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왜 ‘용병’ 인가? #2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사정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 대부분 지역 – 특히 알프스 산맥 이북의 지역에서는 도시가 크게 약화되고 농촌 지역을 기반으로 한 봉건 영주들이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알프스 산맥 남쪽, 북이탈리아 지역은 약간 상황이 달랐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지역이 대체로 산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형적인 방어벽이 생기기 때문에, 각지에 할거한 세력들이 통합되기 힘듭니다. 게다가 알프스 산맥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침입자들에 대한 훌륭한 방패가 되었기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같은 북유럽의 강대한 침입자들이 이 지역을 손에 넣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14개나 되는 마천루 탑으로 유명한 북이탈리아의 도시, 산 지미나뇨(San Gimignano). 이 도시의 탑들은 이 도시를 지배하던 귀족들이 남긴 유산이다. 관련글 http://blog.naver.com/zazabto/40032244382 사진출처 http://www.flickr.com/photos/cfwee/221500705/

그 결과 이 지역은 봉건 영주이 아닌, 베네치아·플로렌스·제노바·밀라노 등의 도시 국가들이 제각각 할거하게 되었습니다. 지형 외에 이들을 지켜주는 것은 장창·석궁로 무장한 민병대와 높고 견고한 성벽이었습니다. 실제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 대항하여 북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결성한 롬바르디아 동맹Lombardy League의 군대는 1179년 Legnano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황제 “붉은 수염” 프레데릭 1세의 기사들을 대파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창으로 무장한 민병대(게임 – 밀라노군)

석궁을 장비한 민병대(게임 – 베네치아군). 석궁은 13세기 말 이후 주요한 전쟁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민병대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프로 전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평소에는 생활을 영위하는 상인들이나 직공들인 만큼, 대단한 전투 기술을 보유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였습니다. 창병이나 석궁병 노릇은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은 본질적으로 방어적인 병종이기 때문에 적진을 돌파하거나 패퇴하는 적을 추격할 수 없습니다. 각 병종을 효율적으로 조율하여 적을 격파할 능력도 모자랐습니다. 도시에서 생업을 유지하는 시민들인 만큼, 멀리 출격할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도시민들은 사회 계급에 따라, 정치 성향에 따라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단결하여 군대를 조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들 도시 국가의 시민들은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매우 부유했기 때문에, 돈으로 군대를 고용해서 이들에게 국방을 맡기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살인 비즈니스의 성립

돈으로 국방을 해결하고 싶은 시민들의 수요와 돈벌이에 혈안이 된 기사들의 공급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이곳입니다. 시민들은 돈을 주고 국방을 맡겼고, 돈을 벌어야 했던 기사들과 휘하 병사들은 전문적인 용병이 되었습니다. 직업적인 군대가 등장하자 반대로 시민 민병대는 그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미 14세기 중반에 이르면서 기존의 시민 민병대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이러한 전문 용병들을 콘도티에리(Condottieri)라고 부른다. 게임

초기에는 용병대장이 고용주를 협박해서 털어먹거나(…) 돈을 더 벌기 위해 전투를 기피하며 질질 끄는 등의 부작용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용병 시스템은 결국 정착되었고 또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보병전술의 발달은 더 많은 병사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가 1474년부터 스위스 무장 창병들을 용병으로 대거 고용하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는 남독일에서 돈으로 모집한 병사들을 스위스식 장창으로 무장시켜 맞섰습니다. 무엇보다 스위스나 남부 독일 지역은 자신의 몸을 팔아넘길 가난한 남자들이 흔했기 때문에,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할 수 있었습니다. 1618년 ~ 1648년에 걸쳐 진행된 30년전쟁 때는 수십만 명의 용병들이 전투원으로 참전했습니다.

중세의 용병집단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를 재현한 사진. http://www.flickr.com/photos/avsfoto/2743839773/

용병들은 복무가 끝나면 몇 푼 안되는 돈과 함께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돌아갈 고향도, 농토도 없는 존재인 만큼 전역 후에는 다른 곳에 가서 다시 돈을 벌어야 했고, 그것조차 여의치 않으면 약탈이나 강도짓 등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곳저곳 던전을 뒤지는 고달픈 용병의 이미지는 여기서 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참고문헌

– William H.Mcneill,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 이내주 감수 · 신미원 옮김, 이산, 2005)

: 시장 경제 체제와 군사 체제의 상호작용과 발전에 대한 감탄할 만한 저작. 제 3장 “유럽에서의 전쟁이라는 비즈니스, 1000 ~ 1600년” 을 주로 참고했다.#### – David Edge / John Miles Paddock, >, Crescent, 1993

: 중세의 갑옷에 대한 교과서적인 저작.#### – Gary Embleton / John Howe, , Combined Publishing, 1995

: 15세기를 중심으로 한 중세의 전쟁에 대한 책. 리인액트 사진이 잘 나와 있어 읽기가 즐겁다.#### – Christopher Gravett / Graham Turner, , Osprey, 2002

: 13세기 영국의 기사들에 대한 책. 병역의 금납화에 대해 실제 예를 들어 가며 설명한다.#### – 심재윤, , 선인, 2005

: 영국 중세사 학자가 저술한 서양 중세사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인 개설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좋아서 자주 들춰 본다.

4 thoughts on “중세: 왜 ‘용병’ 인가? #2

    • 하하, 확실히 외국 매니아들은 자기 돈을 들여서 저런 훌륭한 리인액트를 하니 정말 보기가 좋더군요. :)

    • 양덕후>넘사벽>일본덕후>한국덕후라는 공식이 있지요. 일본이 아무리 덕력 높다지만, 양덕후들 리인액트 앞에서는 그저 귀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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