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at Skate Summer 2010에서의 김연아 갈라쇼. 그런데 곡명인『Bulletproof』가 왜 '방탄' 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혹시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어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사에 대한 도전: 14세기~16세기

중세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중세의 시작부터가 3세기~8세기로 각기 다르게 잡을 수 있는 데다가, 끝도 15세기~17세기 등 갖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지요. 하지만 대체로 중세 전성기라고 하면, 10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 시기, 유럽 사회를 특징지었던 것은 정치적으로는 봉건 제도, 정신적으로는 기독교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기사들의 집단 돌격 - 충격 전술의 우위가 의심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4세기로 넘어면서 이게 양상이 좀 달라집니다. 기사의 막강한 전투력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거지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슬람권과의 대결 과정에서 연구된 보병 대열의 효율적인 활용법이 유럽 대륙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탓도 있고, 용병 생활로 경험을 쌓은 보병들이 늘어난 것도 여기에 한 몫 했습니다.

Pawn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투사 무기[missile weapon]가 발달했다는 겁니다. 12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에 보급된 쇠뇌[弩, Crossbow]는 각종 개량이 이루어지고 그 수가 늘어나면서 13세기에 이르면 기사 부대를 박살내버릴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갑옷에도 쇠뇌에 대한 방어력이 요구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300년대 이전까지, 유럽의 갑옷은 쇠사슬 셔츠[허버크Hauberk]을 베이스로 이것저것 보조 장비를 착용하는 수준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1300년대 이후 허버크 위에 철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결국은 우리 눈에 익숙한 판금 갑옷[Plate Armor]으로 진화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보병 무기의 강화는 기사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요인이 바로 쇠뇌입니다.

철포와 갑옷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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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Charles V)를 위해 만들어진 권총. 장전 방식은 휠락(wheel-lock)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총기들 중 하나다. 손잡이가 매우 인상적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1500년대를 넘어가면서, 새로 등장한 철포[鐵砲, 혹은 총통銃桶]는 쇠뇌의 자리를 차츰 대체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갑옷의 새로운 경쟁 상대는 철포가 되었지요. 갈수록 공격력이 올라가는데다가 쇠뇌처럼 장전하는 데 힘 쓸 필요도 없다1는 점에서 철포는 갑옷의 무서운 천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갑옷들 역시 충분히 단단해서 철포의 총알을 막아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럼 금속 공학도 없던 시절에 막 만들어진 갑옷이 방탄이라는 걸 어떻게 알까요?

간단합니다.

직접 총알(Bullet)을 쏴서

관통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임(Proof)으로써,

방탄(Bulletproof)인지 확인하는 거죠.

... 뒤집어 말하면, 철포로 쐈는데 부서지지 않는 갑옷이 곧 방탄 갑옷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철포 사용이 확산된 1550년~16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갑옷들 중에는 조금 기묘하게 생긴 갑옷들이 있습니다. 일단 이것들은 굉장히 두껍고 무겁습니다. 방어력을 높여야 하니까 당연한 거겠죠? 그리고 또 하나, 가슴 부분만 있어서 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당연합니다. 이 무거운 걸 계속 입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이것들에는 왼쪽 가슴 언저리에 작고 동그란 흠집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바로 방탄 테스트의 흔적입니다. 직접 총을 쏴서 테스트를 하니까, 총알에 의한 흠집이 남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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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0년~1600년경 만들어진 공성용 흉갑(Siege Cuirass). 공성 작전중에 걸치는 것으로 무게가 11kg이 넘는다! 맨 오른쪽에 있는 흠집이 왼쪽 가슴 부분에 해당한다. 이 갑옷에는 이것 말고도 많은 총탄 자국들이 나 있는데(이 사진만도 2개), 그만큼 착용자의 생명을 여러 번 구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Higgins Armory 소장.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방탄 기능을 위해 갑옷 두께를 늘리는 추세는 1600년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덕분에 이 시기의 갑옷들은 정말 구분하기가 쉽죠 - 철판이 너무 두꺼워서 둔중해 보일 정도거든요. 물론 그만큼 다른 부분의 무게를 덜어야 했기 때문에, 이 갑옷들은 이전의 갑옷들과는 달리 다리 보호구도 없고(이것이 포인트) 말에 마갑도 씌우지 않습니다. 사실, 다리 보호구라는 게 보병이 돌격해 들어간 기사의 다리를 자를 염려 때문에 생긴 것인데 이 시기가 되면 기병들도 웬만해선 다 권총 들고 싸우거든요. '기병' 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이 시기가 되면 더이상 '기사'도 아닙니다.

그나마 이렇게 둔중한 갑옷들도 1650년대를 넘어가면서 완전히 전장에서 퇴출됩니다. 가슴 보호에만 집중하는 가벼운 갑옷의 시대가 오는 것이지요.

※ 투사체가 총알(bullet)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당연히 Arrow-Proof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화살을 쏴서 방어력을 테스트한 경우인데, 오래지 않아 활과 화살이 전장에서 퇴출된 만큼 이 표현 역시 역사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1. 쇠뇌의 공격력이 올라가는 만큼 장전도 힘들어졌기 때문에, 각종 보조 도구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물론 장전 시간도 그만큼 오래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