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고어핀드 (7) – 컴공과 손오공

* 이 글은 시리즈의 토막글입니다.

저희 과 교수님 중에 L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제 지도교수님이시기도 한데, 우리 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세 가지로 유명합니다.

하나는 유머의 달인.

둘은 훌륭한 연구 성과와 강의1.

셋은 인정 사정 없이 빡센 수업과 과제의 홍수.

…특히 세 번째로 유명합니다.

수업 듣는 이들을 좌절시키신다는 점에서 밥 로스 아저씨와도 비슷합니다: “참 쉽죠? :)”

고어핀드 군도 L 교수님이 강의하시던 과목을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도저히 따라가질 못해서-– 도중에 수강 취소를 해버렸지요. –그저 혼자 스트레스 받아 열폭하는 저를 조금이라도 끌고 가려고 노력하셨던 조교 J박사님께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항상 감사 그리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굽신굽신

지난 겨울 방학, 고어핀드 군은 수강 신청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중도 포기했던 그 수업, 째고 졸업해도 되지만 결국 내 손해니까졸업하기 전에 다시 들어야지 하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과목은 2학기엔 L 교수님이, 1학기엔 H 교수님이 강의하십니다.

무엇보다 H 교수님 강의는 L 교수님 강의만큼 잔혹무비(…)하지 않지요.

고어핀드 군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앗싸!! 이걸로 L 교수님의 마수를 벗어날 수 있겠구나!!

승리감에 도취되어 득의 만면한 미소를 짓는 고어핀드

여기서 또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수강 신청을 하기 전에 지도교수님과 상의를 해서 이런이런 수업을 듣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L 교수님이 제 지도교수님이시기 때문에, 관련 서류에 교수님 서명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 발로 호랑이굴에 기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룰루랄라하면서 서류에 사인을 받으러 갔습니다. 자신 만만하게 교수님께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드디어 교수님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게다가 난 이제 졸업이다!

영원히 끝이다! 자유다! 해방이다!

파리로 입성하는 드골 장군을 환영하는 파리 시민들. http://en.wikipedia.org/wiki/File:Crowds_of_French_patriots_line_the_Champs_Elysees-edit2.jpg

고어군: 교수님, 여기 서류 가져왔습니다.교수님: 응 그래… 여기 이 과목, 누가 강의하시는지는 아니?

고어군: 본래 H 교수님이 맡으셔야 했지만, 올해 안식년이셔서 J 교수님 연구실 박사 과정 분이 시간강사로 오신다고 들었는데요.

교수님: ㅇㅇ 맞아. 하지만, 니가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고어군: ?

교수님: J 교수님이 아니라 우리 연구실 학생이 진행해. ^^

고어군: …

교수님: 강의내용은 내가 하던 거하고 똑같을 거야. ^^

고어군: …

교수님: 물론 과제도 똑같이 나가지. ^^

고어군: …

약 5초간 고어핀드 군의 표정

약 5초후 고어핀드 군의 심정

한줄요약: 튀어봤자 부처님교수님 손바닥 안

…뭐 그래도 아직 죽지 않은 걸 보면, 어떻게든 해 나가고 있는 것 같지 말입니다.

  • 이건 덤: L 교수님이 쓰신 영어강의 관련 칼럼. 일독을 권함.

영어강의, 성균관, 패러데이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2011-03-21]


  1. L 교수님의 수업과 비슷한 강의 자체가 국내 다른 대학에 없다. 심지어 교수님 밑에서 박사 과정 밟은 사람이 옥스퍼드大 컴퓨터공학과에 교수로 임용되어 갔다. 

18 thoughts on “패배의 고어핀드 (7) – 컴공과 손오공

  1. 둘 다 들어봤는데, H선생님 강의도 머리에 쥐 나는 시험에 피토하는 과제가 나옵니다. 차이점이라면 H선생님 과제는 며칠 밤 새우면 할 수 있다는 점, L선생님 과제는 그래도 머리 나쁘면 못 한다는 점이죠. 그리고 시험은 그 반대예요.

    • 음, 전체적으로 얘길 들어 보니까 선배들은 H 교수님 강의 역시 피똥 싼다고 하는 반면 후배들은 H 교수님 강의가 널럴하다고 하네요. 도중에 강의 스타일이 바뀌신 게 아닐지.

  2. H 선생님 강의 시간에 “이런 것도 있어요” 라고 하면 전부 시험에 나온다(…).

    그거 찾아보면 책 한 절(…) ~ 반 권 수준의 지식이 필요함.
    시험에서 백 점 만점에 6x점? 쯤 받았어니 강좌 2등 하던데 (1등은 두둥형이라 흠좀)

    • 그게 사실이라면 H 교수님과 L 교수님은 에어리언 대 프레데터인 것입니까(…)

  3. L 선생님 강의에서 피토하고 H 선생님 강의를 재수강했는데, 숙제고 시험이고 너무 널널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 학기가 유난히 널널했던 거 같기도 하고 ……

  4. “H선생님 과제는 며칠 밤 새우면 할 수 있다는 점, L선생님 과제는 그래도 머리 나쁘면 못 한다는 점이죠”

    매우 심히 공감되는 촌철살인의 한 말씀….

  5. 텍스트큐브에서 작성된 비밀 댓글입니다.

    • 오오.. 역시 당사자가 얘기해주는 게 정확. ㄳㄳ. 옥스포드大 가신 교수님은 박사과정이 아니라 포닥이었나? ;ㅁ;

  6. 음… 안타깝네요. 제가 처음 강의하는 거라 더 잘 가르치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답니다.
    변명을 하자면 우리 교수님 강의 내용이 사실 MIT나 Stanford와 같은 세계적인 학교에서 하는 강의내용에 결코 뒤지지 않기도 해서 쉽게 가르치는데 한계가 있기도 하답니다.

    누누히 이야기 하지만 학점은 잘 줄거에요. 살아만 있어줘요.

    페이스북하면 친구 추가나 ㅎㅎ Yungbum Jung으로 검색하면 나올거에요.

    • 엇, 강사님 여기 와주셨군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강의 잘 듣고 있어요.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해 주셔서 편하게 듣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내용이 원체 어려워서 그렇지…)

      그리고 제가 수업을 드랍한 것은 지난 2학기 얘기구요, 조교 J 박사님은 당시 조교를 맡으셨던 ㅈㅅㄱ 박사님이십니다. :)

  7. 헉 수강신청을 하면서 지도교수 확인을 받아야 하다니… 너무 무섭군.

    그나저나 윗댓글 ㄲㄲㄲㄲ (…) 넌 이중으로 찍혔다!

    • 어차피 버린 몸, 더 나빠질 게 뭐 있겠나 ( –)

      *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이 포스트에 댓글 단 사람은 전부 다 우리 과 사람들이네;;

  8. 이 글을 이제야 봅니다. ㅋㅋㅋ
    저는 2011년에도 박사가 아니었고, 2014년인 지금도 박사가 아닙니다.
    심지어 석사도 아니고요, *고어핀드 석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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