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가 들려주는 교양 이야기
퀴즈: 이게 뭘까요?
본론 들어가기 전에 문제 하나.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묵시록을 보면 저자 요한이 하늘나라의 예배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그는 하늘의 옥좌를 보게 되는데, 그 옥좌 둘레에는 생물 네 마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요한에 따르면:
첫째 생물은 사자와 같았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와 같았으며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의 얼굴과 같았고 네째 생물은 날아 다니는 독수리와 같았습니다. (요한묵시록 4:7)
...라고 한다.자, 그럼 저 생물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의외로 쉽다.
정답은...
...저건 「별자리」1다.
그리고 이 네 별자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사방신에 해당하는, 점성술에 있어 으뜸 별자리들이다.
고대의 천문학과 점성술
우리는 별 관심이 없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하늘의 별자리는 초유의 관심사였다. 당연한 거지만, 그 시대는 농업으로 먹고 산다. 그러면 당장 필요한 게 달력이다. 달력이 있어야 씨를 언제 뿌려야 하는지, 비가 언제 쏟아져 내리는지 알 게 아닌가? 초기 문명이 일어난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서양 점성술이 태동한 것, 해마다 대홍수에 시달리던 고대 이집트의 달력이 현대 달력의 기원이 된 것4은 우연이 아니다. 별자리와 농업과 달력, 이 세 가지는 고대 사회에서 한 세트였다.
자연히 당대에 교양인으로서 행세를 하려면, 별자리를 볼 줄 아는 것은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탈레스가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헛발질해서 구덩이에 빠졌다는 일화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탈레스는 일식을 처음으로 예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계시록에 고대 점성술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다. 모든 글이 그렇듯이, 성서 또한 당시의 관습과 관용어구에 따라 집필되었다. 당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으니, 이 글을 쓴 요한 또한 교육을 잘 받은 교양인이었을 것이다. 이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 학문들을 깊이 공부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걸 공부한 사람들에게 별자리는 기본 상식이다.
교양에 대한 시사점
교양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체로 "당대를 살아가는 '교양 있는 지식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소양"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파트모스 요한의 사례는 교양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하나는 교양이란 곧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환경이 변하면 무엇이 교양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한의 시대 점성술(≒천문학)은 교양인의 기본 소양이었지만 중세 이후 천문학을 교양이라 생각하지 않는5다. 현대에는 충분히 정확한 달력도 있고, 훨씬 발달된 기상 예측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농업이 경제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또 하나는 교양이란 게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양은 현실 - 소위 "먹고 사니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교양이라고 하면 활자가 가득 박힌 두꺼운 책을 연상하기 쉽다. 먹고 사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별자리에 대한 지식이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실제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듯이, 교양은 현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사실, 교양이 지식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고대 중국6에서 교양인이라면 별자리 보는 건 물론이고 활도 잘 쏴야 했다. 당시 전쟁은 전차를 타고 활을 쏘면서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꼭 실용적인 전투 기술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체육적 소양은 교양으로서 요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16세기 유럽의 교양인이라면 당연히 펜싱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했고, 이러한 생각은 20세기까지도 이어졌다. 지금도 소위 영국의 귀족 학교에서 펜싱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사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마하반야 님의 글을 읽고 나서였다. 최근 스티브 잡스가 화제의 중심이 되면서 그가 누누히 강조하는 교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교양을 인문학으로 번역하고, 따라서 수학과 과학은 교양이 아니다 - 이런 식으로 떠들어대는 무리들이 대다수인 것 같아 착잡하다.
개인적으로 저 글의 일독을 권하며, 특히 후반부의 "이런이런 지식들에 어렵다고 느낀다면 당장 지식인 행세 그만 두라."는 부분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우리는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발달해 온 교양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어느 정도 알아야 교양인이냐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필자도 소위 잘나가는 공대 다니고 있지만 Higgs가 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철학과 진화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부끄럽다.
