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의 전사들 #3 – 중장기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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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기병 전술
북방의 유목민들은 전통적으로 기마궁수 전술을 애용해 왔습니다.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것을 기사(騎射)라고 하는데, 이 기사라는 것은 유목민의 장기입니다. 기사는 말타는 능력과 활을 쏘는 능력이 모두 필요한데, 목축 생활을 하면서 간간이 사냥까지 해줘야 하는 유목민의 특성상 이 능력은 정주민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북방 변경 지역을 기습하여 약탈하는 유목민들은 언제나 중화 통일 왕조의 골칫거리였습니다. 발이 느린 보병은 결코 발빠른 기마궁수를 제압할 수 없기 때문에, 중원의 군대는 장거리 병기를 강화시켜 경무장한 기마궁수들을 사살하는 방법을 발달시켰습니다. 사정 거리가 길고 강력한 쇠뇌(노)나 연노와 같은 무기로 무장한 부대를 편성함으로써 북방의 강력한 기병들을 격퇴하는 방법이 이미 전국 시대 초기(BC 5세기)에 개발되었습니다. 삼국 시대, 제갈공명이 이끄는 촉한군은 위나라의 강력한 기병(위나라는 흉노, 강족과 같은 이민족들에게서 기병을 보급받을 수 있었습니다.)에 맞서기 위해 연노로 무장한 부대를 편성하기도 합니다.
투사 병기의 발달은 기병 방어구의 발달을 낳았습니다. 후한 말기에 이르러서 중장기병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때만 해도 특수 부대일 뿐, 잘 사용되는 병종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200년 원소와 조조가 맞붙은 관도대전에서 원소군 기병은 1만 명이나 되었지만, 그 중 중장기병은 300여기에 불과했을 뿐이고 조조군은 10기도 안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호 십육국 시대가 열리고 유목민들이 중원 땅에 자리잡게 되자, 중장기병의 규모는 급팽창하기 시작합니다.
기본적으로 유목민들은 약탈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여차하면 흩어져서 도망쳐버리고 말지 굳이 기동성을 희생해 가면서 말에 무거운 갑옷을 씌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원에 자리잡은 유목민들이 영토 다툼을 하게 되면서, 기마궁수들은 노의 공격력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말과 사람에 갑옷을 씌워 보병 대열을 부수는 방법이 유행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중장기병은 군대의 핵심 전력으로 급부상합니다. 역사서 은 당시 전쟁에 대하 기록하면서, 갑옷 입은 말을 얼마나 노획했느냐가 전투의 성과를 묘사하는 중요한 척도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중장기병에 대해 가장 오래된 자료는 357년경 만들어진 황해도의 고구려 고분(안악 3호분)이며, 대략 390년경에 그린 듯한 운남성(중국 남서쪽 끝) 고분 그림에 중장기병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중국 전역에 보급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로 중장기병을 묘사한 유물들이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전파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중국 근방에서 중장기병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전술을 고안해 낸 것은 중국 동북지방의 유목민(특히 선비족)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고구려의 중장기병
고구려에서 중장기병이 언제 등장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240년, 요동지역을 다스리던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毌丘儉)을 패배시킨 동천왕이 철기 오천을 이끌고 추격하다 위나라 군대의 역습을 당하여 대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철기"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예 기병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갑옷을 입은 기병을 의미하는 것인지, 말까지 갑옷을 입힌 중장기병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좀 더 확실하게 중장기병의 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한 황해도 안악 3호분의 벽화입니다. 여기에 중장기병이 묘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357년에는 고구려에 중장기병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 주변의 종족들 중 가장 먼저 중장기병을 보유한 것이 확인되는 종족은 선비족의 일파인 단선비입니다.(312년 중원을 장악하고 있던 유목민인 갈족과의 전쟁에 5천 명의 중장기병을 투입한 것이 확인됩니다.) 3세기 말 이래 단선비·우문 선비는 요서 지역을 배경으로 모용 선비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또 319년 이후 모용 선비(전연前燕)의 세력이 급팽창하는 것으로 보아 모용 선비는 단족을 통해 중장기병을 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는 전연과의 전쟁에서 중장기병을 흉내내어 도입했을 수도 있고, 330년 이후 중국 북동부을 장악한 후조(後趙)를 통해 중장기병을 도입했을 수도 있습니다.(후조는 전연과 사이가 나빠 338년에는 고구려에 군량 30만곡을 보내 전연 협공을 준비하기까지 합니다.)
