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밀 바사예프의 죽음
1.
체첸 분리독립운동의 기수, 샤밀 바사예프(Shamil Salmanovich Basayev)가 갔다. 향년 41세.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생소하지만, 바사예프는 "카프카스 산맥의 체 게바라" 로 불리는 유명인사다. "러시아의 적 1호" 로도 불린1다. 1991년, 그는 체첸 독립 선언에 자극받은 러시아 정부가 특수부대를 체첸에 파견하자 남러시아의 페티고르스크에서 154명이 탄여객기를 하이재킹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 후 1994년 12월 발발한 체첸 전쟁에서 게릴라들을 이끌고 반러시아 투쟁의선봉에 서 일약 체첸 반군의 지도자로 급상승한다.
러시아 군은 결국 체첸군에게 패했고, 96년 6월에는 휴전 협정을 맺고 군대를 철수시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체첸의 독립을 승인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결국 1999년 러시아는 체첸을 다시 침공했고, 2000년 2월에는 수도 그로즈니가 함락되었다. 샤밀은 가까스로 포위망을 뚫고 남부 산악지역으로 피신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지뢰를 밟았고 한 쪽 발을 잃어버렸다.
발을 잃어버리고도 그가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그는 그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29명이 사망한 2002년의 모스크바 오페라 극장 테러사건과 311명이 사망한 2004년 9월 베슬란인질사건이 그의 작품이다. 이번에 죽은 것도 며칠 뒤 있을 G8 정상회담에 맞춰 테러를 준비하다가 러시아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아서라고 한다.
2.
박노자 교수에 의하면, 체첸 전쟁은 그 기원이 2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783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체첸 침공은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1860년 체첸지역의 인구는 터키 등지로의 피난과 초토화 작업으로 인해 1820년대 초기의 4분의 1로 줄었다. 1944년에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하면서 전체 인구의 30%가 사망하기도 했다.
샤밀 바사예프도 전설적인 체첸 독립의 지도자 이맘 샤밀(Imam Shamil)의 후손이다. 실제로 나는 아직 어렸을 때 방송에서 "러시아 놈들을 믿느니 차라리 악마를 믿겠다." 고 단언하던 샤밀의 모습을 본기억2이 난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그(들)에게 러시아에 대한 증오는 체화된 것으로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안 봐도 짐작이 갔다.
거대한 러시아가 인구 100만도 안되는 소수 민족을 때려잡지 못해 안달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체첸 유전은 일년에 300만t의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데다가, 상당수 송유관이 체첸 땅을 경유한다. 체첸 분리 독립을 허용했다간 다른 소수 민족들도 저마다 독립을 요구할 것이고, 그러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잃는다. 그 결과는 끊임없는 유혈이다. 일본 제국의 식민 지배에서 큰 고통을 받았던 한국인이라면 그들의 고통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
그러면 샤밀은 영웅인가?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그는 엄연히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이다. 그의 손에 죽어간 죄없는 민간인들은 테러 희생자만 천여 명이 넘는다. 게다가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핵무기가 있다면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한 방 터트리겠다." 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위험 천만한 인물이다. 이 발언은 농담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구소련이 붕괴의 와중에 빼돌려져 아프리카 등으로 팔려나간 무기는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 어디서 빼돌려진 핵폭탄 하나 구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러시아 일이라고? 그 핵폭탄이 서울 한복판에서 터질 수도 있다.
실제로 알카에다는 체첸 반군과 연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라크에서 러시아 외교관 4명이 납치되어 살해된 적도 있다. 빈 라덴은 "이슬람을 상대로 벌이는 십자군 전쟁의 책임은 해당국 국민들도 똑같이 져야 한다." 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이라고 해서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4.
샤밀 바사예프는 영웅인가? 아니면 악명높은 테러리스트인가?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샤밀 바사예프의 투쟁에는 어쨌든 이유가 있다. 그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해치는 테러라는 방식을 택하긴 했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체첸의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가족 이웃 형제가 계속 죽어나가는 마당에 그냥 있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용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체첸 반군 등의 요구 조건을 함부로 들어 주었다간 전세계에서 비슷한 류의 요구가 꼬리를 물 것이다. 그것을 다 들어 줄 것인가? 그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테러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간 민간인들은 어떻게 하는가?
이 골치 아픈 문제를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 모르는 척 하는 것 뿐이다. "어쨌든 테러는 용인할 수 없다." 참으로 편리한 양비론이다. "결론을 내기가 귀찮다.(혹은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다)" 로 들리는 것은 나뿐인가. 사실, 지극히 원론적인 명제는 풀이하자면 "이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라는 의미에 가깝다. 말하는 사람을 빼고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다.
샤밀 바사예프가 간 지 벌써 1년이 넘었네요. ^^;
그런 의미에서 정말 시간 참 잘 갑니다 ^^;
텍스트큐브에서 작성된 비밀 댓글입니다.
예,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