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래 그림은 내가 사람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이다. 첫 번째 영역인 '주관-감성' 영역(A)은 말 그대로 나와 친하게 지내느냐, 이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감정적으로 즐겁냐가 기준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이 영역에서의 평가가 좋다. 하지만 두 번째 영역인 '주관-이성' 영역(B)은 나와 얼마나 생각이나 사고 방식을 공유하느냐가 기준이다.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책을 주로 읽느냐?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문제들 말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혼자서 판단을 내리는 주관의 영역이다. 객관의 영역에서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영역인 '객관-감성'의 영역(C)은 이 사람이 얼마나 대인관계 스킬이 좋으냐에 대한 판단이다. 평소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분위기는 어떠한가? 입을 다물어야 할 때 함부로 말을 내뱉지는 않는가? 뒷담화를 많이 하지는 않는가? 소위 매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영역에서 높게 평가한다. 전통적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신(身)과 언(言)이 여기에 들어간다. 네 번째 영역인 '객관-이성'의 영역(D)은 이 사람이 얼마나 머릿속에 많은 지식과 판단력을 보유하고 사는지, 직업적인 숙련도는 어떠한지가 기준이다. 이 영역은 나 혼자 판단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교차 검증한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서(書)와 판(判)에 해당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2.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떤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숨김 없이 솔직하게 대답을 해 주는데, 그럴 때마다 꼭 추가 질문을 받게 된다. 대략 이런 질문들이다: "그 사람 참 매력적이라면서 좋아하지 않는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그 사람하고 극도로 안 맞는다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의견을 구해 보라고?" 한마디로 내가 한 말이 앞뒤가 안 맞아서 이해가 안 간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진술들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위 영역들은 서로간에 별 상관이 없고, 따라서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라는 판단은 객관-감성 영역(C)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와 왠지 잘 맞지 않는다면(A)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참 매력적이지만, 좋아하지 않는다(=C 영역은 인정하지만, A 영역이 잘 맞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B에 대한 판단이지만 그 사람의 전문적·직업적 판단력을 믿을 만한지에 대한 문제는 D에 대한 문제다. 따라서 "나와 극도로 안 맞지만, 사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같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기준은 가상의 캐릭터를 볼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식: "B, D는 아주 괜찮지만 A는 그럭저럭이고, C는 최악이다."

3.

대체로 나와 친한 사람이면 매력적이고, 생각도 공유하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런 판단 방식이 극도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영역과 또다른 영역을 혼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판단을 그르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사람이라 언제나 냉정할 수도 없고 항상 바른 판단을 내리지도 않지만, 가능하면 사람을 볼 때 이 모든 영역을 다 구분해서 보려고 노력한다. 나와 친해도 생각은 전혀 다를 수도 있고, 내가 죽어라 싫어하지만 특정 분야에 대한 식견은 확실하게 검증된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위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방법에 대해 이런저런 설왕설래가 오가서 한 번 적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