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ari: 파멸의 뒷이야기

전문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갖춰야 할 것도 중요하다.

Atari의 사례는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지난 포스트에서 잠시 언급하기도 했고, 최근 유정식님의 블로그에 연관된 내용도 올라오고 해서 포스팅.

1982년 전세계 게임 시장을 지배하던 Atari가 갑자기 무너져 내린 일은 게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된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하던 비디오 게임 산업이 갑자기 파멸했던 것이다. 그 폐허를 거치고 살아남은 것은 일본 Nintendo였고, 결국 현재까지 통용되는 콘솔 플랫폼 비즈니스의 틀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게임의 역사에서 일종의 창세기와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이른바 “아타리 쇼크” 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Atari가 관리를 안 한 사이 게임 개발사들이 저질 게임을 마구 찍어냈기 때문에 일어났다” 는 것이 정설이다. 저질 게임에 질린 소비자들이 비디오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고 구매를 그만두었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기절 초풍할 만한 내막을 알게 된다.

저질 게임을 제일 많이 만든 곳이 바로 Atari 자신이었던 것이다.

MBA들의 천국

1977년 Atari가 출시한 게임기 “Atari 2600 VCS“는 2500만대가 팔려나갈 정도1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따라 워너 그룹은 창업주 놀런 부쉬넬로부터 Atari 사의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한다. 자신들이 가진 각종 영화 저작권을 활용해서 게임을 만들면 큰 이윤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게임 시장이야 급성장하고 있었고 Atari의 게임기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으니까, 일견 타당해 보였다.

Atari 2600 VCS. http://en.wikipedia.org/wiki/File:Atari2600a.JPG

문제는 이 시점부터 Atari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IT 벤처기업들은 자유분방한 성격2이 짙다. 하지만 워너는 기업을 인수하면서 이런 문화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마케팅과 관리를 잘 배운 MBA들을 내려보내서 “비즈니스를 모르고 제멋대로인” 개발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보드게임 루미큐브를 비디오 게임으로 출시하자고 하더군요. …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어요. 3.98 달러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을 누가 40달러나 주고 비디오 게임으로 하겠느냐고 대답해 줬지요. 잘 판매될 턱이 없었지요.

– 전직 Atari 개발자

…도대체 어떻게 저런 프로젝트가 OK 사인을 받는지 이해가 안 갈 지경이다. 어쨌든 이 일화 하나로도, Atari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죽음의 행진

루미큐브를 즐기는 모습. 솔직히 이 게임의 “손맛”을 기계적으로 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필자는 아직도 감이 안 온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Rummikub_Tiles.jpg

전직 Atari의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후 Atari는 MBA들의 천국이 되어 간다. 전문적인 지식이야 언제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Atari에게는 치명타로 작용했다. 창의적인 직원들을 밀어낸 새내기 MBA들이 수십만 달러가 넘는 프로젝트들을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보 개발자들”을 밀어낸 “똑똑한 MBA”들이 이끈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죽음의 행진이었다.

MBA들은 비디오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으니까, 비디오 게임으로 포장하기만 하면 뭐든 팔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게임으로 만들어댔는데, 이게 게임 개발을 동네 슈퍼에서 휴지 두루마리 사오는 수준으로 생각한 탓에 퀄리티가 엉망 진창이었다. 이렇게 쏟아낸 졸작 게임들은 다른 회사들이 만들어낸 엉망진창 게임들3과 함께 소매상을 접수했다. 그리고 재미없는 게임에 질린 소비자들은 슬슬 게임에 대한 흥미를 거두기 시작했다.4

1982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판매된 ET는 전설적인 졸작 게임으로 악명이 높다. 게임 자체가 재미없었던 것도 그랬지만, 너무 촉박한 개발 시간만 강요한 탓에 게임 진행이 안 될 정도로 버그가 많았던 것이다. 삽질은 여기서 멈추지도 않았다. Atari는 시장을 지나치게 낙관하여 게임 팩을 너무 많이 생산했고, 반품이 잔뜩 들어온 탓에 이것들은 전부 회계상 손실로 이어졌다.5

1982년 중순부터 Atari의 매출은 빠르게 줄어들6었다. 1983년이 되자 소비자들은 게임을 전혀 구매하지 않았으며, 게임 시장에는 빙하기가 왔다.

결국 Atari는 파멸했다.

이해심과 책임감

어째 MBA 무용론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는데(…), 나는 결코 경영학 지식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그 쪽 지식에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며 – 무엇보다 특정 학문을 부정할 정도의 지식과 연륜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어떤 지식이든, 지식 이전에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책임감이다.

