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광주의 정신, 내 생각은…

원문은 요기

역시 김규항씨다. 난 “글 잘쓰고 바른 말 잘하는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는데, (요즘 살짝 맛이 간)유시민 의원이나 계산된 막말을 하는 진중권 씨와 함께 김규항도 여기에 포함된다.

검증된 논객의 잘 써진 글에 내가 뭔가를 덧붙일 필요는 없는 거 같다. 괜히 필요없는 사족만 될 뿐이니까.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썩 잘 쓰여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뭐 대충… 이런 얘기들이다.

“…제가 보기엔 그게 아니라 그들은 진짜로 진심으로 이건희를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은 이건희와 다른 건 이건희보다 돈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기절 초풍할 소리를 한 마디 해야겠다. 내가 아는 운동권 형이 거품을 물더라도 할 수 없다. 두 번 안 얘기하니 똑똑히 들어.

나도 이건희 존경한다.
이 발언 보고 기절할 사람 좀 있을 것이다. 특히 나와 함께 대학 사회에 몸담고 있는 대학생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 내가 왜 이건희 회장을 존경하는지 밝히겠다. 돈이 많으니까? 그런 거 관심없다. 그 정도 돈이 없어도, 멋진 일본도 사서 벽에 걸어둘 수는 있고, eBay에서 레고를 사거나 프라모델, 게임 혹은 책을 사는 데 모자람은 없는걸. 난 멋진 패션이나 여자 친구 데이트 비용하고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물론 그것 때문에 존경한다는 사람 좀 있을 게다.)

  1. 삼성 개혁을 해냈다. 지금의 삼성은 이병철 회장이 만든 것을 이건희 회장이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이 재창조한 거다. 삼성은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도 안 쓰는 싸구려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회사였다. 그룹의 심장이라는 삼성물산은 무사안일과 나태에 빠져 있었고 지금의 합리적인 기업 운영(도덕성 말고…)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회장은 핸드폰을 갖다 소각해 버리거나 불량품이 일정 퍼센테이지를 넘는 제품은 죄다 폐기해 버렸다. 그 결과가 지금의 막강한 삼성이다. 여기엔 삼성 비서실을 통한 탁월한 지휘 능력이 큰 몫을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 작가 홍하상이 쓴 이건희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1. 미래 예측 능력이 탁월하다. 디지털 가전의 시대를 예측했고 플래시 메모리의 시대를 예견했다. 이것이 1과 연관해서 지금의 삼성전자를 만든 걸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아, 이건 부하들이 연구해서 보고한 거라고? 글쎄, 하지만 그걸 취사 선택하고 결정하는 역할은 엄연히 이건희 회장이 하지 않았나? 그 어려운 내용의 보고서를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 능력은 장난 아니다.

  1. 참을성이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이거, 대학생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저 재벌 아버지한테 기업 물려받은 갑부 정도로밖에 안 비칠 테니까. 이병철 회장은 그리 능력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 큰아들과 둘째아들에게는 기업을 물려주지 않았다. 결국 이병철 회장은 셋째 이건희에게 회장직을 물려준다.

재벌가와 같이 보수적인 사회에서, 그런 사람이 삼성이라는 거대한 사회를 바꾸려고 시도했을 때의 그 반발이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마 무지 많이 흔들어댔을 것이고, 핫바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 같으면 사흘도 못 버텼을 거다.

(그래서인지 이건희 회장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무지 좋아한다고 한다. 내 경우는… 음, 오다 노부나가를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1. 나보다 더 훌륭한 독서가이다. 대학생인 나도 한 달에 책 20권 정도밖에 못 본다.(요즘같은 학기중엔 그것도 못 본다.-_-) 이건희 회장은 30권이 가깝게 읽는단다. 내용도 내가 읽는 책 따위는 유치하게 보일 정도일 것이고, 영어 책이건 일본어 책이건 마음대로 읽는단다. 정말 부럽다. 난 언제 그 정도 재주가 되나?

…이런 사람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나? 이렇게나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을?

김규항 정도 되는 사람이 존경의 범주를 지극히 단순화하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좋아, 이건 넘어 가자고. 그럼 다음.

“노동자 착취와 정경유착과 온갖 비리로 부자가 된 아버지를 둔 덕에 부자가 되어선 다시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재산을 제 자식에게 상속하는 사람이 한국이 자랑하는 기업인입니까? 노조조차 만들 수 없는, 노동자들의 위치추적을 하고 협박을 하는 회사가 세계적인 첨단 기업입니까? 그런 인간에게 이 나라의 대표적인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명예 철학 박사학위를 주려고 작전을 벌이고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학생들이 현실을 깨우쳐주었는데도 총장은 엎드려 용서를 빌고 보직교수들은 사퇴서를 내고 수천명의 학생들은 총학생회를 탄핵하는 서명을 하고, 이게 대체 정신병원입니까 대학입니까?”

