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틀릿(Gauntlet)의 탄생과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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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갑옷의 역사에서 건틀릿(Gauntlet)의 흔적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250년경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전까지는 따로 장갑 형태로 분리된 손 보호대가 없었습니다. 손 부분이 별도의 보호 없이 드러나 있거나, 갑옷 소매 부분이 벙어리 장갑 모양으로 연장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었죠. 그러던 중 당대 역사가인 Matthew Paris가 자신의 그림에 장갑 형태로 만들어진 손 방어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건틀릿에 대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1330년대에 이르면, 이런 새로운 손목 방어구에 밀린 기존의 방식들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초기형 건틀릿이 표준 장비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죠. 하지만 이 장비는 지금 우리가 게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강철 장갑”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두꺼운 가죽 벙어리 장갑 위에 고래뼈나 철판, 캔버스 천 등을 감아 보강한 보강 장갑이었던 것이지요.

지금의 우리가 상상하는 건틀릿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30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이 때부터 건틀릿의 기본적인 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300년대의 건틀릿. 이것은 1849년, 타넨베르크 성(Castle of Tannenberg)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 성은 1399년 공성전으로 파괴되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처음으로 등장한 건틀릿은 모래시계형 건틀릿(hourglass gauntlet)이라고 불리는데, 위 사진과 같이 모래시계 모양으로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손가락을 방어하는 부분이 없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건틀릿 아래 받쳐 끼는 장갑의 손가락 부분에 장착된 철판이 손가락을 보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 사진의 건틀릿은 상당히 마모가 심합니다만, 그래도 너클 부분이 만들어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1400년대에 이르러 금속 가공 기술이 발달하고 판금 갑옷(plate armor)이 등장하면서, 건틀릿 역시 판금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형식의 건틀릿들은 벙어리형 건틀릿(mitten gauntlet)이라고 합니다. 아래와 같이 손목-손등-손가락의 세 장의 철판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1입니다. 1400년대 초반만 해도 건틀릿의 소맷부리(cuffs)는 둥근 것이 보통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깥쪽이 길어져서 길쭉한 타원 모양이 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팔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 삼국 시대의 갑옷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입니다.)

이 건틀릿 두 벌은 칼키스 섬(Chalcis)에 위치한 베네치아 공화국 요새의 폐허에서 1840년 발견된 것이다. 왼손 건틀릿의 손가락 부분은 유실되었지만, 손목-손등-손가락을 방어하는 건틀릿의 세 부분을 살펴볼 수 있다. 아직 주둥이 부분이 둥글둥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이사이에 있는 구멍은 아래에 받쳐 착용한 장갑과 건틀릿을 고정시키기 위해 끈을 묶을 때 사용한다. 1440년~1450년 경의 것으로 추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이 신형 건틀릿들은 1440년대에 이르면 기존의 모래시계형을 대체합니다. 후대로 갈수록 손가락 굴곡이 살아 있지만, 장식일 뿐이고(…) 실제로는 벙어리 장갑입니다. 갑옷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릅죠, 예(…)

1480년대의 건틀릿. 뾰족하게 튀어나온 소맷부리와 손등의 대각선 홈(flute)가 보인다. 이것들은 이탈리아제 갑옷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일제 건틀릿의 고유의 특징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1500년대로 넘어가면, 건틀릿의 손목과 손가락 부분이 훨씬 정교해집니다. 단순히 한두 장의 철판을 붙여서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장의 철판을 겹쳐서 만드는 거죠. 이 경우 손가락 부분이 좀 더 유동적이 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건틀릿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막시밀리안식 갑옷의 손 부분. 1520년 혹은 그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손가락 부분이 이전보다 더 발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우리가 게임에서 흔히 접하는 손가락이 다 살아 있는 건틀릿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를 넘어서면서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권총이 기병들의 필수 장비로 사용되는데, 기존의 손가락들이 분리되지 않은 건틀릿들은 칼을 쥐는 데는 충분할지 몰라도 권총을 쥐기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들 역시 손가락 바깥쪽만을 보호할 뿐, 손가락 안을 보호하지는 않습니다. 즉, 많은 게임들에서 묘사되는 “강철 장갑”은 건틀릿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죠. 그나마 남아 있던 건틀릿들도 1700년대가 되면 완전히 전장에서 퇴출됩니다.

참고문헌

  • Christopher Gravett & Graham Turner, English Medieval Knight 1200-1300, Osprey, 2002
  • David Edge & John Miles Paddock, Arms & Armor of the Medieval Knight: An Illustrated History of Weaponry in the Middle Ages, Crescent, 1993

  1. 손목과 손등이 일체형으로 된 것을 제외하면, 이것들은 따로따로 분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당대의 초상화나 무덤 조각 등을 보면 건틀릿의 손목 부분만 남아 있는 건 이것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리는 것 자체가 일종의 미술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thoughts on “건틀릿(Gauntlet)의 탄생과 진화

  1. 글 잘 읽었습니다!

    기사들이 날뛰던 시절에 손가락이 분리 가동되는 건틀릿을 만들었다간 내구도가 떨어져서 적이 노리기 제일 좋고 가까운 손가락이 적의 공격에 금세 전부 절단나지 않겠나 싶군요.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건틀릿으로 보는 건 공속+30%에 피,마나 흡수가 붙은…아니 이게 아니고, 이상적인 건틀릿으로 보는 건 가능한 손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건 아무리 좋은 소재가 개발되도 무리겠죠?

    • 빙고! 정확합니다. 손가락을 따로 분리시키면 그만큼 강도가 낮아지기 쉽기 때문에 근접전에서 불리합니다.

      아래 덧글에 또 적었습니다만… 손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손바닥 부분 없이 벙어리 장갑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입니다. 어지간한 소재로는 완전히 손을 덮는 건틀릿을 만들기 힘들 겁니다.

  2. 음… 저는 건틀렛이 칼날을 직접적으로 쥘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 그럴려면 손바닥 부분에 방어판이 있어야 하는데요, 칼을 쥔다는 것 자체가 손바닥 근육을 어느 정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검도의 손목 방어구에도 손바닥 부분은 상당히 부드러운 가죽을 사용할 정도.) 따라서 손바닥 방어판이 있을 수 없고, 자연히 칼날을 직접 쥐지는 못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오해가 게임 덕분에 확산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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