번째 사과문이 올라가 있었다. 지금까지 자기가 해 왔던 모든 일에 대한 사죄의 뜻이 담겨 있었다. 온라인 활동을 접고 긴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5월 18일 사과문이 게시된 뒤, 그녀의 블로그는 아직까지 아무런 업데이트가 없다.

3.

모 고위 공직자의 인사 청문회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입이 시끄럽다. 원칙에 따라 전직 대통령을 구속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던 이 양반, 알고보니 한 수 더 뜨는 사람이었다. 재력가에게서 큰 돈을 빌렸(?)고, 부인과 함께 검사 봉급으로는 어림도 없는 사치를 즐겼다. 한 신문사의 보도에 따르면, 그의 아들은 도대체 어떻게 병역특례를 구했는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란다. 게다가 서울 한복판의 6성 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다. 이 정도면 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부패한 상류층의 완전체" 와도 같은 사람이다: 10점 만점에 10점.

7월 16일 한국일보 만평.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07/h2009071602300975870.htm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나는 명나라의 환관 유근(1451 ~ 1510)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비리를 비방하는 사람들을벌주기 위해 20여 개나 되는 새로운 고문법을 시행했다. 결국 그는 역모죄가 들통나 책형을 선고받았고, 망나니들은 사지를 한점한점 떼내는 방식으로 그를 죽였다. 그가 죽자 그 고기를 사기 위해 북경의 백성들은 길게 줄을 섰다. 모두가 그의 고기를씹어먹고 싶어했다.

부패한 환관이든 검찰총장 내정자든 H든, 증상은 모두 비슷하다. 남들의 이목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고문 방법을 실시하던 유근은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세된 수탉보다 그냥 수탉이 맛있다는 사람을 잡아 고문할 수 있었을까. 검찰총장 내정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자기 삶을 한 번만이라도 돌아봤다면, 후원자에게서 돈을 받은 전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인정보를 온라인에 까발리면서 미운 사람을 망신주던 H도 예외는 아니다.

4.

그러고도 자기 행동을 못 돌아보는 사람이 있긴 하다.(주어 없음.) - 2009년 7월 16일 경향 만평. http://news.khan.co.kr/kh_cartoon/khan_index.html?artid=200907152025362&code=361101

앞서 이야기한 세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길 약간만, 아주 약간만 게을리했을 뿐이다. 그 결과, 그들은 괴물이 되어버렸다. 세간 사람들은 괴물들을 욕하기에 바쁘지만, 나는 괴물이 되어버린 그들의 모습이 더 공포스럽다. 나 또한 자기 반성을 게을리한다면, 언제고 괴물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무서워서 온 몸을 떨곤 한다.

어릴 때 유치원 선생님은 이렇게 가르치곤 했었다: "남에게 뭔가를 하기 전에, 당하는 사람 입장이 되어 한 번만 생각해 보라" 그래, 누구 말따마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건 유치원 때 다 배웠다. 실제로 그렇게 살기가 힘들어서 문제지만.

ps) 더 돌아버릴 것 같은 건, 저 따위 인간을 보기 드문 청백리로 추켜올리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x들도 자기 반성은 개한테나 줘버린 모양이다. 정말 끼리끼리 논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