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도검 패용법
이전에는 조선 시대의 도검 패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삼국 시대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삼국 시대에는 칼을 어떻게 찼을까요?
힌트는 바로 칼집에 있습니다. 삼국 시대의 칼은 칼집과 함께 출토되는데, 대부분은 녹이 심하게 슬어 손잡이만 제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운좋은 생존자들이 있습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방식은 아래와 같은 방식입니다.
사진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칼집입1의 가운데 부분이 돌출되어 있습니다. 줄이나 천을 끼우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칼집에 끈이나 천을 연결해서 허리에 차는 것이 기본적인 삼국 시대 도검의 패용 방식입니다.
이것보다 좀 더 후대에 발견되는 것으로, 약간 더 발전된 형태가 있습니다. 칼집입을 개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칼을 차기 위한 장치를 칼집에 부착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차는 방법은 같습니다. 아래의 유물이 대표적인 예입니다만, 칼집입을 개조하는 방식만큼 흔하지는 않습니다.
위 검은 7세기에 만들어진 백제의 검입니다. 시기로 보아 사실상 백제 최후의 검인데요, 칼집에 고리가 달려 있어서 칼을 찰 수 있는 장치를 해 두었습니다. 금동과 은으로 만들어진 검이니만큼 이 검의 주인은 상당히 높은 신분의 인물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끈 하나를 묶어 허리에 연결하는 것이 기본적인 패용 방법이지만, 두 개의 끈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는 고구려 사신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사마르칸트의 아프시압 궁전 벽화입니다. 사진이 좀 작긴 합니다만, 오른쪽 두 고구려 사신이 차고 있는 칼에 두 개의 고리가 달려 있는 것 정도는 보이실 겁니다.
이러한 형식의 검은 벽화뿐만 아니라 실제 유물로도 확인됩니다. 아래는 기린 그림으로 유명한 천마총에서 출토된 신라의 검인데, 끈을 끼우는 고리가 두 개 장착되어 있습니다. 신라의 황남대총에서도 비슷한 검이 출토된 적이 있습니다.
이 검의 사용자 역시 백제검의 주인 만만치 않게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4세기 고구려군의 무장에 대한 글에서 인용한 민족 기록화에 그려진 도검 패용 방식은 이 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삼국 시대의 도검 패용 방법은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 끈 하나를 칼집입에 꿰어 허리띠에 연결해 찬다.
- 끈 하나를 칼집 고리에 꿰어 허리띠에 연결해 찬다.
- 끈 둘을 칼집 고리에 꿰어 허리띠에 연결해 찬다.
- 좋은 칼을 찰 형편이 안되는 졸병들은 (아마도) 그런 것 없다 ㄳ
-
칼집의 맨 윗부분. ↩
졸병들의 경우에는 허리띠에 꿰어 썼겠죠?
그런데 허리띠에 꿰는 식으로 차면 모르긴 몰라도 심하게 불편할 듯 한데요…
뭐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허리띠에 푹 눌러 썼을 것 같은데요… 아마 졸병들은 칼을 꽂을 새가 없었을 테니 불편해봤자 그게 그거일 듯 ^^;
이번에 가서 찍어오신 것들이로군요. ^^ 전 요 몇달간 건축에 대해 자꾸만 관심이 가서 예전에 갔을 때 별로 눈여겨 보지 않았던 기와나 접합부 같은 것들을 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그나저나 편광 필터라는것 꽤나 비싼가보죠? 사진기라고는 똑딱이 하나 뿐인데 그걸로는 못 없에려나 모르겠네요…
저도 잘 모르는데, 가격이 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기야 DSLR 악세서리 가격이 다 비싸긴 합니다만 ^_^;
졸병의 경우 검 갖는것도 힘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패용법이 조선시대와 많이 다르지 않은듯 한 생각이 드는것은 저 뿐인가요?
음, 저는 허리띠에 연결해서 차느냐 아니면 옷에 나온 끈에 차느냐는 차이가 더 심하게 보입니다만 ^_^;
근데, 안악 3호분의 전투병 같은 경우에는 그냥 도검을 어깨에 걸치고 다니고 있죠… 그것도 방패와 묶어서?
상당히 독특한 모습이긴 한데, 이게 바로 저기 3번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졸병한테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잖아)
걔들은 의장병으로 보이니까 위세용으로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