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늑대들의 전설

완전판 5권 175쪽. 만화에 등장하는 사이토 하지메는 실존 인물로, 신센구미의 간부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면서 일본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많이 들어왔다. 역시 가장 인기를 끄는 건 상당한 팬을 확보한 전국시대지만, 그래도 간간이 그 외의 소재를 다룬 작품들도 눈에 띈다.

그 “기타 소재” 중 은근히 자주 등장하는 존재가 신센구미(新選組신선조)다. 막부 말기,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결성된 경찰조직. 일본 역사상 최강의 검객 집단. 사정없는 사람 사냥으로 “미부의 늑대”1라는 별명을 얻었던 사나이들.

신센구미의 이미지를 만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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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에 대해서라면 시바 료타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워낙에 역사 소설로 유명한 작가지만, 그 중에서도 신센구미를 다룬 은 유난히 자주 이야기된다. 현재 통용되는 신센구미의 이미지는 거의 다 이 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신센구미를 다룬 작품들은 2인자인 히지가타 도시조(土方歳三)를 실질적인 리더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우두머리였던 곤도 이사미(近藤勇)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며, 심지어 약간 머리가 둔하고 단순한 인물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이것은 도시조를 신센구미의 프로듀서로서 설정한 이 소설의 영향 때문이다. 현재 신센구미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이 Tv로 방영2된 시바의 소설을 통해 신센구미의 팬이 되었으며, 연구자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 소설이 미친 영향은 크고 깊다.3

소설은 부장이었던 도시조를 주인공으로, 신센구미의 탄생 전부터 마지막 전투였던 하코다데 전투까지를 따라간다. 도시조는 곤도 등과 함께 에도 변두리의 다마 지역 출신으로, 사실은 사무라이가 아닌 평민이다. 곤도가 운영하던 검술도장인 시에이칸(試衛館시위관)에서 검술을 연마하던 그는 항상 무사를 동경했고, 결국 막부의 로닌4 모집에 응모하여 교토로 간다. 그리고 뛰어난 책략과 엄격한 규범 적용으로 잡다한 로닌떼에 불과했던 신센구미를 최강의 무사 집단으로 키워 낸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도시조가 어떻게 신센구미를 창조했고 또 그와 함께 죽어갔는지에 대한 기록인 셈이다.

사실 시대적 배경을 놓고 보면, 한 물 간 무사도에 집착하는 도시조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시대 착오적인 감이 없지 않다. 작가가 당시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소설을 집필한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역사 발전에 걸림돌이 된 인물에 대한 소설을 쓴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그가 도시조의 입을 빌려 한 말이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사나이에게는 절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가치이다.”

작가는 비록 수구적인 반혁명분자에 불과하지만, 쇼군과 막부에 대한 충성을 다한 그들을 지조와 절개를 지닌 ‘사나이’ 로서 그린다. 그리고 그들의 치열했던 삶에 나름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들의 최후는 멋졌다. 무사를 동경한 그들은 사실, 일본 최후의 무사로서 무사답게 죽었다. 남자로서 역시 행복한 생애였다고 할 수 있다.”5

장편 이 정전이라면, 단편집 은 외전격에 해당한다. 도시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신센구미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다루고 있다. 에서 지나쳐간 에피소드들이나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자매편으로 반대편 유신 지사들을 다룬 단편집인 이 있다.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이 소설의 첫 두 에피소드를 미리 읽으면 과 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신센구미,

그렇다면 이 창조한 신센구미의 “전설”은 “사실”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까.

그 평가가 어떻던 간에, 신센구미에 대해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시골 후진 지역의 검객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라는 것. 막부에 충성한다는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칼을 쓰는 검객 집단이었다는 것. 어떤 식으로 놓든, 근대화 혹은 시대 변화와는 별 상관 없는 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좋게 말하면 쇼군과 막부에 충성을 다한 마지막 무사들, 나쁘게 말하면 무사가 되고 싶어 칼을 휘둘러댄 시대 착오적인 정치 깡패들. 대체로 신센구미의 이미지는 이 정도다.

신센구미의 국장, 곤도 이사미.

이러한 인식에는 정치적인 누명의 혐의가 짙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을 지배한 유신 사관은 승리자인 유신 지사들을 화려한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시킨 반면, 패배자인 신센구미를 악당, 그것도 단역 정도로 설정했다. 「유신지사 = 신진 세력 = 근대화 vs. 신센구미 = 수구 세력 = 봉건제」의 도식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 나온 시바 료타로의 소설들은 막부의 주구에 불과했던 신센구미를 최후의 무사 집단으로 화려하게 복권시켰지만, 신센구미를 여전히 전근대적 조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신센구미에 대해서는 오이시 마나부의 가 해답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우선 신센구미는 무사가 되고 싶었던 시골 검객들의 집단으로 그려지지만,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를 부정한다. 신센구미의 주축을 이룬 간부들이 에도6 주변부 다마 지역 출신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런데, 이 지역은 시골이라기보다 에도라는 대도시에 채소 등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된 배후지에 가까웠다. 그만큼 수도에 가까운 지역이었고, 시대의 흐름에서 멀리 떨어진 후진 지역도 아니었다. 또 하나, 신센구미 조직원들의 출신지는 일본 전국에 고루 퍼져 있다. 당시 일본 사회의 과제 중 하나가 번(藩)이라는 틀을 넘어 일본인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시대 흐름에 유리된 집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상적인 점에서도 그렇다.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이 당면한 과제는 서양 세력의 압박에 대항하는 것이었고,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흔히 유신 지사들은 진보적인 개화파고 막부는 수구적인 반동 집단으로 여기지만, 양쪽 모두 목표는 동일했다: 서양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 다만 그 방식에 있어 서로 생각이 달랐을 뿐이었다.

