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의 전사들 #2 – 고대의 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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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자료
고구려의 병종구성과 무기체계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한 문헌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다만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부스러기(?)들이 이리저리 남아 있을 뿐인데, 이들을 살펴봄으로써 고구려군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고구려 초기의 무기 체계를 알려 주는 사서로는 진(晋)나라 초기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이라는 역사서가 있습니다. 이 책은 현재 현존하지 않으나 진수의 등의 역사서에 인용되어 그 내용이 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고구려 초기 활, 모, 칼, 갑옷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36년 편찬된 역사책인 에는 "고구려에서 사용되는 병장기에는 갑옷, 쇠뇌(노弩), 활, 극, 삭, 모, 연이 있다." 고 전하여, 고구려 중기 이후 병장기가 크게 발전하였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 극, 삭, 모, 연은 장병기의 일종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창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 외에도 간접적인 언급을 더 찾을 수 있습니다. 대개 전쟁의 기술이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고, 따라서 지정학적 위치에 의한 차이는 있어도 주변 국가들끼리는 비슷비슷하게 발전하는 법입니다. 상대방이 좋은 전쟁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 스스로도 갖추고 싶어하기 마련이니까요.
4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중장기병을 주축으로 한 전투 시스템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고구려 멸망 이후까지도 약간의 운용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동일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군대를 살펴보면 고구려군의 모습을 되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고분 벽화
고구려군의 모습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고분벽화입니다. 고구려인 스스로가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신뢰성이 높은 자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분 벽화에도 종류가 여럿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행렬도(圖), 전투도, 무사도, 수문장도입니다. 고구려 고분의 행렬도는 정규군의 행렬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무장 상태나 병종 구성에 대한 가장 신뢰성 높은 증언입니다. 비록 평양 지역에 10개밖에 존재하지 않고 그나마 훼손이 심해 알아보기 어렵지만, 황해도 안악 3호 고분1에 그려진 대행렬도는 아직도 고구려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전투도나 무사도의 경우 행렬도만큼 다양한 병종구성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덤의 주인이 살아 생전 세웠던 전공이나 신분이 높은 무사를 그렸을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고구려 중장기병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반면 수문장도는 무덤에 묻힌 사람을 지키는 존재인 만큼 중장보병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
마지막으로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가장 좋은 자료는 고구려인 스스로가 남긴 흔적들인데, 의외로 이 경우는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백제나 신라 · 가야의 고분에서 부장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는 정반대로 고구려 고분에서는 별다른 부장품(특히 무구)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쓰던 물건을 장례식장에 쌓아 두고 사람들에게 가져가라고 한다는 고구려인 특유의 장례 풍습(사족: 이것은 수서 고려전의 기록인데, 실제로 고구려 고분에서는 무기나 갑주가 거의 출토되지 않습니다.)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고구려의 무기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서울 아차산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5세기 중반, 한강 유역의 패권을 놓고 백제와 치열하게 다툰 고구려는 한강 유역에 전진 기지들을 설치했고, 그 중 하나가 아차산에 설치된 요새(이런 작은 요새를 보루성保壘城이라고 합니다.)입니다. 이 요새에는 꽤나 상급 부대가 주둔한 듯 취사반, 내무반, 연병장, 지휘소 등이 통채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나제연합군에 의해 부대가 몰살당하면서 수습이 되지 않아 각종 유물들이 쏟아져나올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에서 발굴된 고구려 토기가 500여 점 정도 되는데, 아차산 보루에서 병사들의 밥그릇으로 사용되던 토기만 1000여개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이 유물들은 한강 유역에서 발견된 첫 번째 고구려 유물들이기 때문에 학계를 흥분시켰습니다.
그 외에도 가야의 고분에서 쏟아져나오는 각종 무구들에서 고구려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좀 이상하지만, 가야 고분에서 나오는 무구들은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무구들도 상당히 나오기 때문입니다. 광개토대왕의 남방정벌은 가야에 있어서는 거의 문화적 충격이었고, 그 과정에서 고구려의 무구와 같은 물건들이 가야에서도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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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덤의 주인에 대해서는 논쟁이 분분한데, 고구려의 벼슬아치 동수의 무덤이라는 설과 미천왕 혹은 고국천왕의 무덤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학계의 정설은 동수의 무덤이라는 설이지만, 저는 미천왕의 무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근데 고구려도 그렇고 백제도 그렇고 신라도 그렇고… 중장갑 장창병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역시 지형적 요인일까요? 아니면 제가 모르는 것일까요.
그 얘기도 조만간 할 예정입니다. 확실히 장창병은 보이는데 “중무장” 인지는 좀 의심스럽네요.
삼국지에서는 맥족이 ‘여러 사람이 긴 창을 들고 싸우는 보전을 잘 한다’라고 했으니 아마 장창병은 있었을 겁니다.
그런 부스러기(?)들을 잘 모아보면 진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겠죠.
언제나 잘보고갑니다
앞으로도 기대되는군요 후후후후 :)
(다테는 은영전에 빠져들어 닉네임을 더 오덕하게 바꾸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영전 하악하악
좋은 자료네요. 언젠가 이런 정리를 하고 싶었었더라는…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잘 봤읍니다.떠 갈께요~!!!
어디로 떠갔는지는 밝히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