Atari를 접수한 MBA들이 소비자와 개발자들에 대해 조금만 이해를 하려고 했다면, 이론에 취해 저런 멍청한 프로젝트들을 밀어붙였을까? 자기 행동이 회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조금이라도 책임감을 느꼈다면, 숫자 장난으로 점철된 보고서와 기획서를 남발했을까? 나는 이런 간단한 개념만 챙겼어도 Atari는 무너지지 않았을 거라고, 지금의 NintendoSCE는 없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기야 Atari만의 문제도 아니겠다. 세기의 회계부정으로 유명한 Enron도 MBA 좋아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웠지 아마.7

참고문헌

스티븐 켄트 저, 이무연 역, , 파스칼북스, 2002

:아타리 쇼크에 대한 내용은 pp.224 ~ pp.229 에 나온다.

우츠미 이치로 저, 전기정 역, , 세종서적, 1991

다키타 세이이치로 저, 김상호 역, , 게임문화, 2001


  1. 당시 미국의 세대 수는 8000만 가구였으니까, 거의 30%의 보급률이다. 

  2.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도에서 막 돌아온 히피 햏자 젊은 시절의 Steve Jobs도 여기서 회로기판을 최적화하는 작업을 했었다. 

  3. 지금의 Playstation이나 xBox와는 달리, Atari 2600에서 돌아가는 게임은 기술만 있으면 아무나 만들어낼 수 있었다. 

  4. 이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2년 뒤인 1985년 닌텐도가 미국에 진출해서 패미콤을 팔려고 했을 때 “비디오 게임 따위는 필요 없다.” 며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받았을 정도였다. 당시 미국 닌텐도 사장이었던 아라카와 미노루는 훗날 인터뷰에서 “당시 패미콤을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고 밝힌 바 있다. 

  5. ET의 게임 팩들은 파쇄해서 사막에 갖다 묻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외의 실패작에 대해서는 건물 지하실에 묻고 콘크리트로 발랐다는 후덜덜덜한 전설도 존재한다. 

  6. 캐난감한 사실 하나는, Atari가 같은 해 발간된 톰 피터슨 교수의 에 초우량 기업의 예시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더 난감한 건 이 책이 아직도 아주 잘 팔리고 있다는 점이다. 

  7. 여기에 대해서는 말콤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를 참고하길 바란다. 책임감을 엿 바꿔먹은 사례의 정석을 보여 준다. 

19 thoughts on “Atari: 파멸의 뒷이야기

  1. 죽음의 행진 하니 필리핀에서 일본군에게 잡힌 미군들이 생각나는….

    • 낙하산으로 내려온 MBA들이 개발자들을 잡아서 포로 수용소로 행군을 시키는데…

  2.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한 시장의 리더격인 기업이 뻘짓을 하면 시장 전체가 타격을 받으니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라는 교훈도 배울 수 있겠군요.

    • 그렇죠. 단지 기업 하나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3.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군요.ㅋㅋㅋㅋ

    •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의외로 이런 케이스가 많다고 합니다. MBA 무용론에 결코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사례들을 보다 보면 무용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지는 않더군요.

  4. 그런데 루미큐브가 3.98달러라니.. 몇십년 전이긴 해도 그 개발자는 루미큐브의 가격이 저렴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거잖아요 저는 가게에서 몇만원 주고 구입했는데 흙 ㅠㅠ

    • 아마 가장 싼 모델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플라스틱 상태가 좀 안 좋다던지 그랬겠지요. 그나마 30년 전 이야기구요.

  5. 결국 그렇게 팔리지 않은 ET, 반품된 ET는 지금도 뉴맥시코 사막의 시멘트 아래에서 고이 주무시고 계시지요. 이거 찾으러 다니는 양덕들도 있던데…….

    • 와, 아직도 그러고 있군요. 당시에도 워낙에 전설적인 명성을 지녔는지라, 사막에 묻어 놓은 걸 찾아내서 가져간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워너가 다시 그걸 꺼내다 파쇄해서 묻었다고 하더군요.

  6. 뭘 만들어 본 사람들과 남이 만드는 걸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 예, 안 만 들어본 사람들은 서류에 나와 있는 금액 외엔 잘 세질 못하더군요. 뭐 그게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을 못 본다는 것도 확실히 딱하죠.

  7. 아타리는 파멸했다.그리고 Angry Video Game Nerd(약칭 AVGN)의 제임스 롤프에 의해 두번 파멸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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