자연 신센구미 또한 칼에만 집착할 정도로 꽉 막힌 집단이 아니어서, 상당히 일찍부터 서양 의학이나 서양식 전술에 관심을 가졌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직 운영에 서양 의학의 지식을 적용하거나 대원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훈련시킨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무엇보다 녹봉을 기준으로 하는 기존의 군주-가신 체계를 벗어나 근대적인 명령 구조나 보상 체계를 갖췄다는 점에서 신센구미는 수구적 봉건 집단이라기보다 상당한 수준의 근대성을 지닌 집단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신센구미의 부장, 히지가타 도시조. 서양식 머리와 군복을 하고 있다.

어느 가장의 이야기,

한 무사가 있다. 형편없는 봉급 탓에 처자식을 먹여살릴 수 없었던 그는 칼부림으로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신센구미에 들어간다. 50년이 지난 뒤, 어느 신문기자가 그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기자의 질문을 받은 지인들은 오래 된 기억을 더듬어 그에게 벌어진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 의 내용이다. 으로 유명한 작가 아사다 지로의 작품으로, 동시에 영화 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요시무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전우에서 야쿠자까지 다양하고, 그들이 겪은 일과 그들이 기억하는 요시무라도 그만큼 제각각이다. 하지만 조금씩 엇갈리는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어떻게 삶이 참된 삶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군대라는 데는 그야 죽는 방법은 일러줘. 그렇지만 사는 방법은 가르쳐주질 못해. 사실은 그쪽이 더 중요한데 말야. … 지로에 나리도 요시무라 선생도 각자의 몫을 칼같이 해낸 분들이야. 내 눈으로 보면 그 두 분이 똑같이 사내대장부 중의 사내대장부요. (오노 사스케)”

소설을 읽는 내내 필자의 머릿속에 머무른 것은 논어의 한 구절이었다: “인간성의 기본 원리에 관련된 문제를 놓고는 너희 스승에게라도 굽혀서는 아니된다.”7 예의를 중시하는 공자가 스승을 거스르라고 가르치는 것은 의외지만, 공자의 전체 가르침을 놓고 보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공자가 살던 시대는 전쟁이 밥 먹듯 일어나던 난세였다. 그 속에서 그는 평생 인(仁)의 실현을 목표로 살아갔다. 하지만 복잡다난한 현실에서 이럴 때 저러한 것이 어진 행동이라는 식의 가르침은 그 의미를 잃는다. 단순히 이런저런 규범들을 줄줄 외워서 바르게 살 수 있다면 세상 일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지 속에서 어느 것이 더 어진 행동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경직된 규범이 아니라 당사자가 가진 확신, 그리고 지혜일 터다.그런 점에서 요시무라의 삶은 공자의 역설적인 가르침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온다. 요시무라는 신센구미가 되기 전, 학교에서 논어와 검술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시대는 흉년이 새끼줄에 꿰인 굴비마냥 이어져 하급 무사로서는 먹고 살 수 없던 시기였고, 그가 살아간 사회는 칼부림이 일상인 무간지옥이었다. 시궁창에 거꾸로 처박힌 듯한 현실에서 유리병 속에 박제가 되어버린 도덕은 그 의미를 잃는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仁)이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의(義)일까.

이 소설은 살생이 업인 불인(不仁)한 인간을 통해 진정한 인(仁)의 의미를 묻고, 돈을 위해 탈번8한 불의(不義)한 무사를 통해 진정한 의(義)의 의미를 묻는다. 신센구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읽고 나서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앞서 소개한 책들을 읽고 이해할 근성이 있는 독자에 한해, 나는 이 소설을 추천한다.


  1. 첫 주둔지가 교토 서쪽의 미부 마을이었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피에 굶주린 늑대” 비슷한 뉘앙스로, 당연히 좋은 뜻이 아니다. 

  2. 소설 출간은 1964년, 드라마 방영은 70년대. 

  3. 의 작가 와츠키 노부히로도 이 작품의 열렬한 팬이다. 1권 단행본에 “사실은 켄신의 적인 신센구미를 더 좋아합니다. 히지가타 최고!” 라고 해놨을 정도. 

  4. 浪人낭인. 섬기는 주군이 없는 무사. 

  5. 시바 료타로, 

  6. 지금의 도쿄. 

  7. 논어 권15, “子曰 當仁 不讓於師” 

  8. 소속된 번을 탈퇴하는 것. 섬기던 주군과의 인연을 끊는 것이므로 무사로서 최고의 죄다. 

10 thoughts on “[서평] 늑대들의 전설

  1. 잘 모르지만…드라마속 캐스팅이랑 위의 만화 이미지 속 캐릭터가 얼추 비슷하게 맞는 것 같네요.. 캐릭터 성이 있어보이는게 재밌을 것 같네요

    • 예, 사실 그 이미지란 게 본문에서 이야기한 <타올라라 검>의 Tv 드라마 이미지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디서든 오키타 소지나 히지가타 도시조, 사이토 하지메 등은 비슷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합니다.

  2. 온라인에서는 역시 오프라인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최후의 무사 신센구미’와 ‘칼에 지다’는 꼭 읽어봐야겠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 예, 대중 역사서로서 그리고 소설로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 주더군요. 다만 신센구미에 대해 어느 정도의 “줄거리”는 알고 있어야 하므로, 이를 위해서 앞에서 소개한 2(+1)권을 읽어보시길 권하는 바입니다. 물론, 자신이 있으시다면 큰 문제 안되지만요.

    • 외전은 아니고, 사이토 하지메가 처음 등장하는 초기 에피소드의 한 컷입니다. 켄신이 자기하고 싸웠던 신센구미를 추억하는 부분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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