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 개발자 라프 코스터는 자신의 저서 에서 "게임이 왜 재미있는가" 에 대해 흥미로운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뇌과학 이론을 인용하여 "재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람의 뇌란 각종 패턴을 인식하여 자신의 기억 체계로 흡수하는 경향이 있으며, 재미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책 읽어보면 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해하기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대나무 칼로 싸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1 이 때 상대방의 머리·손목 등 점수로 인정되는 부위를 정확하게 가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죽도는 정확하게 잡고 왼손으로 크게크게 휘둘러야지, 상대방을 한 번에 가격할 정도의 거리까지 재빨리 좁혀 들어가야지, 상대방에게 중심선 뺏기면 안되지, 자신 있는 동작으로 상대방 기죽여야지...

하지만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많은 활동들을 다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처음엔 잘 안되지만 수도 없이 연습하는 사이 이 많은 패턴들은 뇌 속에 흡수되어, 무의식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운동능력 0의 개폐인도 2년 넘게 하면, 왼손으로 칼 휘두르는 걸 흉내낼 정도는 된다.(쥐꼬리 다섯 개 만큼.)

의미불명(...)

사실, 인간의 행동 중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이것을 학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이 학습 = 패턴의 인식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뇌는 이 순간 엔돌핀의 분출로 인간에게 쾌감을 느끼게 하여 보상을 해 준다. 라프 코스터에 의하면, 재미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패턴의 흡수로 인해 얻어지는 쾌감".

정리하자면, 게임의 재미란 결국 "게이머의 뇌가 게임의 패턴을 흡수함으로써 얻어지는 쾌감"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게임이 가지는 패턴이 너무나도 복잡하다면, 게이머의 뇌는 이것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게임이 가지는 패턴이 너무나도 단순하다면, 게이머는 (잘하든 못하든) 곧 흥미를 잃게 된다. 머릿속에 흡수될 패턴이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되니까.

2.

올 상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던 SD건담 캡슐파이터(이하 SDGO)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올 2월 오픈 베타테스트2를 시작한 게임이 제대로 유료화 하기도 전에 유저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게임트릭스 PC방 이용순위에서 20위를 넘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SDGO 하는 사람 정말 많이 없어졌네." 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건담이라는 다이너마이트급 컨텐츠를 사용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성적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는 라프 코스터의 게임론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SDGO에 현재 구현되어 있는 게임플레이는 "SD건담 뽑아다 레벨 올려서 더 좋은 기체 합성하는 것" 뿐이다. 라프 코스터 식으로 말하자면, "패턴이 너무 단순한 것" 정도 될 것이다. 안 그래도 SDGO는 캐주얼 게임을 표방하는지라, 게임 플레이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게이머가 게임의 패턴을 빨리 흡수할 수밖에 없다.

대세는 관광이다!!

여기에는 SDGO의 게임 시스템이 자충수를 두기까지도 했다. 이런 게임 시스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더 강한 기체를 만듦으로써 얻어지는 성취감 정도일 텐데, 캡슐파이터는 말 그대로 가챠폰 머신에서 SD건담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애써 POINT를 벌어서 캡슐을 뽑아도 자신에게 필요한 SD건담이 나올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사실 게임의 컨셉 자체가 컨셉인지라, 가챠폰 머신에서 캡슐을 뽑는다는 컨셉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벌어들인 POINT가 전혀 엉뚱한 기체를 사는 데 소모되었을 때,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게이머의 허탈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기체를 손에 얻음으로써 얻는 성취감밖에 없는 게임에서 이 성취감마저 반토막난다면...?

하나만 더 뽑으면...! 이무기가 용이 되는...!

그런데 SDGO의 패치 내역을 잘 살펴보면 이러한 상황과는 정 반대였던 것 같다. SDGO의 업데이트는 게임 시스템 상의 버그 Fix3 아니면 게임의 양적인 측면4을 늘리는 것이었다. 게임에 새로운 패턴을 더하는 업데이트는, 단 한번도 없었다.

랜덤하게 나오는 기체 덕분에 성취감이 반토막나는 사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기껏해야 계급이 올라갈 때 POINT를 조금씩 더 주는 것 정도로 결정이 났다. 이것도 기껏해야 캡슐을 다섯 번밖에 못 뽑기 때문에 언 발에 오줌 누기도 안 될 게다. 이렇게 되면 게이머들 입에서 "할 것이 없다. 지겹다." 아니면 "노가다성이 너무 강해요" 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5

3.

유닛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좀 더 일찍 업데이트 되었다면, 게이머들에게 "더 좋은 기체를 얻기 위해 열심히 레벨업하셈" 말고도 다양한 Mission을 제시할 수 있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wow의 레이드나 던전파이터처럼 게이머들이 함께 협동해서 수행할 수 있는 게임 모드가 있었더라면 함께 게임을 즐기는 클랜이 양산되지 않았을까?6

양적인 측면을 늘리는 건 나중에 하고, 일단은 다양한 놀거리를 마련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분노의 검을 받아랏!!

게임의 볼륨도 유저들이 충분히 있을 때 소용이 있다. 소프트맥스는 유료화를 진행하면서 업데이트할 계획이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오픈 베타 테스트는 이미 정식 서비스다. 이는 어설퍼도 기본적인 기능은 전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명색이 정식 서비스인데 "모자라는 부분은 앞으로 업데이트할께요" 라는 말에 남아 있을 유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아직 게임을 하고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그런 쪽으로 신경을 더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유닛 커스터마이징이 어떻게 구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에이스 레벨 이상 되는 기체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는 식으로 구현되면 그건 정말 자살 행위다. 어느 천년에 기체를 업그레이드 하냐? 차라리 기체 레벨에 따라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범위에 제한을 둠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2. 이번에 업데이트된 오퍼레이터, 가격에 비해 메리트가 너무 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돈 내고 하는 건데, 좀 더 화끈하게 보상할 생각은 없는지...?


  1. 지극히 편향된 예시라고 느껴지신다면 그건 순전히 착각에 의한 것일 뿐입니다[...] 

  2. 오픈 베타라고 쓰고 정식 서비스라고 읽는다. 

  3. 대표적인 것으로 "양민학살" 이라고 불리는 문제가 있다. 고수 유저들끼리 방에서 미리 대기하다가 빠른 시작으로 들어오는 하수 유저들을 때려잡는 문제인데, 이렇게 되면 하수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고수들이 자리잡고 있는 방을 꺼리기 때문에 사람 모아서 게임 스타트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수정되었다. 

  4. 새로운 기체 추가, 맵 추가 등등. 

  5. SDGO에 등을 돌린 게이머들에게 "왜 이 게임을 접었어요?" 라고 묻자, 한결같이 비슷한 대답이 나오더라는 -_-; 

  6. 여기에 걸 만한 떡밥으로는 SD건담을 꾸미기 위해 쓸 수 있는 레어한 악세서리나 1만 POINT 뭐 이런 게 있겠다. "난 아무개 던전 클리어했어요" 라는 악세서리를 떡하니 붙이고 다니면... 정말 뽀대 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