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갑옷, 흉갑(胸甲)

역사 방면에 있어서 Tv가 미치고 있는 가장 큰 해악을 꼽으라면 사람들이 조선의 군대라고 하면 벙거지에 파란 전포만 달랑 입고 당파만 들고 돌아다니는 줄 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점은 언제까지 개선이 안될 건지 모르겠다. 유럽 일본 모두 졸병들이 (적어도 몇몇은) 갑옷 입고 싸웠는데 조선이라고 해서 병졸들 입는 갑옷이 없긴 왜 없나. 당연히 있지…

조선의 병졸들에게 지급된 흉갑으로 알려진 것은 대략 두 종류가 있다.

첫번째는 지갑(紙甲)이다. 종이로 무슨 갑옷을 만들까 싶기도 한데, 창호지에 기름을 먹여서 수백장을 겹쳐 말리면 비록 종이라고 해도 굉장한 강도를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비교적 양산이 용이하다. 꼭 종이로만 만드는 것은 아니고 비단이나 목면 등으로도 만들 수 있다.

재료의 특성상 현재까지 알려진 유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외에도 중국 남부 등지에서도 사용된 바 있는 방어구다.

지갑의 강점은 투사 병기에 비교적 강력하다는 것이다. 몽골군도 비단을 소재로 한 갑옷을 안에 받쳐 입었다고 전해지는데(정확히 말하면 완성된 비단이 아니라 비단을 만드는 도중에 나온 미완성된 비단이다. 진짜 비단이면 비싸서 못 쓴다.) 이것을 입고 있으면 화살을 맞았을 때 천이 뚫리지 않고 화살촉과 함께 살 속으로 말려 들어간다. 이 때 침착하게 갑옷을 살살 돌려 주면 화살이 쏙 빠져나가게 된다. 아마도 지갑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칼 같은 데는 한 번에 베이지만 초기의 조선군처럼 “적이 다가오기 전에 화살비로 적을 제압” 하는 것이 주 전술이었다면 꽤나 유용했지 싶다.

육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흉갑. 대략 18세기 이후의 물건으로 추정된다.

그 다음이 위 사진에 실린 무쇠통판 갑주다. 검은 색 무명 안에 철판이나 갑옷미늘을 집어넣어서 만드는 갑옷이다.두루마기 형태로 생긴 조선의 다른 갑옷에 비해 특이하게도 조끼 형태를 취하고 있어, 상반신을 집중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갑옷은 불분명한 부분이 대단히 많다.일단 육군사관학교 박물관과 일본 야스쿠니 신사, 고려대 박물관에 각각 한 점씩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희귀한 물건인 데다가 워낙에 희한하게 생겨먹었기 때문에(비슷하게 생긴 유물이 하나도 없다.) 자연히 이 유물은 전문가들의 격론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갑옷은 주방어구로 착용하기엔 너무 작아서 갑옷 안에 받쳐 입는 보조방어구(內甲내갑)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철판의 두께가 충분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주방어구임이 틀림 없다고 맞받았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설이 더 그럴 듯해 보인다.

DC 역사갤러리의 그림장이 퀘엑햏이 그린 조선군 살수 그림. 지방군 병졸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철릭 위에 무쇠통판 갑옷을 입고 있다.

퀘액햏의 조선군 살수 그림 출처

  • 눈치 챌 사람은 다 알았겠지만, 무쇠통판 갑주와 그나마 비슷하게 생긴 물건은 요새 입는 방탄조끼다. 폴리에틸렌 재질이라는 걸 제외하면 정말 똑같이 생겼다.
**레퍼런스**<무기와 방어구 중국편>, 들녘, 2001

<한국의 군사 문화재>, 국방일보, 2004.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