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부의 성공담으로서는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CEO의 성공담으로는...

<나는 이기는 게임만 한다>는 잘 알려진 이수영 사장1의 자서전이다. 그녀는 경영을 맡았던 게임회사 (주)웹젠이 코스닥에 입성하면서 500억 갑부가 되었기 때문에 게임에 익숙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유명하다. 이 책은 그 이수영 사장의 반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태생부터가 꽤나 센세이셔널한 책이다. 실제로 잘 팔리는 모양인지, 대형 서점에서도 상당히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이길 수밖에 없었던 성공 노하우" 처럼 거창한 문구를 붙일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수영 사장이 의미하는 '게임' 이 어떤 의미가 되든 말이다.

게임 이야기는 없다.

이수영 사장의 성공하는 키워드는 게임이다. 그녀는 온라인 게임회사 웹젠의 성공으로 거부를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책 제목에 "게임" 이 들어가고, 그녀 이야기에서 "게임" 이라는 소재가 강조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나 또한 게임 시장2에 대한 그녀의 시각을 약간이나마 살펴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이 책을 집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보면 그러한 기대가 얼마나 야무진 착각인지 알게 된다.

이 책에 게임 이야기는 없다. 거의 전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심지어 그녀는 본문에서 "게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pp.88)" 고 스스로 밝힌다. 이쯤 되고 보면 세계로 뻗어나가는 주식회사 웹젠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아마 빌 게이츠가 프로그래밍을 모른다고 해도 이만큼 황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나는 그저 잘 팔았을 뿐(pp.88)" 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팔아서 돈을 만들어 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고, 특히 PC방 마케팅에 대한 부분3을 읽다 보면 유통 채널을 구축하기 위한 저자의 피나는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애시당초 상품의 특성과 관련없는 판매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도 게임과 같은 문화 상품에서 말이다. PC방 마케팅이 중요한 이유,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이유도 온라인 게임의 특성4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걸 모르고 잘 팔았다고 한다. 이건 겸손을 떠는 건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가? 겸손을 떠는 거라면 성공 노하우를 조금이나마 듣고 싶은 독자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이고, 진짜 모르는 거라면 이게 노하우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어떻게 됐든, 이 책에서 "온라인 게임" 혹은 "콘텐츠"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경영 이야기도 '조금'밖에 없다.

그럼 그녀의 게임은 비즈니스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그나마 중국에 진출할 때 라이센스 방식이 아니라 합작법인 방식을 고집한 이유5, 부채 없이 투자금만으로 웹젠의 자본금을 조달한 이유6, 국내 벤처 투자와 엔젤투자자에 대한 생각 등이 어울려서 훌륭한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부분도 결과적으로 함량 미달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책이 워낙에 얄팍하다보니, 애시당초 내용을 밀어넣기엔 자리부터가 모자라는 탓이다.

결국 이 책에서 남는 게임은 권력게임과 머니게임밖에 없다. "한 달에 천만 원씩 벌었으면 좋겠다.", "더 큰 부자가 되고 싶다." 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 초반7부터 말이다. 실제로 이 책의 상당 부분에서 권력게임에 져서 웹젠의 대표에서 물러나게 된 것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결국 권력/머니 게임에서 패배한 셈이다. 그러니 그녀의 "이기는 게임만" 의 노하우는 여기에도 없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다 뒤져봐도 "성공 노하우(의 실마리)" 따위는 그 행적이 묘연하다.

이 책의 정체는 단순 에세이집?

틀림없이 이수영 사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중학생 시절 카메라 하나를 가지고 깊숙이 파고들었던 호기심이나, 컨설팅 업무를 이해하기 위해 회계 학원을 다니는 등의 치밀함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책에 대해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그저 성공담 에세이집일 뿐이고, 게임 따위는 흥미를 위한 약간의 소재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녀가 살아 온 이야기나 돈에 대한 철학, 결혼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지만, 크게 영양가있다고 하기엔 힘들다. 내가 이 책에 울화통을 터트리는 이유는, 바로 겉보기에 비해 형편 없는 영양가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중에 흘러넘치는 또 하나의 성공담이 아니다. 성공의 원인은 무엇이고 또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이다. 차라리 웹젠의 개발자들이 안심하고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저자가 어떻게 노력했으며 또 어떻게 되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책을 썼으면 어땠을까, 훨씬 값진 기록이 되지 않았을까?

예언 하나

어쨌든 이 책을 읽고 하나 건진 것은 있다. "온라인 게임의 신화를 창조했다는" 그녀는 게임이 뭔지, 인터넷 컨텐츠가 뭔지 잘 모른다8는 것. 그리고 이수영 사장은 현재 다른 회사의 CEO를 맡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좀 부정적이다.

ps) Masters of DOOM 보고 싶은데,그 두꺼운(게다가 영자인) 책 읽을 시간이 없다. -_-..


  1. 본명 이은숙. 

  2. 혹은 인터넷 컨텐츠 시장. 

  3. pp.131. 

  4. 인터넷 회선이 필요하다는 하드웨어적 특성이든, 이용자들의 행동 패턴과 같은 비하드웨어적 특성이든. 

  5. pp.141. 

  6. pp.164. 

  7. pp.29. 

  8. 적어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