중장기병의 무장과 갑주
고대~중세까지 중장기병이란 것은(기사를 포함해서) 정말 탱크라는게 적합한 표현인 것 같음; 인간 + 말의 무게 + 장갑의 무게(…)가 빠른 속도로 뛰어온다는걸 전장에서 보면 압박감이 무시무시할 것 같다;;
ps. 텍스트 큐브의 openID 로그인 기능 무지 좋아보인다
뭐 중기병의 컨셉 자체가 본래 그런 것이고, 그것이 1차 대전 이후 기계화된 기병 = 탱크로 이어져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죠.(영어로는 기갑부대나 기병대나 모두 cavalry라고 하듯.) 화기가 발달한 지금도 대전차포를 들고 적 전차를 잡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다고 하는데 당시 중기병의 정면돌격을 받아내야 했던 보병들이 감내해야 했던 공포는 상상이 안갑니다.
…OpenID 만세.
관구검의 관은 毌이에요.
아 이런이런 ㅠㅜ 또 오타를 내고 말았네요. 수정했습니다. 그런데 일념 형님은 삼국지 매니아신가 봐요? ㅎㅎㅎ
이상하네요… 왜 한RSS에 새로운 글이 나오지 않고 넘어가 버리는지… 딴거 써야하나…
뭐 암튼… 혹시 중장기병의 지구력에 관한 자료가 있으신가요? 전부터 궁금하기는 했는데 그쪽 자료는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중장기병이 전력을 다해 돌파할 수 있는 (파괴력을 낼 수 있는)거리라든가 중장기병의 이동 같은거 말이죠.
예를들어 전차는 효율이 참 더러워서(?)열차나 다른 운송수단을 사용하잖아요 그렇다면 중장기병도 그런 방식을 거치는지 아니면 그대로 움직이는지 하는 것들에 대한 내용말이죠.
혹시 맨엣암즈에 보면 나올란가요….?
그 두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 나옵니다. :D
전연은 모용선비고 오히려 우문선비는 전연의 적이었을텐데요 ㅡ.ㅡ;;
전연의 왕실성은 모용씨인게 확실한거로 알고 있고요
예, 모용 선비는 나라 이름을 정할 때 연(燕)을 썼고, 그에 따라 전연, 후연, 북연, 남연의 국호가 있습니다. 정신없이 쓰다가 오타가 났는데, 네이버 카페에 올린 것은 수정했습니다만 블로그 원문은 미처 손보지 못했습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동천왕대 관구검과의 싸움에서 철기는 중장기병일 가능성은 분명히 있어 보입니다-
마갑이라고 뭐 꼭 말 전체를 무장시킬 필요는 없고, 초기형 마갑은 말의 슴가(…)만 가리는 정도였으니까요-
관도대전때 마갑이 슴가(…)만 가리는 마갑이라고 들은 듯 한데 출처는 까리하네요-_-;
1. 말의 가슴 부분만 가려도 중장기병이라고 하는 건 맞습니다. 바로 다음 회에서 제가 적은 겁니다만, 아마 비용 문제로 인해 풀세트 마갑을 갖추는 것은 어지간히 힘들었을 겁니다. 가죽 마갑을 장비했거나, 약식으로 가슴받이만 한 갑옷을 장비했겠죠.
2. 학계의 분위기는 “중장기병이 아니라 정예기병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보는 게 대세인 것 같습니다. 고구려 혼자서만 거의 100여년을 앞선 병종을 그것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상당히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나라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병종을 대규모로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아무래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보니 저 역시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가 중장기병을 그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면, 근방의 다른 나라들도 금방 중장기병을 도입했겠죠.(중국 전토로 전파되는 데 100년도 안 걸리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세요.)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저도 개인적으로 동천왕대의 개마기병은 사실이라기 보다는 가능성정도로 보고 있습니다-_-a
제가 알기로도 중국에서 개마기병의 첫 등장은 단선비의 전투에서 나온것이니까요-
확실히 60여년의 시간차는 길긴 기니까, 아무래도 신뢰도가 낮긴 낮죠-
개인적으로 고구려가 극초반에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긴 보는데(유물로 나타나는 시기가 등자든 개마무사든 동아시아에서 거의 최초죠; 뭐 벽화가 유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안습입니다만;)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천왕대의 기사는 역시 가능성정도로 볼 정도이긴 합니다-
예. 저 역시 고구려는 당대 국가들 중 거의 최초로 중장기병 시스템을 도입한 국가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동천왕 때의 철기 기사는, 고구려가 초기부터 기병 전력에 꽤나 신경을 썼다는 반증 정도로 읽을 수 있겠죠 – 약탈 전쟁을 수행하려면 발빠른 기병이 필요했을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동천왕 시기의 철기에서 중장기병으로의 변화는 꽤나 흥미롭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 퍼 갑니다…
어디로 퍼가셨는지?
우와 대단해요!
우째 퍼갑니까?
음? 긁어다 copy & paste 하면 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