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의 전사들 #6 – 창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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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병, 전장의 모루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화약 병기가 등장하기 전 많은 기간동안 창이 많은 무사들과 군인들의 사랑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단순하게 말하자면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우수한 병기" 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강력한 대열을 이룬 보병들은 중장기병들도 함부로 건들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말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것을 싫어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창을 들고 고슴도치와 같은 대열을 이룬 보병대열에는 돌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장기병의 막강한 운동 에너지가 보병 대열을 날려버리지 못한다면 창을 든 보병들에 의해 쉽게 제압될 수 있습니다.1
둘째로 창은 보병 전투에서도 유용한 병기입니다. 밀집 대형을 이룬 만큼 비교적 대열이 엉성한 적 보병들을 별 피해 없이 격파할 수 있습니다. 궁병들의 화살비를 맞으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창병은 비교적 싼 가격에 범용성이 높은 전력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4~5세기의 전쟁 방식에서 기병과 보병의 전력 비율은 대략 1:3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에 실린 당나라의 병력 무장 현황2을 보면 그 중 절반 이상이 (비록 세부적인 무장은 다를지라도) 창병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 역시 무사들을 주축으로 한 단순한 약탈 전쟁에서는 도검류 병기를 상당히 많이 사용했었으나, 징병제가 실시되는 등 군사 조직이 급속도로 체계화되면서 집단 전투에 더 유용한 창이 보병들의 표준 병기로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의 무기를 언급한 문서 자료들도 언급하고 있지만, 초기 고구려 무덤에서는 도검류가 간간이 나오는 반면 후기로 갈수록 창이 대세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창병의 임무 자체가 대열을 이루어 적 보병과 싸우거나 적 기병의 돌격을 막아내는 것이었던 만큼, 실제로 고구려의 창병은 2종류가 확인됩니다. 하나는 대형 방패와 기병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극으로 무장한 창병이고, 또다른 하나는 그보다 약간 작은 방패와 미늘이 달린 모로 무장한 창병입니다. 기본적으로 극은 기병들을 상대하기 위한 것인 만큼, 강력한 방어력을 보유한 전자가 대기병 전투에 특화되었다면 보다 기민한 움직임이 강조된 후자는 대보병 전투에 좀 더 초점을 맞췄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래 내용은 장병기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투구 및 갑옷
창병의 방어구는 기본적으로 개마기병과 같은 장비 - 투구는 종장판주, 갑옷은 찰갑 - 를 사용했습니다. 단 찰갑의 경우는 대량 양산이 필요한 만큼, 신분이 높은 중장기병들에 비해 약간 다운그레이드된 것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실제로 보병들에게는 지나치게 무거운 갑옷은 방해가 될 뿐입니다.)
위 사진은 황해도 안악 3호분의 벽화인데, 창병의 갑옷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장기병의 상의에 해당하는 상갑(上甲)이 긴팔인 반면 창병은 반팔에 불과하고, 게다가 하의에 해당하는 하갑(下甲)은 입지도 않았습니다. 목이나 팔목을 보호하는 부속구도 없는데, 대신 방패를 장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기에 따라서 들고 있는 방패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극을 든 병사들이 벽화에 묘사된 것과 같은 커다란 육각 방패를 소지하는 반면 모를 든 병사들은 보다 작은 원형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극병들은 돌격해오는 중장기병을 막아내기 위해 커다란 방패를 든 반면 보병들은 적 보병을 상대로 좀 더 기민하게 움직이기 위해 약간 작은 방패를 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어떻게 보면 영화 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중장보병들의 원형 방패와 묘하게 비슷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길림성 삼실총 고분 벽화에는 중장기병과 비슷한 수준의 무장을 갖춘 보병 수문장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카이젤 수염으로 유명한 전사는 이 상갑, 하갑, 경갑을 모두 갖추었을 뿐더러 발에는 정리를 신고 있는데, 중세 유럽 전장의 보병 기사들처럼 고구려에도 보병의 역할을 하는 귀족 무사들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주무기 - 극, 갈고리, 낫, 모
창날에 갈고리가 붙은 극은 고대 전쟁에서 중장기병을 제압하는 데 아주 인기있는 무기였습니다. 일본서기는 553년 백합야새 전투에서 백제군이 고구려 장수를 창으로 찔러 말에서 떨어뜨린 다음 목베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도 비슷한 기록이 보입니다. 아마도 대형 방패로 대열을 이루어 중장기병의 돌격을 막아낸 다음 극에 달려 있는 갈고리로 기동성을 잃어버린 중장기병의 갑옷을 걸어 떨어뜨린 뒤 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다음 회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렇게 중장기병을 죽이는 데는 도끼가 애용되었습니다.)
기병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극 말고도 다른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갈고리와 전투용 낫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적 중장기병을 끌어내리거나 말을 베어 죽이는 용도였습니다.
고구려의 모는 창대를 끼우는 부분이 제비꼬리처럼 생겼다는 특징이 있는데, 안악 3호분을 포함한 고분 벽화에는 낚시바늘처럼 미늘이 달려 있는 모도 보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삼실총 고분 벽화의 고구려 무사는 이렇게 미늘이 달린 모를 들고 있습니다.
보조무기 - 도(刀)
비록 후대의 사실이지만, 당나라의 보병들에게는 주무기 외에도 도검류 병장기기가 보조 병기로 지급되었습니다. - 사실 적 보병과의 근접전을 위해 도검류 병장기를 보조 무기로 소지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고구려의 보병들 역시 도를 보조 병기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동서고금( 아 금은 아니군 ㅡ_ㅡ;; )을 막론하고 창이 인기가 많은 무구였던 이유는 위의 전략적 편제의 이유도 있지만,
보통 비슷하게 어설픈 실력의 경우, 도검류보다는 리치가 길고, 가만히 들고 서 있거나, 제자리에서 찌르기만 연발해도 ( 어쨌거나 효용은 있는 ) 되는 창이 유리해서 직업 군인이 아닌 끌어모은 징병군의 경우, 창을 보급해주는게 적은 훈련으로도 더 나은 전투력을 발휘시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으려나? ( 사실상 가격대비 성능도 괜찮은 무기고 ㅡ_ㅡ;; )
사실 게임이나 만화에서는 다들 검을 차고 다니지만, 원체 검이나 도는 사실 꽤 많은 수행을 쌓아야 하는 나름 고급무기니까.. ( 맞나? )
그렇지. 그리고 적은 훈련으로 더 나은 전투력을 발휘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위에서 이야기한 밀집대형 편제지.
게다가 창은 그래도 철에 비해 싼 나무에 철을 끝에 달아주기만 하면 완성되는 데다가 가만히 들고있기만 해도 (들고있는게 좀 무섭긴 하겠지만..) 상당히 도움되니까 그럴 거 같네여..
최소한 아무 것도 못하는 잡병보다야 낫겠죠.
읽어볼 수록 심도깊은 내용들… 오늘 공부 참 많이 합니다…
감사히 모셔갑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D
야후 블로그에서 링크타고 오셨군요. 앞으로도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