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의 전사들 #4 – 중장기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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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봐 가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투구 - 종장판주
위 일러스트의 병사가 쓰고 있는 투구를 종장판주라고 합니다. 초중기 고구려군이 가장 많이 사용한 투구인 종장판주는 말 그대로 위아래로(종縱) 길다란(장長) 철판(판版)을 엮어 만든 투구(주胄) 되겠습니다. 철판이 S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종장판주를 특별히 일컬어 만곡종장판주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길다란 철판을 엮어 투구를 만들면 자연히 머리 꼭대기 부분이 비게 되는데, 이 부분을 막아 주는 철판을 복발이라고 합니다. 다만 위 일러스트에는 복발이 그려져 있지 않군요. 복발 위에는 털장식을 달았는데, 고대 로마군의 투구를 연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위 그림에는 투구 아래 얼굴을 보호하는 볼가리개가 묘사되어 있지만, 이마 위에 튀어나와 있는 작은 챙이 - 수미부가리개 - 는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전투중에 조금 눈이 부셨을 것 같습니다.
갑옷 - 찰갑
일정한 크기의 작은 철판을 가죽끈으로 꿰어 가로로 연결한 다음 다시 세로로 엮어 상하 유동성을 가지도록한 갑옷을 찰갑(札甲)이라고 합니다. 유동성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말위에서도 불편함이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벽화에 등장하는 고구려 중장기병들은 대부분 찰갑을 착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고구려군의 주된 무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병은 하반신 부분을 보병으로부터 공격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리에도 바지 모양의 찰갑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찰갑 외에도 다양한 갑옷 부속물을 사용되었는데, 위 일러스트의 중장기병은 목을 보호하는 경갑(頸甲)과 팔목 부위를 보호하는 굉갑(肱甲)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마갑
말에 씌우는 마갑(구장개具裝鎧)은 크게 말투구와 몸통 갑옷으로 나뉘어지는데, 고분 벽화나 중국 북부의 출토품으로 보아 몸통 갑옷은 역시 찰갑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마갑의 뒤쪽에는 깃털과 같은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 장식품이 달려 있었는데(아래 사진 참조), 이것은 동시대의 중국 마갑에 대한 묘사에서도 확인됩니다. 단순히 장식품이었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부대 소속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빨간색은 1중대, 검은색은 2중대.. 뭐 이런 식으로.)
딱히 증거는 없지만 고구려 중장기병들이 100% 쇠로 된 갑옷(마갑이든, 사람 갑옷이든)을 장비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갑옷은 아주 귀중한 물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부 정예병만이 완전무장을 갖추었을 뿐, 무장 상태가 빈약한 상당수는 가죽을 옻칠해서 만든 가죽 찰갑을 사용했거나, 말의 앞부분만을 가리는 부분적인 갑옷을 착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더 현실에 가까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인용한 통구 12호분 벽화의 중장기병 역시 말투구만 장착했을 뿐, 말 몸체에는 아무런 갑옷을 걸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갑은 엄청나게 무거운 물건이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30kg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연히 돌격하는 중장기병의 속도는 기병치고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그래도 전력질주하면 시속 30~40km는 거뜬합니다만.) 따라서 중세 기사의 예를 볼 때, 적 보병 대열에 어느 정도 접근한 다음 연달아 질주하는 차륜전법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밀집 대형을 이룬 저 엄청난 질량이 굉장한 속도로 부딫히면 웬만한 보병대열 따위는 그냥 튕겨져 나갔겠죠.
주무기 - 삭
삭(矛肖 - 한국에 없는 한자임.)이란 동양의 기병들이 사용하는 장병기를 가리키는 말로, 서양 기사들의 랜스Lance에 해당합니다. 고구려는 초기부터 모(矛)1를 주된 장병기로 사용했다는 점이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되며, 중장기병 전술의 유행에 따라 기병용 모가 삭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도 삭은 인기 있는 기병용 무기였습니다.
4~6미터에 달하는 길이를 제외하면 일반 보병의 모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병장기인데,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는 끝이 양쪽으로 갈라진 삭도 보입니다.
보조무기 - 직도(直刀)
중장기병은 틀림없이 강력한 병종입니다만, 밀집 대형을 이룬 보병 방진에 맞딱뜨리거나 하면 전투력은 크게 반감됩니다. 막대한 운동량으로 보병 대열을 날려버리기는커녕 흡사 정체 상태의 고속도로마냥 엉켜 버리기 십상인데, 이렇게 되면 4m가 넘는 삭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2 이런 때 칼은 유용한 무기가 됩니다.
외날 도(刀)가 양날 검(劍)을 밀어내고 단병기의 주종을 이루게 된 것은 중국 한나라 때 기병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이전에 쓰이던 양날 검은 찌르기에는 유용했지만, 상대방을 내리쳐서 벨 경우에는 칼이 부러질 위험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두터운 등을 지닌 외날 도가 기병의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이 시기에도 창을 놓친 기병이 칼로 내리쳐서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고구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손잡이 끝에 동그란 고리가 달린 환두대도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칼날이 굽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직도로 분류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인용한 통구 12호분 벽화에서 볼 수 있듯, 직도는 일기토에서 패배시킨 적장의 머리를 벨 때에도 유용한 무기였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것은 칼을 차는 방식입니다. 허리띠에 칼집을 끼워서 찰 경우, 말을 타는 도중에 쉽게 빠져버리거든요. 따라서 다른 방법으로 칼을 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래는 민족 기록화를 확대한 것입니다. 완전한 고증은 아닙니다만, 칼을 차는 부분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칼을 끈으로 묶어서 차는 방식은 고대 일본의 무사들에게도 보이는 방식입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아래 그림과 비슷하게 칼을 찼으리라 생각됩니다.
- 참고: 조선 시대의 도검 패용법
잘 보고 갑니다!! 역시 재밌어요!
여러 모로 모자란 포스트에 과찬이십니다 :D
환두대도 칼집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환두대도의 직계 후손이랄 환도의 경우에 끈으로 묶어 매는 것으로 봐서 환두대도도 환도처럼 끈으로 묶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죠… 일본 쪽도 환두대도 같은 칼은 끈으로 매서 차더라구요. 아마 환도의 띠돈같은 장치는 없었어도 끈으로 이리저리 묶음으로서 비슷한 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럼 화살통은 어떻게 차는건가요?
아 그리고 시복이 저 시대에도 있나요?
시복이 있었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만, 저렇게 우수수 떨어지게 화살통을 차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용총 수렵도를 보면 화살통 역시 조선시대와 비슷하게 옆으로 차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야후의 제 블로그로 출처를 밝히고 모셔가서 다시 읽어보며 공부 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