참고문헌
가톨릭 주석 신약성서, 성 요셉 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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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신학적 해석은 조금 달라서, 2세기 이후 이 생물 네 마리는 네 명의 복음사가, 마르코·루가·마태오·요한을 각각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단, 묵시록의 저자 요한이 복음사가 요한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초기 교회의 많은 교부들은 이 책을 쓴 요한이 복음서도 썼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교부들은 여기에 반대하였으며 현대의 연구는 후자의 설을 지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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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혜의 술을 담은 물병을 들고 있는 미소년 가니메데를 가리킨다. 실제로 오래된 점성술 서적에는 물병 대신 사람 얼굴을 그린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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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독수리자리라고도 불렀다. 지금도 별자리 관련 상징들을 잘 찾아보면 독수리를 아직도 쓰고 있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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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달력→고대 로마 율리우스력→현대 그레고리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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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후 5세기까지는 교양으로 취급되었던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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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춘추 시대. ↩
에공-_-;
이런 부탁 드리기 정말로 죄송한데-_-;;
예전부터 참 귀찮게 해드린 것이 너무 많은지라.;
지금 얼떨결에라도 역개루 카페 운영자가 된 지라 그래도 좀 키워야 할 듯 한데.
글좀 컨트롤 씨 브이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진짜…; 그동안에 저 때문에 귀찮은 짓을 많이 하게 되서 부탁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데요-_-;;;;
일단 주소는 http://cafe.naver.com/historygall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_-; 귀찮게 해드린 것이 너무 많아서 미안한데.;
이보시게, 나는 카페 활동 같은 거 안 한다네. ;ㅅ;
하앜하앜 계량의 신, 앨런비옹 아니신가여
…계량의 신?;;
오오 잘나가는 공대생
오오 동기 :)
확실히 교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것 같습니다. 번역작업같이 ‘다른 나라말이니까..일단 그 나라 문화와 교양을 알아야지’라고 생각하기 쉬운쪽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국의 역사같이 ‘우리나라 건데 뭐~’라며 정작 ‘그 시대의 교양’에 대해서 무지한(..이랄까 공부할 생각조차 못한)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면 눈물이 나오게 되더군요.
한국만 하더라도 독립직후와 지금의 사고방식과 상식, 교양이 지금이 100년도 떨어져 있지않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딴판인데, 하물며 수백년이나 그보다 오래전의 것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미국 드라마중 ‘로마’에서 카이사르가 국가의 금괴를 삥땅친 주인공을 무죄방면해주는 장면에서 부하와의 대화가 매우 와닿더군요.
부하:”왜 저런 심각한 죄를 지은 자를 처벌하지 않고 놔주시는 겁니까?”
카이사르:”저 자가 얼마나 많은 위기사항에서 무사히 살아돌아왔는지를 모르는건가? 대단한 권능을 가진 신의 가호를 받고 있음에 틀림없어. 내가 어찌 신의 가호를 받는 자를 건드려 위험을 자초하겠나?”
(기억 나는대로 써서 정확히는 맞지 않을 지 몰라도 대략은 저런 내용이였습니다.)
뜬금없지만 왠지 저 대화만큼은 올림푸스의 신들을 믿던 로마시대의 교양있는 자의 행동으로서는 꽤 올바른것 같아서 적습니다.
예, 저도 그 장면을 아주 인상깊게 보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권력자를 가리키는 당시의 표현 중에 “xxx 신이 귀여워하는 아이.” 혹은 “운이 좋은 xxx”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다신교 사회에서의 도덕 관념은 (정교 분리에, 종교에서도 일신교가 대세가 된 현대를 사는) 우리하고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법 집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확실히 지금하고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와우-. 이 글을 통해서 리버럴 아츠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그리고 묵시록의 저 장면이 의미하는 게 그거였군요. 카톨릭 신자로서 지식 하나 추가하고 갑니다. ^^
이공계이고 역사를 좋아해서 과학사에도 관심이 있고 그래서 ‘중세에 대학에서 뭘 가르쳤는가’는 배운 적이 있는데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오늘날 대학이 취업면허증 발급소…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런 몰인식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 서양에서도 교양이라는 것이 착실하게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니, 아예 그 개념이 제대로 수입되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 교양에 대한 몰이해가 횡행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교양에 대해서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좀 더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차차 블로그에 풀어 보려 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4마리의 생물이 4대 복음사가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고 쓰려고 했지만 역시 주도면밀하시군요. ㅎㅎ
하하, 그 정도는 상식 아니겠습니까. :)
글은 댓글 보고 바로 읽었었는데 지하철이라 적절한 피드백을 못했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어핀드님 블로그 구독하면서 자주 읽었는데 요즘은 리더에 글이 하두 많이 쌓이고 트위터/페북질을 더 많이 해서orz
오, 직접 댓글 남겨주셨군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