고대 사태는 나도 뚜껑 열리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철학박사라는,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학위를 주겠다는 대학측의 발상도 꼴사나웠지만 더 엽기적이었던 것은 사태(?)이후에 벌어졌던 추태 때문이었다. 아니, 행사중에 문제가 있어서 유감 표명을 하는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일개 명문 대학의 총장이 보직교수들까지 부록으로 얹어서 아양을 부리는 것은 역겹기까지 하다. 학문의 전당에서 대체 뭐하는 짓이냐?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 내가 결론을 내려 주겠다. 정신병원 맞습니다, 맞고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지나가던 개새끼도 웃을 헛소리인 게 맞다. 노동자는 회사 경영의 파트너이기 때문이고, 무조건 그들의 말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라는 게 아니라 단지 그들의 의견은 경청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 맞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위에서 쓴 대로, 이병철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것만으로 이건희 회장의 현재가 만들어졌다는 투로 말한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리고 첨단 기술 기업의 개념은 노조 탄압이라는 도덕적인 개념과 하등의 상관이 없다. 김규항 씨는 공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이런 건 모르나? 기술적 우위하고 도덕적 우위를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뭐 그럼 할 수 없고.

지금 한국 사람들이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프랑스의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스키를 타는 인간이 과연 철학을 가진 인간입니까?

이건 아무리 봐도 개소리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계속 간직하고 있었던 호감이 이 대목을 읽을 때만은 화가 울컥 치솟았다.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그 이유…?

김규항 씨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더 가지고 산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당신보다 못 가지고 못 즐기는 사람이 당신에게도 “나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책상에 앉아 편하게 쉬고 있는 당신이 과연 철학을 가진 인간입니까?”라고 말해도 순순히 긍정할 거냐구요?

이 부분에 있어서 오해가 좀 많아서 부연 설명 좀 해야겠다. 나의 이 발언에 대해서 “억울하면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라는 말이지?” 혹은 “돈지랄을 옹호하다니 역시 이건희 존경하는 사람 답다” 는 식의 오해가 많은 건 유감이다.

흔히들 이건희 회장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돈지랄” 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 “돈지랄”이 무엇인가? 나는 보통 이 말을 잘 안 쓰지만 일반적으로 “지나친 사치” 라는 뜻으로 통하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지나친 사치”에 대해서 정의할 수 없다는 거다. 명확한 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분명히 이건의 회장의 스키장 빌려 타기는 돈지랄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법정스님처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 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든 사람의 눈에서 보면 어떨까? 평범한 사람이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만화책 한 권을 사는 것,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지나친 사치” 이며 “돈지랄” 로 몰릴 가능성은 언제고 있다. “평범한 사람” 이 이건희 회장을 “돈지랄 한다” 며 비난하면 그 가난하고 힘든 사람도 역시 “평범한 사람” 을 “돈지랄 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거다. 명확한 경계선이라는 건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김규항 씨가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내포한 말 한마디 한 걸 지적했다고 재벌옹호자나 “또라이”로 모는 게 제정신일까? 이 사람들, 방향만 달랐지 군사정권에 토시 하나 달면 빨갱이로 몰아 죽이던 사람이나 위대한 수령님 말씀에 조금 어긋난 생각을 했다고 강제수용소 보내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보인다. 대한민국에는 삼성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는 것도 무엄한 짓으로 비치는 재벌옹호자들과 반자본주의 혁명가밖에는 없는 것일까?

“아무개 아무개는 어렵고 힘드니까 너도 너 즐거운 거 하지 마!” 라고 말하는 것은 개인을 일정 집단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행위일 분이다. 갑자기 “이 가뭄에 농민들 저렇게 힘든데 무슨 놈의 파업이냐”고 빽빽대던 어느 보수 신문의 논설이 생각나는 건 왜지?

…이건희 회장이 프랑스 스키장을 빌려 스키를 타든 말든은 나랑 상관없다. 그건 이 회장 취향일 뿐이다. 내가 게임 좋아하고, 미소녀 월페이퍼를 데스크탑에 올리는 것하고 똑같은 취향일 뿐이다. 칸트의 말대로, 취향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없다. 뭐, 주지육림을 만들면 어때…? 세습하면서 세금이나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

하여간 옥에도 티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 준 글이었다.

Ps>이건희 회장과 삼성에 대한 책은 저 위에 내가 언급한 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영웅시대 방영할 때 여기에 관련된 책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이병철 경영대전은 거의 용비어천가 수준이라 하품만 나오고, 이건희 개혁 10년은 기업 홍보서적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나 더, 삼성의 세습 과정에 대한 협잡과 기업 포인터 구조(?)에 대해서는 단행본으로도 나온 오마이뉴스 특집 기사을 참조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